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로퀴’ ‘사시충’ 극단적인 댓글 문화

2017-03-31     이성진 기자

[법률저널=이성진 기자] 수개월 전, 한 로스쿨 재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그 역시 기자 출신이라며 법조인력양성제도에 대한 본지의 논조 비판과 함께 기사 배열에 대한 불만을 담은 내용을 보내 왔다. 그래서 논조는 생각하기 나름이며 로스쿨 또는 사법시험 등 제도에 대한 고의적 편향성은 없다고 회신했다. 이후 수회에 걸쳐 반박, 재반박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마지막 회신에서 로스쿨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기인한 기사 작성과 치우침 없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달라며 재차 부탁했다. 기자가 그와 논의를 주고받으면서 느낀 것은, 작성자의 내면적 의도와는 다르게 기사내용이 이해되고 이를 통해 누군가는 불쾌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 역시 타 매체 기사를 접할 땐 극히 조심스럽게, 심지어 행간을 파악하고자 애쓰면서 작성 기자의 내면을 읽고자 노력하지만 때론 불만부터 쏟아내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질감을 느끼는 직업군이면서도 비판부터 하고 보는 습성을 떼어내기가 여간 쉽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제3자적 시각에서 보는 일반 독자의 입장이라면 그 행간의 뜻과 전체적인 의미를 1인칭 시점으로 읽어내기란 더 귀찮기 마련이다.

그와 주고받으면서 느낀 또 하나는 기사 작성 경위와 의도 및 목적, 또 제도적 장단점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감정을 삭이고 상호 이해의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흔히 체감하는 일반적 이해의 과정이지만 나름 의미있는 공방이었다.

로스쿨이 출범한지 9년이 됐지만 법조인력양성제도를 두고 로스쿨과 사법시험 측간의 감정적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본지 홈페이지에서도 ‘로퀴’니 ‘사시충’이니 막말이 오가고 급기야 상호 인격모독으로까지 이어지는 댓글들을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제발 댓글들을 정화시켜 달라며 참다못한 양쪽 독자들로부터 항의전화까지 받곤 한다.

이해하려기보다 감정부터 드러내며 육두문자 욕설을 내뱉는 자극적인 댓글들이 더 늘어나는 듯하다. 이젠 그 대상도 수험생 상호간을 넘어 교수, 법조인, 정치인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들이다.

익명을 의지한 배설과도 같은 댓글문화에 적지 않게 놀라곤 한다. 따지고 보면 법조인력양성제도에 대해 행정부 및 정치권, 그리고 법조계, 법학계의 확고한 결단 미비가 이를 키워왔고 또 언론들의 성의 없는 기사들이 이를 더욱 부추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자 역시 이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제도의 문제점은 그의 문제점에서 해결을 찾아야지 그 제도를 신뢰한 ‘乙’로서의 학생 또는 수험생 상호간의 대립으로 비화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자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어느 제도든 드러나는 문제점은 분명 고쳐나가야 할 것이며 또 이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해야함이 마땅한 자세라고 견지하고 있다.

“사법시험을 존치해 달라”는, “로스쿨 안착에 더 신경 써 달라”는 수험생, 학생들은 이 점에서는 분명 무죄다. 예비시험 재논의의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이며 로스쿨 제도를 믿고 왔으니 알찬 교육을 시켜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양보하면 “저 제도는 이런 문제점들이 있으니 다른 제도를 고려해 봐야 한다”는 정도도 수용할 수 있는 영역인 듯하다.

절대적으로, 특히나 수험생, 학생들 상호간에 넘어서는 안 될 것이 “저 제도는 절대 안 되고 이 제도만이 해답” 또는 “저 제도는 불안하니 무조건 이 제도가 좋다”는 식의 극단적인 대응은 피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꿈을 안고 실천해 나가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상호간 예의이지 않을까.

그 이외의 비판과 불만은 ‘乙’간이 아닌, 정치·행정부의 높으신 ‘甲’분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여론형성이며 건전한 댓글문화로의 회복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