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시험공화국과 청년, 그리고 문재인

2017-04-14     김주미 기자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시험으로 점철된 학창시절을 보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언제부턴가 ‘교육제도, 시험제도는 늘상 바뀌는 건가보다’라고 여겼던 것 같다.

큰 틀도 자주 바뀌지만 작게는 시험 이름이나 포함 과목부터 문제 유형까지, 그냥 “앞으로는 이렇게 된대”라고 하면 그에 맞춰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학생의 입장이다.

그러나 학부모가 행사하는 교육권의 지휘 아래 있던 미성년기의 학창시절 때와 달리 성년이 되고부터는 입장이 달라진다.

최근 결성된 ‘전국수험생유권자연대’만 봐도 그렇다.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평가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의 방향이 결정지어질 당사자인 수험생들 스스로가 “시험의 평가는 이러해야 한다, 이런 제도여야 수긍하겠다”며 목소리를 직접 내기에 이른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은 엄밀하게 말해 시험이나 교육제도의 당사자가 아니다. 대개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이론과 이상에 근거해, 때로는 모험과 실험의 의미로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한다.

시험제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으며 권리의 침해까지 걱정해야 되는 ‘당사자’는 분명히 수험생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교육과 시험에 관한 한 철저히 위로부터의 개혁방식만 경험했다. 위에서 결정하고 통보로 내려 보내면 그만인 것이다.

‘전국수험생유권자연대’가 굳이 그 명칭에 ‘유권자’란 단어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당연하게,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여기도 표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데 있다.

현재 공직의 임용을 위해 국가가 실시하는 시험제도는 상당히 많다. 여기에 지자체 주도로 실시하는 지방직 공무원 시험과 세무사·법무사·변리사·관세사 등 각종 전문 자격사시험까지 더하면, 대한민국이란 분명 ‘시험공화국’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수험생인 유권자 집단은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정치권은 이들을 바로 인식해야 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준엄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공부만 하는 조용한 집단’이라고 안일하게만 인식해서는 안 될 일이다.

수험생의 대부분은 청년으로서, 이들은 대개 포기와 체념이 일상이 되어버린 자신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쉽게 살아온 기성세대들에게 일종의 울분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들로부터 ‘헬(지옥)’이라고 불리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청년은 언제까지나 청년이 아니고, 머지않아 국가의 허리가 되어 대한민국 한 시대를 특징짓는 사람들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청년세대를 진심으로 품을 줄 아는 세력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

최근 문재인 후보측이 조금씩 발표하며 세간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국가인재 등용 방안 구상은 분명 합리적인 데가 있어보인다.

그가 일찍부터 추진해 온 법조인 일원화(로스쿨 일원화)를 비롯해 행정고시(5급 공채) 폐지, 공무원 민간특채 확대 구상은, 기존의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인 공무원 조직을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개방적이면서 탈관료적으로 바꾸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상적이고 세련된 느낌마저 있다. 수험생과 청년을 대변하는 본지에 몸담고 있지 않았다면 개인적으로 딱히 반대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구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는 그가 늘 강조하던 ‘사람이 먼저’라는 의식의 발로는 아닌 것 같다. 혹 그가 ‘먼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그가 판단하기에 합리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라도 달렸다면 모를까.

지난 몇 년 간 목이 터져라 부르짖던 사법시험 폐지 반대 수험생들,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사법시험 존치 요구를 드러낸 대다수 국민, 5급 공채 폐지 이야기에 문후보에게 그동안 보였던 지지와 신뢰를 다 거두겠다는 일부 행시생들은 결코 그에게 있어 ‘먼저인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인생을 걸고 매달리는 수험생들이 이 사안을 얼마나 큰 문제로 여기는지 조금이라도 공감했다면, 진즉 진정성 있게 이들과 소통하며 설득의 노력을 들였을 것이다.

헌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그가 옳다고 믿으며 추진하는 정책적 신념 앞에 이들은 없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건 아닐까 의구심마저 든다.

어쩌면 문후보는 수험생 몇 명을 한두번 만나 이야기 들어보고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뒤쳐진 사람들이므로 그들 스스로 바뀌어야 할 문제’라고 여겼을지 모르겠다. 그가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이전 정권과 크게 다른 점을 찾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