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매몰 비용

2018-01-19     안혜성 기자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최근 사랑이 식었음을 알면서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 기사를 읽었다.

포르투갈 미뉴대학교(UMinho)의 사라 레고 교수는 남녀 885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결혼을 했지만 불행하고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더 노력할지를 묻는데 한 그룹에게는 ‘결혼 후 1년’을, 다른 한 그룹에는 ‘결혼 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전제를 추가적으로 제시했다.

조사 결과 ‘결혼 후 1년’이라는 전제를 받은 그룹은 ‘10개월’을 더 노력하겠다고 응답한 반면 ‘결혼 후 10년’이라는 전제를 받은 그룹은 ‘19개월’을 더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레고 교수는 같은 실험을 전제를 바꿔 다시 한 번 진행했다. 이번에는 기간에 차등을 두는 대신 ‘공동명의의 집’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나눠 조사했는데 결과는 공동명의의 집이 있는 경우에 헤어지지 않겠다는 응답이 35%, 없는 경우는 25%인 것으로 집계되는 등 시간과 물질적인 투자가 클수록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레고 교수는 사랑이 끝났음을 알면서도 헤어지지 않는 이유를 ‘매몰 비용’으로 설명했다. 투입한 시간과 돈, 노력 등이 크면 클수록 더 이상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불행한 관계임에도 포기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이 연구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기자는 지난 주 있었던 변호사시험 취재를 떠올렸다. 이번 변호사시험은 올 겨울 들어 가장 혹독한 한파 속에서 치러졌다. 살을 에는 칼바람 때문이었을까. 시험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년에는 시험을 마치고 나오면 잠시 한숨을 돌리며 통화를 하거나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응시생들의 무리가 적지 않게 있었는데 올해는 대부분의 응시생들이 조금의 쉼도 없이 시험장을 밖으로 발걸음을 독촉했다.

시험장을 바로 떠나지 않는 몇 안되는 응시생들은 거의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이었고 취재에 응해주더라도 출발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라 급히 자리를 떴다.

장시간 시험을 치른 피로와 부담 등을 이유로 응답을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중 한 응시생의 말이 사랑과 관계에 대한 연구를 떠올린 이유가 됐다. 그는 “시험 합격률도 50%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에 걱정스럽고 부담돼 죽겠는데 지금은 이런 취재에 대답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수험전문지의 기자로서, 법조인을 꿈꾸는 수험생들과 앞으로 변호사시험을 치를 로스쿨 재학생,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법조인 양성제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독자들을 위해 해야만 하는 취재였지만 실제로 시험을 치르는 응시생들이 느낄 부담과 걱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변호사시험의 낮은 합격률은 ‘변시 낭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비싼 등록금을 내고 3년간 로스쿨 교육을 받아야만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는 변호사시험은 가장 매몰 비용이 큰 시험 중 하나이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5년간 5회로 제한돼 있기에 응시생들이 느낄 정신적 압박이 다른 어느 시험보다 크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해서 매몰 비용이 아까우니 가능한한 많은 이들을 합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의 역량을 갖춘 이가 없다면 단 한 명의 합격자도 나와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현행 합격 기준의 문제는 응시생들의 실력 여부보다 이해관계에 의한 ‘숫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이 있는 이들은 모두 합격시킨다는 ‘절대 평가’라는 방식을 적용하기 위해, 그리고 응시생들의 매몰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실력을 갖춘 법조인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로스쿨에서의 교육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 앞서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이 각 로스쿨의 교육 프로그램을 평가해 보조금을 차등적으로 배분하는 등 로스쿨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에 시사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