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20)-너 자신을 알라.

2018-02-27     정명재

정명재 원장(공무원 장원급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는 문답법(대화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우치도록 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와 광장에서 아무에게나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거침없고 끊임이 없었다. 대화 상대방은 결국 자신의 생각에 허점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상대에게 실마리를 주고 스스로 지식을 찾아내도록 하는 공부법을 알려주려 한 것이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나 자신을 알라’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을 똑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겸손함을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진리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는 공자(孔子)가 있었다. 공자 역시 공부에 대한 유명한 명언을 남겼는데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고 하며 공부에 관한 좋은 교훈을 전하고 있다.

2018년, 대한민국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음이 많다. 참된 공부법을 알고자 하지만 이러저런 공부법에 몸살을 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려서부터 공부에 관한 화두(話頭)에 익숙해 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여서, 인구가 많은 나라여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성공지향적인 삶은 학벌과 직업에 대한 선호의 중심이 된 것이 사실이다. 고3 때 시험점수가 평생을 좌우하는 것으로 여겨 입시경쟁을 경험하였고, 명문대를 진학해야만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 이것도 잠시,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대안(代案)으로 찾은 공무원 시험에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갈구하며 뛰어들고 있다.

필자는 지금껏 천여 명이 넘는 수험생들을 만났다. 수험생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그들은 각양각색의 이력(履歷)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실의 어려움을 시험이라는 제도와 합격이라는 목표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찾아온 수험생부터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되는 현실에서 공무원 수험생이 되기로 결심한 젊음이 있었고, 수험준비 기간이 5년이 넘어서 10년이 되어 가는 수험생도 있었다. 수험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특별한 자격증이 있어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필자가 합격을 단기에 하였고 상담을 통해 만난 수험생들을 단기에 합격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인연의 끈으로 만난 것이었다. 오늘도 나를 찾아와 공부법을 묻고 합격비결을 묻는다. 나에게도 스승이 있고, 나에게도 공부철학이 있을 터인데 이번 칼럼에서는 그동안 깨친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국어 수업시간에는 받아쓰기를 한다. 북어 한 쾌가 몇 마리입니까? 고희(古稀)는 몇 살을 의미합니까? 염량세태(炎凉世態)의 뜻은 무엇입니까? 등을 묻는 방식이다.

한국사 수업시간에도 받아쓰기를 한다. 고려 광종의 업적을 아는 대로 적으시오? 1930년대 한·중 연합작전에 대해 서술하시오? 조선시대 법전의 편찬순서를 적어보시오? 조선 숙종 때의 환국에 대해 서술하시오? 등을 묻는 것이다. 영어 시간에는 직접 문장의 해석을 하도록 시키거나 영작을 하도록 묻는다. 필자의 공부방식은 자신의 지식을 입으로 전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을 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노트에 필기를 하였다 해도, 자신이 직접 전하지 못하는 지식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업시간이면 수강생들에게 공부한 내용을 묻고 답하도록 유도하여 지식의 양이 어느 정도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질문을 할 때면 수험생들의 얼굴은 상기되기 일쑤이다. 강사가 지식을 전해주면 되는 것이지, 왜 질문을 하냐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받아쓰기 시험을 보거나 생각을 정리하고 지식을 모으는 작업에서 그들은 자신의 지식에 바닥을 보거나 잘못된 지식을 깨닫는 일이 많았다. 필자는 처음부터 이러한 공부법을 좋아했다. 강사가 되기 전, 필자는 하루 종일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하는 자영업자의 삶이었다. 책을 통해 글자를 보는 일이라고는 지나가는 간판이나 현수막이 전부였고, 영어와 한국사는 접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점점 단순하고 무지(無知)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어린 시절 공부하였던 지식을 반추(反芻)하는 일이 잦았다. 영어에서 시제(tense)를 배운 적이 있는데 시제(tense)란 무엇일까?

