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달콤하고 말랑한 재판 상식 -3회-

2018-08-23     임수희












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대화가 안 통해서 이혼 소장 낸 건데, 조정이라뇨?!


‘어? 이게 뭐지?’
안씨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 졌습니다.
안씨 손에는 남편 양복 호주머니에서 발견한 모텔 카드전표가 구깃구깃한 채로 있었고,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안씨는 그만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세 달.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낸 안씨.
이젠 안씨 손에 이혼 소장이 들려 있습니다. 가정법원에 이혼 소장을 접수하러 온 안씨는 생각합니다.
‘그래, 이젠 이걸로 끝이야. 이 괴로움도 곧 끝나겠지.’

안씨가 모텔 카드전표를 들이댔을 때 남편 정씨는 처음엔 펄쩍 뛰고 도리어 안씨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다 결국 외도 사실을 털어 놓게 되었지요.

안씨는 너무도 괴로웠지만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습니다. 안씨 부부에게는 5살, 7살 어린 남매가 있었고, 아이들 낳고 키우느라 직장 그만두고 6년간 살림만 살아 온 안씨가 당장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막막했으니까요.

하지만 알고 보니 남편 정씨의 외도는 상대방과 꽤 복잡한 지경에까지 가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정씨가 아내 몰래 1,000만 원을 대출 받아 상대에게 준 사실까지 발각되자, 안씨는 모든 신뢰가 깨어져 더 이상 정씨와 가정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지요. 그리고 쉽지 않은 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남편 정씨는, 안씨가 마음을 굳히고 협의이혼을 요구하자, 이혼만은 절대 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안씨는 그런 정씨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막무가내로 이혼만은 못한다고 하면서, 어느 날은 울고불고 빌며 제발 용서해 달라고 사정하고, 어느 날은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며 애들을 생각하라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정씨에 대해 속수무책이었지요.

집 안에서 부부가 큰 소리를 낼 때마다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씨는 하루빨리 이혼해서 끝장을 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협의이혼에 응해 주지 않는 정씨와 하루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끝내려면 이혼 재판을 걸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래서 빨리 판결로 이혼과 위자료와 재산분할과 양육비를 받아내서 아이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혼 소장을 내고 초초하게 법원의 연락을 기다리던 안씨.
어느 날 법원에서 날아온 두 개의 서류를 보게 됩니다.
하나는 남편 정씨가 낸 ‘답변서’, 하나는 ‘조정기일통지서’.

정씨가 법원에 낸 답변서를 본 안씨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말 그대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정씨는 답변서에 안씨에 대해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하고 이혼소송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험담을 적어 놓았습니다. 사소한 것을 과장해 적었을 뿐 아니라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냈고, 게다가 그런 안씨 때문에 자신이 어쩌다 보니 외도를 하게 되었다며 변명과 자기합리화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외도를 하였어도 자기만 위자료를 주는 것은 억울하니 자기도 위자료를 받아야 한다고 써 놨고, 아이들은 경제력 있는 자신이 키워야 하니 안씨에게 재산분할을 해 줄 수 없고 양육비도 줄 필요가 없다고 써 놓았던 것입니다.

‘아니, 하루 걸러 외박을 하고 아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안씨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한편 법원에서 날라 온 또 다른 서류, ‘조정기일통지서’를 보면서 막막하고 답답하고 절망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 대화가 안 되니까 소장을 낸 건데, 조정을 하러 오라고?’
대화가 되면 협의이혼을 하지, 왜 이혼 소장을 내겠나? 여태 실랑이 하다 어쩔 수 없이 소장을 냈는데, 이제 또 그 인간 얼굴을 보고 다시 그 실랑이를 하라고? 어차피 되지도 않을 합의를 한답시고 왜 시간을 낭비하지? 법원은 왜 힘든 당사자 사정을 하나도 생각을 안하는 거지? 담당 판사에게 항의를 해 볼까? 안씨는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고 괴롭기만 합니다.
 

자, 안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법원은 이혼 소송 절차를 저렇게 불합리해 보이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걸까요?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혼 재판은 ‘조정전치주의’라는 것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전치’는 ‘前置’로 앞에 놓는다는 뜻인데, 가사소송법 제50조에 의하면, 이혼 재판의 경우 먼저 조정을 신청하여야 하고(제1항), 조정을 신청하지 아니하고 소를 제기한 경우 ‘가정법원은 그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여야 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조항 단서에 ‘그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더라도 조정이 성립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규정이 있지만, 조정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명백히 조정성립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혼 사건은 위 규정에 따라 조정에 회부되고 있는 것이 이혼 재판 실무입니다.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무리 그 이전에는 대화가 안 되고 합의도 안 되고 얼굴 부딪히면 싸움만 했던 경우라도, 막상 조정기일에 법원에 나오시면 조정이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앞둔 부부는 갈등으로 관계가 악화되어 대부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지요. 그러니 이혼을 고려하는 것이고요. 그 상태에서 당사자들이 대면하는 경우, 대면 자체가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고 대화 진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래서 실상은 그러한 갈등당사자 사이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고 필요한 내용에 관해 합의에 이르게 하려면 ‘전문적인 조정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법원에는 ‘조정위원’이라는 전문적인 조정가가 갈등 상황에 있는 부부 간의 대화를 도와주고 서로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합의를 도출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 줍니다.

안씨는 정씨에게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하지 못했지만, 조정위원을 통해서는 정씨가 자신의 행위로 인해 부부간의 신뢰가 무너져 가정을 유지하지 못할 수준으로 관계가 파탄나 버렸다는 뼈아픈 현실을 직면하고 자기객관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단계를 지나면, 이혼을 하더라도 각자 살아 나가야 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로서 협력적으로 양육해야 할 과제를 다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재산을 나누고 양육비를 분담할 것인지 등에 관한 대화로 수월하게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안씨는 오히려 법원의 조정기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이 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조정기일을 이롭게 활용할 수 있냐구요?

조정기일에 앞서 미리 원하는 조정안(조정조항)을 작성해서 제출하면 좋습니다.
안씨의 경우 이혼을 원하기 때문에 이혼을 전제로 해서 재산을 어떻게 나누어 받고 싶은지를 쓰고, 아이들 양육도 원하기 때문에 친권자와 양육자를 자신으로 지정받고 싶다는 것과 양육비를 얼마를 어떻게 받고 싶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아빠인 정씨와 정기적으로 안정적인 면접교섭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그 시간, 횟수, 방법 등을 잘 제시하면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왜 안씨가 그러한 조정안을 원하는지 그 이유나 근거, 현재의 여러 상황들, 자신과 아이들의 상태 등을 자세히 적어서 미리 내시면, 법원의 조정위원들이 그 내용을 미리 파악해서 조정기일에 조정을 진행할 때 참고할 수 있고, 나아가 조정위원들로부터 안씨가 겪은 일이나 현재의 상황에 대해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받으면서 장래를 위해 필요한 합의를 정씨와의 사이에서 이루어 내는데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서 조정기일에 나가서 성실히 조정에 응한다면 안씨가 원하는 당면의 문제해결로 좀 더 신속히 좀 더 편안하게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