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법재판소를 우습게 만든 문재인 대통령

2017-10-19     법률저널

헌법은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기본 가치질서를 정하고,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원리를 정하여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하는 우리나라의 최고법이다. 따라서 어떠한 공권력 작용도 헌법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실제 헌법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입법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공권력 작용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헌법적 분쟁에 대하여 헌법규범을 기준으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림으로써 헌법질서를 유지·수호하는 국가작용이 바로 헌법재판제도이다. 오늘날 자유민주국가에서 헌법재판제도는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정치권력을 헌법의 틀 안에서 작용하게 함으로써 헌법을 실현하는 헌법수호의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제도는 대의제도, 권력분립제도, 선거제도, 지방자치제도 등과 함께 통치구조의 불가결한 구성원리로 인식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헌법재판제도는 통치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에 기속시키고 통치권 행사에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실질적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하게 한다.

이같이 중요한 민주적 통치구조인 헌법재판소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우습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법조인 출신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코드인사’ 고집으로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헌재는 만장일치로 김이수 재판관의 권한대행직 수행에 동의했다. 이에 청와대는 김이수 대행 체제를 유지키로 했다”고 발표했었다. 그러자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은 지난 16일 ‘장기간 공석인 헌재소장과 재판관을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는 전례 없는 입장문을 냈다. 헌법재판관들이 김 대행에 동의한 것은 임시적인 것이라고 청와대의 발표를 부인하고 대통령은 하루빨리 헌재소장을 지명하라고 한 것이다. 재판관들의 입장표명은 코드 인사로 대행체제를 장기화 하려는 대통령의 ‘꼼수’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국회에서 헌재소장 인준이 거부된 김이수 소장대행이 야당에 의해 국감 업무보고를 거부당하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야당을 비판했다. ‘헌재 재판관 전원이 김 권한대행 체제에 동의했다’며 김 대행 체제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이 삼권분립을 존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권한대행 체제에 찬성한 것은 한시적으로 김이수 재판관이 대행을 맡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이지 언제까지나 권한대행 체제에 찬성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는 게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하물며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그런 인식을 했다면 이는 견강부회식 자의적 해석으로 자질조차 의심케 한다. 대통령이 국회가 거부한 김 대행에게 사실상 헌재소장 역할을 계속 맡기려 했던 것이야말로 삼권분립을 거스르는 위헌적이고 독재적 발상이다. 더욱이 헌재 소장 임기 문제가 갑자기 발생한 것도 아닌데 입법 미비가 해소돼야 소장을 임명하겠다고 한 것도 논리 아닌 논리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기관을 법에 따라 정당하게 구성해야 할 책무가 있다.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에 대한 국회 인준안이 부결됐으면, 국회의 결정을 인정하고 새 후보를 세우는 게 순리이자 삼권분립의 정신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임시방편으로 그쳐야 할 권한대행 체제를 편법으로 밀어붙이는 무리수를 두면서 헌법재판소 비정상화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힘내세요 김이수’를 인터넷 검색어 1위로 올리자는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발상도 헌재를 희화화시킨다. 청와대와 여당의 댓글 선동은 헌법재판소도 ‘코드’에 맞춰 구성하겠다는 의지로 읽혀 헌재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국정에 반영될 국민의 뜻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거나 모른 척하는 행위는 이전 정부의 여론조작과 다르지 않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몸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법치를 어겼기 때문이다. 법치 대신 사적 채널을 통한 사치(私治)가 비극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핵심은 헌법 수호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재판관들의 요구를 존중해 진영 논리에 매달리지 말고, 중립적인 인물을 헌재소장 후보로 하루빨리 지명해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한다. 편법과 오기에 집착하면 또 다른 참사가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