한국사를 떠올리면서는 무조건 암기만 했던 부분에서‘왜’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세종은 왜 한글을 만들려고 했으며, 고려 광종은 왜 과거제를 도입하려 하였을까? 광종은 왕권의 강화를 꿈꾸었고 이러한 생각에서 새로운 인재가 필요한 것이었기에, 과거제를 도입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갈 때, 북어 한 쾌가 20마리인지를 알았으며 조기 한 뭇은 10마리, 오이 한 거리는 50개라는 것을 익힐 수 있었다. 지식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언제, 어디서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책에서 배운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 두고 언제든 꺼내어 적용하며 입으로 중얼거리는 시간이 많았고 이를 수험생들에게도 알려 주었다.

필자는 처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딱 두 달의 시간만이 허락되었다. 물론 불합격을 하였다면 다시 도전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 현실의 여건을 감안하였을 때, 40대의 나이에 생계를 생각하지 않은 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딱 두 달이었다. 시간은 없고 공부할 것은 많았기에 시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았다. 젊은 시절 내게는 많은 시간과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한 필자였기에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해달라고 신(神)께 부탁하기에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시간을 아끼는 것이 무엇일까? 10분을 1시간처럼 사용하였고 걸어 다닐 때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하루 동안 익힌 지식을 반복하며 생각하는 데 몰두하였다. 결과는 생각 이상으로 놀라웠다. 단시간에도 많은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고, 그날 배운 지식을 되새김질 하는 것도 점차 빨라진 것이었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이 지났고 7급과 9급을 합격하였다. 이후, 이러한 공부법을 수강생들에게도 전하였고 그들 역시 합격생이 되어 지금은 현직 공무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당시, 수험생들은 늘 필자에게 물었다. 시간이 없는데 이것이 가능합니까? 3년 동안 공부해도 합격을 못한 것을 어떻게 단시간에 가능합니까? 이렇게 많은 양을 어떻게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습니까? 등등. 그러나 필자와 그들은 별반 다르지 않게 단시간에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은 것을 자랑하지 말 것이며, 지식의 양이 많다고 허세를 부리지 말 것이며, 먼저 시작하였다고 자만심에 빠져서도 안 된다. 시간이 없는 것은 시간을 아끼면 될 것이고, 지식이란 얄팍한 것이어서 축적이 어렵지 않은 것이고, 나중에 시작하여도 먼저 될 수가 있는 것임을 여러 번의 임상경험에서 확인하였다. 필자의 스토리는 3년 넘게 운영하는 공무원장원급제(다음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기에 노량진에서의 필자의 수험이야기는 가감(加減)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능(可能)과 불가능(不可能)을 논하지 말고, 바른 공부법을 익히고 수행하며 실천하는 노력을 해 보자. 필자는 700일이 넘는 밤을 새우며 이러한 공부법을 따라 연구하였고 이를 입증해 보이기 위해 나를 찾아온 수험생들을 합격으로 인도하였다. 필자의 스승은 소크라테스였고 공자였으며, 경험이 알려준 겸손함의 철학이었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시간의 부족함과 생활의 곤궁함이 겸손을 자아냈고, 수험생들의 절박함이 빚어낸 멋진 결과가 합격이었을 뿐이었다. 필자는 21과목을 가르치고 책을 써서 공부법을 알리고 있지만, 정작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시작하였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은 나의 무지함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읽고 생각하며 다시 읽고 반복한 것이 지금의 필자를 만든 것이다. 수험서를 낼 때에도 머리말을 쓰며 필자는 문외한(門外漢)임을 밝히는 글을 적는다. 정말 그렇다. 시험에 합격한 것뿐이지, 내가 많은 지식이 있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무지(無知)를 깨친 바가 있어 이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수험생이라면 합격을 꿈꾸는 일이 목표이고 희망이 되어야 한다. 올해 그대는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잊지 말고 이를 화두(話頭)로 삼아 시험공부를 해 보자. 강사의 삶으로 지낸 지도 4년이 되어 간다. 늘 합격에 목마른 수험생이 필자를 찾고 있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 그들과 함께 3월을 준비한다. 시험 원서를 접수하였을 것이고 합격을 향한 전략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지식을 완성한다면 공부재미를 알게 될 것이고, 목표가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부의 신(神) 소크라테스가 합격을 꿈꾸는 수험생에게 가르침을 전한다.‘너 자신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