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격이 없는 전문가는 잘 길들여진 개

2017-12-22     엄상익

 

 









엄상익 변호사, 소설가

칠십대 중반의 원로인 오 변호사와 육십대 중반인 나는 사무실 빌딩 지하의 작은 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옆의 조그만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변호사로서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고 있었다.

“제가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원에서 나올 때 데리고 있던 배석판사들이 전송을 하면서 ‘진정으로 존경합니다. 부장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 합니다’라고 인사했어요.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의 관계는 평생 끈끈한 인연이 되는 거죠.”

“그런 끈끈함 때문에 전관예우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까?”
모든 분야의 일들이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게 현실이었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변호사를 개업해서 형사사건을 맡았는데 그 사건을 내 배석을 했던 판사가 담당한거야. 나로서는 마음이 놓였죠. 모시던 부장이 맡은 사건인데 봐주고 싶지 않겠어요? 사안도 별게 아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까지 했어요. 그런데 담당판사가 실형을 선고해 버린 거야. 이럴 수가 있나 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더라구. ‘존경 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를 연발하던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싶더라구요. 몇날 며칠 밤을 배신감에 분노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부장판사를 할 때 데리고 있던 그 배석판사에게 강한 인연의 줄이 엮여있어도 재판에서는 가차 없이 연줄을 끊고 판결을 내리라고 했어요. 따지고 보면 그 판사가 내가 가르친 대로 한 거잖아? 난 할 말이 없더라구요.”

오랫동안 변호사생활을 해 보면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고 해서 무리하게 봐주는 판사는 드물었다. 기준이라는 것과 세상의 눈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 변호사는 변호사를 하면서 특히 형사사건을 많이 했다. 그렇다고 브로커를 사용해서 사건을 유치하는 성품도 아니었다.

“형사사건을 많이 하셨잖아요?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이제 변호사업무를 접을 때가 된 우리들은 영업비밀을 누설해도 괜찮을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다.

“제 나름대로 비결이 있죠. 제 경우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재능을 부여받은 것 같아요. 싫증을 안내고 끝까지 들어주는 거죠.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요점만 말하라면서 상대방의 말을 툭툭 끊어버리잖아요? 그런 식으로 한다면 사실에 대해서는 사건기록에 다 나와 있는데 뭐 더 할 말이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감옥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중요한 거예요. 나는 끝도 없는 그 얘기들을 다 들어줬어요. 어떤 얘기는 들으면서 나도 같이 울곤 했죠. 그랬더니 오 변호사 같이 함께 울어주는 진짜 인간이 있더라는 소문이 퍼진 거예요. 공감해 준다고 하니까 저에게 사건이 몰리더라구요. 혼자 그 많은 사건을 하다가는 과로로 죽을 정도였어요.”

전관예우보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성품이 그를 성공시킨 원인인 것 같았다. 나이가 들었어도 오 변호사는 맑고 투명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아인슈타인은 인격 없는 전문가는 잘 길들여진 개라고 했다.

정권의 명령에 무리한 수사를 하는 일부 검찰이나 경찰이 그럴지도 모른다. 물라고 하면 무는 훈련받은 개들이 많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가득 들어찬 채 남의 호소를 외면하는 교만한 판사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 그게 바로 인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