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7)-박유천과 강정호

2016-07-15     신종범

 

 

 

 



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전 군검찰관, 국방부 소송총괄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박유천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어느날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기에 검색에 보니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는 내용과 꽤 유명한 한류스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TV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박유천을 잘 몰랐다고 하니까 나를 보고 ‘아재’라고 한다. 어쨌든 박유천은 모 유흥주점에서 술을 먹다가 주점 내 화장실에서 피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되었다. 고소인은 그 주점에서 일하는 여성이었다. 관련 사건 보도가 인터넷과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고소인은 성폭행을 당했다는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고소를 했고, 며칠 후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강간죄가 더 이상 친고죄가 아니므로 경찰은 수사를 계속 진행했다. 그러는 사이 신문, 인터넷을 통해 온갖 기사가 올라오고, 종편에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갖은 추측을 쏟아 내었다. 고소인과 박유천은 어떤 관계인지, 술자리에는 누가 함께 하였는지, 그 주점은 어떤 업소인지, 왜 성폭행 장소가 화장실이었는지, 고소 취하의 대가로 얼마를 주었을런지 등 사람들의 호기심과 본능을 자극할 만한 내용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그런데, 고소 취하로 일단락될 것 같았던 사건은 오히려 일파만파로 전개되었다. 고소가 취하되자 마자 다른 3명의 여성이 박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연이어 고소장을 제출한 것이다. 사건은 더욱 대중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며 인터넷과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카메라는 박씨의 소속사와 박씨가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는 구청에 렌즈를 맞추고 박씨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았다. 박씨는 건장한 체구의 보안요원들에게 둘러싸여 간신히 근무지를 오갈 수 있었다. 보안요원들 사이로 잡힌 박씨의 모습은 너무나 초췌하여 한류스타라는 수식어가 무색했다. 수사결과가 어찌되었건 박씨는 이미 대중으로부터 중형을 선고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1달 후 경찰이 박씨의 4건 성폭행 고소 사건 모두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박씨에 대한 무혐의 보도는 국민을 개, 돼지에 비유한 모 고위공무원 사건, 사드 배치 등 굵직한 다른 사건에 자리를 내어주며 짤막하게 이루어졌다. 이제는 언론도 사람들도 박씨에 대한 무혐의 처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강정호는 잘 알고 있다. 어릴적부터 야구를 좋아하는 터라 프로야구 선수들을 많이 알고 있기도 하지만, 강정호가 속해 있던 넥센이 좋아하는 프로야구 팀 중 하나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작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그는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즐비한 미국 무대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찬 모습으로 안타와 홈런을 뿜어 냈다. 올해도 비록 작년 말에 경기 중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재활을 거쳐 조금 늦게 팀에 합류하였지만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유천을 잘 몰랐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강정호 사건이 박유천 사건보다는 더 큰 뉴스라고 생각했다. 관련 후속보도가 이어질 것이고, 인터넷과 언론에서 또 한번 난리가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강정호가 모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후속보도나 호기심을 끌만한 보도도 웬만해선 찾을 수 없었다. 사건 보도가 있던 다음날 강정호는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고, 역전타까지 때렸다. 수훈 선수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는 성폭행 사건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강정호 뿐만 아니라 구단 및 관계자들 모두가 성폭행과 관련한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고 있고, 언론도 추측성 보도를 하지 않는다. 현지 언론으로부터 자료를 받지 못하니 국내 언론에서도 쓸 내용이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강정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합에 나가고 자기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박유천과 강정호는 모두 성폭행 혐의로 고소 되었다. 박유천은 수사결과도 나오기 전에 이미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고, 언론의 관심과 대중들의 싸늘한 시선으로 인해 연예활동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지만, 강정호는 마치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경기에 나가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고, 그가 속한 팀의 팬들은 그가 경기에 나가는 것에 찬성하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연예인이나 프로선수 등을 바라보는 한국민과 미국민의 시각차, 양국간의 언론 환경의 차이 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형사피의자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도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강정호가 고소된 이후에도 소속팀은 아직 증거수집단계일 뿐이라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강정호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고 있고, 사건 관련하여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미국 경찰도 기소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공식 발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우리 헌법에도 규정되어 있는 형사소송에 있어서의 대원칙이다. 또한, 우리 형법은 수사기관이 공판청구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원칙이 박유천 사건에서 지켜졌을지 의문이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미 기소전에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이 보도되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례를 보게될 때가 있다. 대중들의 본능적 호기심을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과연, 강정호 선수가 한국에 있었다면 계속 경기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