[사설] 마냥 축하할 수만 없는 사법부 창립 70주년

2018-09-06     법률저널

1948년 9월 13일은 사법독립의 첫 걸음을 내디딘 대한민국 사법부 탄생일이다. 삼권분립주의에 따라 입법권·행정권에 대립되어 사법권이 독립되었고, 사법부가 이를 담당하게 되었다. 모든 법률상의 분쟁에 대한 최종 판단은 사법부가 행하게 되었다. 사법부가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서 오는 13일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광복 이후 1948년 사법부가 비로소 권력분립의 한 축으로 세워진 지 70년이 지나오는 동안 사법부에는 사법파동 등 불행의 시기도 있었지만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의 사법체계는 사법부의 독립이 민주 체제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를 역대 헌정사를 통해 절실히 인식하고 만들어낸 역사와 경험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작금의 사법부 사태를 지켜보면 마냥 축하할 수만 없다.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이념적인 특정 출신 판사들의 영향으로 사법신뢰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법농단’으로도 불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면서 재판거래와 법관 사찰 의혹은 물론 대법원 차원의 비자금 유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사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은 6일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된 대법원을 전격 압수수색 했다. 검찰의 대법원 압수수색은 사상 초유의 일로 사법부 역사에서 굴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대법원에 대한 압수수색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만큼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대법원도 사상 최악의 사법 불신을 불러온 이번 사태를 의식한 듯, 7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도 간소하게 치르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사법부 70년 성과와 향후 비전 등으로 채워졌을 기념식사도 반성의 뜻이 주조를 이룬다. 7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5일 열린 ‘상징으로 보는 사법부’ 개막식 행사에 참여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기념식사에서 “1948년 사법부가 비로소 권력분립의 한 축으로 세워진 지 70년이 지나오는 동안 사법부에는 광명의 시기도 있었지만 음영의 시기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그리하여 사법부의 일관된 상징이 무엇이며, 어떠한 상징을 찾아가야 할지는 아직 과제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며 사법부의 상징이 무엇인지도 모를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사법부 구성의 이념적 편향도 사법 불신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김명수 사법부가 들어서면서 진보 판사 모임의 판사 출신들이 사법부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을 포함해 노정희·박정화 대법관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김선수 대법관은 진보 성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이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법원장, 판사 3000명의 인사 실무를 담당하는 인사총괄심의관, 일선 법관 몫 대법관 추천위원도 우리법 또는 인권법 판사들이 맡고 있다.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법무부 법무실장도 마찬가지다.

‘코드 사법부’ 노골화는 헌법재판소까지 뻗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석태 변호사 역시 민변 회장을 지냈다. 헌법재판소장 후보로 지명된 유남석 헌법재판관과 같은 날 헌법재판관에 추천된 김기영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모두 진보 성향 모임의 출신이다. 유 재판관은 법원 내 진보 성향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이고, 김 부장판사는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두 모임은 모두 김명수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사법부의 두 축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동시에 이끌게 되는 것이다. 현 정부의 앞으로 남은 대법관과 헌재재판관 인사에서도 코드 인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앞으로 대법관 5명의 교체가 예정돼 있고, 헌법재판관은 헌재소장을 포함한 9명 중 8명이 이번 정권 임기 내 바뀐다. 문재인 정권 아래 사법부의 이념적 쏠림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법부가 균형을 잃고 재판이 정치화되고, 권력과 법원이 동일체처럼 돼 가는 사법부 암흑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