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스쿨에서의 법학교육과 과제

2017-02-10     김태명

 

 

 

 




김태명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름만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바뀌었지 법학과 학부 수업이랑 내용이 똑같아요. 어떤 교수는 학부 때랑 똑같은 교재를 쓰면서 판례 이야기는 거의 안 하고 이론만 읊어대고, 어떤 교수는 자기 학설 위주로 가르치고 거기서 시험을 냅니다. 교수들을 믿을 수 없어 인터넷 동영상으로 신림동 강사들한테 배워요. 배우는 건 학부랑 똑같은데 등록금은 왜 서너 배 비싼지 모르겠어요.” 어느 일간지에 실린 한 로스쿨학생의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이러려고 교수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지난 해 이 맘 때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법률저널에 로스쿨체제에서의 법학교육의 문제는 교육에 있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법률전문가를 양성하는 법학교육이 반드시 로스쿨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 법조인의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 반드시 변호사시험으로 일원화되어야 하는가 등의 난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로스쿨에서의 법학교육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이도저도 안 된다는데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없는 듯하다.

로스쿨 개원 이후 8년 동안 강의자료 만들고, 수업하고, 시험 치르게 하고, 채점하고, 강평하는 등 학생들과 씨름을 해왔다. 그러는 동안 “참으로 세상은 더디게 변한다.”는 사실을 수차례 느꼈다. 로스쿨 개원 이후 법학교육의 외양은 벽해상전(碧海桑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이 변했다. 기존의 낡은 건물이 대리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건물로 탈바꿈하였고, 실무경력을 가진 교수들이 대거 영입되었으며, 시험문제도 통합형이나 기록형이니 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출제된다.

그런데 왜 교육은 과거와 똑같다는 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일까? 외양은 쉽게 변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실이 변하기는 어렵다. 여태껏 자신이 받았고 그리고 자신이 해왔던 교육을 부정하는 수준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좀처럼 내실은 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대법학은 외국법이론의 계수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스스로 근대법체계를 수립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독자적 법이론체계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외국에서 계수한 법과 법이론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법학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이유가 못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가 외세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수립하고 법체계를 갖춘 이후에도 외국법이론의 수입과 이를 바탕으로 한 법교육이 계속되었다는데 있다. 필자의 전공이기도 한 형법은 어떤 다른 분야보다도 외국법이론에 대한 의존도가 컸고, 그러한 경향은 로스쿨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행위론, 범죄체계론,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 등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외국법이론에 대해 한 자락을 늘어놓지 않으면 형법을 공부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로스쿨은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건전한 직업윤리관을 가지고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외국에서 수입한 이론을 충실히 익히는 것으로는 로스쿨의 교육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법학은 분명 사회과학의 한 분과이며, 사회과학은 사회적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법학은 법현실, 즉 실정법과 실제로 발생한 사건 그리고 실정법을 실제사건에 적용한 사례를 자료로 삼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 그 나라에서 제정된 법률과 그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 그리고 그 나라에서 내려진 판결을 토대로 형성된 외국법이론을 자료로 삼아 그것을 정리하여 교과서를 만들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시험을 치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로스쿨시스템에서는 우리나라의 판례가 가장 중요한 법교육의 소재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판례는 법원이 실제의 사건(소전제)을 실정법(대전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제된 쟁점에 대해 판단을 내린 사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례에는 실정법, 사실관계, 쟁점 그리고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법원이 채택한 법리가 들어 있다. 로스쿨의 교육목표인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의 배양은 이처럼 다양한 판례를 접하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필자와 같은 법학교육자의 역할은 실정법체계에 따라 중요한 판례를 선별하여 관련조문, 사실관계, 법리를 정리하여 학생들에게 강의자료로 제공하고, 수업시간에 그 내용을 설명하며, 효과적으로 변호사시험에 대비할 수 있는 문제를 구성하여 시험을 치르고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만큼이나 다양한 법률과 사건이 넘쳐나는 나라가 어디 또 있겠는가? 법학자들이 마음먹고 달려들었다면 다른 어떤 나라에도 손색이 없는 독자적인 법이론과 법교육방법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벌써 2월에 접어들었고 개학까지는 며칠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간에 개정된 법률과 새로 나온 판례를 정리하고 올해 변호사시험 문제에 대한 해설지를 만들어야겠다. 이번에도 수강생들이 첫 시간부터 수업을 한다고 불평을 할려나 아니면 나름 수업준비 하느라 애썼다고 격려해 줄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