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검사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2017-11-15     신평












신평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변호사

국정원 댓글 수사를 은폐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검사가 자살하였다. 이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많다. 무엇보다 젊은 나이 창창한 미래를 가진 엘리트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거둔 사실은 너무나 슬픈 일이고, 더욱이 그의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면 비극의 끝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의 개인적 성격에 갇혀서는 안 된다. 내 자신의 경험과 관련하여 그 이유를 말해보려 한다.

나는 지난 해 봄 로스쿨의 운영실태를 비판한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이라는 책을 펴내었는데, 이로 인해 커다란 곤경에 처하였다. 그 책에서 경북대 로스쿨 응시생의 합격을 다른 교수에게 청탁하러 다닌 어느 교수의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입학청탁의 사실이 허위라고 하여 나는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되었다. 대구지검에서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검찰청에 가니 분위기가 처음부터 살벌했다. 나에 대한 예우 따위는 애초부터 전혀 없었다. 고소의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다고 문의하니, 담당 수사관은 그런 것은 알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 수사관은 나중에 나에게 일말의 동정을 느꼈는지, 거주지를 이전하여 대구지검의 관할을 벗어나도록 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당장 구차스럽게 그렇게 할 형편은 되지 못했으니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이 사건에서 입학청탁 현장을 목격한 증인의 생생한 증언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 무렵 우연히 오신환 의원과 여의도에서 저녁을 하게 되었다. 오 의원에게 내가 처한 억울함을 한탄했다. 나중에 안 일이나, 법사위원인 오 의원은 검찰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정한 수사를 요망하였다. 검찰국장은 다시 대구지검장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갑자기 대구지검의 그 사건에 대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결국 무혐의로 끝났다.

몇 달 후 국회 세미나장에서 오 의원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비로소 그가 검찰국장에게 말한 사실을 알았다. 전혀 생색을 내지 않고 나에게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검찰의 부당하고 야만적인 사건처리를 막아준 그의 고상한 인품이 무척 돋보였다.

대구지검의 그 수사관 혹은 수사지휘를 한 검사는 위로부터의 오더를 받아서 나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엮어 넣으려 했음에 틀림없다. 나와 개인적 원한이 없는 다음에야, 입학청탁에 관한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입학청탁은 가공의 허위사실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할 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윗선에서 받은 지시대로 그대로 따랐다고 하여 아무 책임이 없단 말인가! 그로 인해 희생되는 나는 도대체 무슨 존재란 말인가!

내가 오랫동안 판사를 하고, 변호사로 존경을 받았으며, 로스쿨 교수로 다년간 봉직해왔다는 따위의 점들을 그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는데, 그러면 도대체 돈 없고 빽없는 국민들은 어떻겠는가. 검찰이 동료의 부탁이나 지시를 받고 부당한 사건처리를 하고, 또 법원은 검찰이 어련히 알아서 기소했겠느냐는 안이한 선입견으로 잘못 재판한 사건 수가 적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수십 년간의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대한 악마를 비로소 보았다. 그리고 그 악마가 만들어내는 비열한 미소를 보며 진저리를 쳤다.

마침 최순실의 태블릿 피씨가 발견되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기를 쓰며, 당시 전열을 갖추어가던 JTBC에 네 번이나 나가면서 악마적 권력의 해체를 위한 일에 동참했다. 나에게 주어진 언론노출의 기회를 최대한 살려 탄핵정국의 길을 열려고 노력했다. 물론 촛불집회에 사랑하는 딸과 함께 열심히 나갔다. 이어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미력이나마 다했다. 가두유세까지 했다.

검사가 조직의 위로부터 내려진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감면받을 수는 없다. 그로 인해 곤경에 처한 나 같은 개인이 겪는 불행이나 우리 공동체의 손상된 공익을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제 이런 식의 이야기는 하지 말자. 오직 권력이 보다 공정하게 작동되도록 힘을 모으자. 힘없고 빽없는 국민이라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그러기 위해 적폐청산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그리고 그럴 때 촛불혁명은 비로소 본연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 글이 대다수 성실하게 자기 직분을 다하는 검사와 판사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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