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50)- 권력, 대중노출, 나무

2018-02-23     강신업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현대인들은 대중노출증에 걸려 있다. 특히 성공한 사람일수록,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끊임없이 자신을 대중에 노출시키려 든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존재를 계속해서 드러내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가진 지위나 권력이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해한다. 얼마 전 모 정치인은 남자 썰매 스켈레톤 종목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 따는 현장에 공연히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특혜와 갑질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따지고 보면 영상을 통한 대중노출조급증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문화권력이든 이런 저런 권력을 가진 자들은 보통 누군가 나를 바라봐 주기를 원한다. 그들은 대개 사람이 없는 곳에 가기를 꺼린다.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알아주고 거기에 복종하는 대상이 있어야 은연중 그것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위 ‘갑(甲))’이라는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도 술을 마실 때도 ‘을(乙)’을 불러다 놓는다. 갑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런 저런 말을 쏟아내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 갑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적당히 머리를 조아리는 을을 보면 세상 살 맛이 난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삶의 에너지가 분출되고 비산(飛散)된다. 갑은 점점 절제력을 상실하고 방종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마음속엔 어느새 겸손 대신 오만이 가득 들어찬다. 급기야 권력에 깊이 취한 갑은 을에게 폭언을 가하고 심지어 성추행이나 성폭행까지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사실 대중노출조급증은 상당히 심각한 병이다. 끊임없이 자기의 지위나 권력을 확인하려 드는 것은 불안하고 불행하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센 단어를 말하고 다른 사람을 험담하고 자기는 정의롭고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스스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떠받드는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는 사람일수록 그의 삶은 그만큼 더 불행하다. 관중이 사라지고 카메라가 꺼진 뒤 밀려오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그는 갑질이 통하는 장소와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다.

행복은 중용(中庸)의 마음가짐에서 온다. 중용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상(平常)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성(誠)이므로 사람이 그 원래의 심연으로 돌아가면 원초적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성(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명상이나 독서를 통해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 술자리 등에서 사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삶은 방전되기 쉽고, 충전을 하지 않고 방전된 상태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날 경우 정돈되지 않은 에너지가 비산되며 말실수, 몸실수로 이어진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알아달라고 이리 저리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도 있거니와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몸과 맘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나도록 인격을 도야하고 학문을 갈고 닦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동요된다면 여기 저기 사람을 찾을 것이 아니라 혼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거나 차 한 잔 앞에 놓고 가만히 책을 읽으라. 채근담에 이런 구절을 소리 내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바람이 비껴 불고 빗발이 급한 곳에서는 다리를 굳게 세워 걸으라. 꽃향기 무르익고 버들 고운 곳에서는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라. 위태롭고 험한 길에서는 빨리 머리를 돌려 돌아서라.(風斜雨急處,要立得脚定, 花濃柳艶處,要着得眼高.路危徑險處,要回得頭早(풍사우급처,요입득각정.화농류염처,요착득안고.노위경험처,요회득두조))”

진정 대중들로부터 인정받고 세상의 을(乙)들로부터 존경받고 싶다면 어느 날 혼자 산에 올라 나무의 일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훌륭한 인간의 삶은 대개 나무를 닮는 법이다. 나무는 열매를 터트려 씨를 뿌려 후손을 남기고 동시에 벌레와 새 그리고 갖가지 동물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나뭇잎으로 알록달록 세상을 수놓다가 고목이 되어 다시 숲의 거름으로 돌아간다. 그 가지 위에서 새들을 쉬게 하고 그늘을 드리워 길가는 나그네의 땀을 닦아 준다. 나무처럼 말없으나 나무처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 - 사람이 이런 삶을 산다면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