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34)- 공무심(公務心)

2017-10-27     강신업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원랜드 등 공기업 채용비리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강원랜드가 2012년부터 2013년도까지 채용한 518명 전원이 청탁에 의한 입사였다고 한다. 특히 청탁자들 중에는 국회의원 10여명과 그 외 강원랜드를 관할하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의 고위관리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탁 없이 채용 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본 사람들은 그야말로 바보같이 이미 합격이 정해진 청탁자들의 들러리를 섰던 것이다.

강원랜드뿐이 아니다. 항공우주산업, 대한석탄공사 등 여타 공기업의 채용비리도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서 채용비리 실태를 밝혀내 청탁자들을 처벌하고 부정 취업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채용을 취소하라는 지시를 하였겠는가? 도대체 대한민국은 정의가 있는 나라인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공채시험을 이리도 농락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과연 기회가 공정하고 결과가 평등한 나라인가?

대한민국 이대로는 안 된다. 반칙과 특권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공정한 대한민국을 이룰 수 없다. 부당한 특권을 행사하고 반칙을 범한 사람들은 소위 이 나라의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위나 권한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웠을 뿐 직무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최소한의 직업적 양심도 없었다. 이번 공기업 등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대한민국의 공적업무 담당자들 중 너무도 많은 수가 공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무심(公務心)은 무엇인가? 공무심이란 공적 업무를 행하는 바른 마음이다. 공무심은 공무를 담당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다. 공무심은 조선의 선비정신처럼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대변되는 정신이다. 공무심은 청렴과 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일상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정신인 동시에 비루하게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역사의식 하에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정신이다.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기 위해 옳지 않을 일을 행하고 염치를 저버리는 일 따위를 과감히 배척하는 자세다.

공무심은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청렴을 실천하는 자세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마음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구차(苟且)하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그에 구속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겼다. 공자는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낙이 그 가운데에 있으니, 의롭지 않는 부와 귀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을 뿐이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논어》 술이)라고 하였거니와 공무심은 바로 이와 같이 정의롭지 않은 부와 귀를 과감히 떨치고 유유자적 할 수 있는 선비정신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꼿꼿한 지조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 않는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사약(賜藥)도 불사하던 불요불굴의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변절이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예의’로 행동을 규제하고 ‘염치’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단속했다.

공무를 담당한 사람들은 후세에 이름이 더렵혀지는 것을 특히 걱정해야 한다. 한 순간 권세를 이용하여 호의호식하고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있으나 권세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탐욕의 대가로서의 더러운 이름뿐이다. 조선이 세계 왕조 역사상 보기 드물게 500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지배계층이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어도 비루하고 구차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100년도 안 돼 벌써 병들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병폐가 깊어져 영영 치유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강원랜드 등 공공기관의 채용비리에 가담한 자들을 모두 찾아내 일벌백계하고 불법과 부정으로 취업한 자들의 취업을 모두 무효로 해야 한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내일 지구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반드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