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 유럽소국 모나코④

2017-04-05     제임스리

 

 

 

 

 

 


제임스 리(Rhee James) 
호주 사법연수과정(SAB), 시드니법대 대학원 수료 
호주 GIBSONS 법무법인 컨설턴트 역임 
전 KOTRA 법률전문위원 
전 충남·북도, 대전광역시 외국인 투자유치 위원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고객위원 
저서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 (KOTRA 발간, 2004) 
현재 100여개국 해외여행 경험으로 공공기관 및 대학 등에서 강연

2. 유럽소국 ‘모나코’ 여행기④
: <그레이스 켈리 왕비(공비) 이야기>


전편에 이어... 

모나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히치콕 감독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금발머리의 미국 여배우로서 열정이 가득한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의 전 왕인 레니에 3세와의 결혼 이야기인데, 몇 년 전에 영화 ‘Grace of Monaco’가 개봉되면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니콜 키드먼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그레이스 켈리는 미모가 뛰어났으며, 남들보다 더 열정적인 삶을 살았기에 아마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빛나고 있나 보다.

이들의 결혼은 단순한 결혼을 넘어서 모나코의 관광 산업뿐만 아니라 모나코의 미래까지 달려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나코에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을 경우 모나코는 프랑스에 귀속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레이스 켈리는 결혼 후 모나코 공녀 카롤린과 알베르 대공, 그리고 스테파나 공주를 낳았다.
 

그레이스 켈리는 192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명한 부잣집 딸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건축회사 사장이었고, 어머니는 모델출신의 미인이었다. 그런 그녀는 유복한 가정생활과 뛰어난 가정교육으로 손꼽히는 훌륭한 여성으로서 성장했다.

1954년 그녀가 모나코를 방문하였을 때, 그곳에서 레니에 3세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결정적으로는 레니에 3세의 막역한 친구이자 그리스의 선박 왕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오나시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시작하였고, 그렇게 두 사람은 알게 모르게 인연을 계속 유지해 나갔다고 한다.

"그레이스!!! 나의 궁전은 나 홀로 지내기엔 너무 넓어요..." 이 로맨틱한 청혼에 넘어간 그레이스 켈리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당시 그레이스는 그녀의 인기의 절정을 찍는 ‘상류사회(1956)’라는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레니에 3세로부터 받은 청혼반지를 그대로 끼고 나왔다고 한다.

당시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3천명 이상의 유명인사들이 기차, 비행기, 선박, 요트 등을 이용해서 모나코를 방문했는데, 당시 결혼식에 몰린 사람들이 쓰고 간 돈이 모나코가 운영하는 1년 재정의 약 20% 이상에 육박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나코는 프랑스에게 합병당할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오나시스와 레니에 3세의 예상대로 다시 관광수입이 급증하고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이 시샘을 했는지, 그레이스 켈리는 몬테 카를로에서 당시 스테파니 공주가 엄마에게 기분전환을 시켜준다고 차를 몰고 파리 시내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스테파니 공주는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졌지만 그레이스 켈리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레이스 켈리의 사망 이후에도 레니에 3세는 재혼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으며, 사후 그레이스 켈리의 무덤 옆에 묻혀있다고 하는데, 세기의 러브스토리와 결혼생활 그리고 슬픈 비극으로 끝을 맺은 모나코의 왕비(공비),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모나코 사람들은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 왕비(공비)를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