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대판 골품제’로 운영한 로스쿨 퇴출해야

2016-06-09     법률저널

로스쿨 입학 자기소개서에 집안배경을 쓰도록 사실상 묵인함으로써 소위 금수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로스쿨들이, 이번에는 학교 카스트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한 사립 로스쿨이 서류심사 단계에서 출신 대학을 다섯 등급으로 나눠 사실상의 출신대 등급제를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나 연고대 출신에게는 최고 등급으로 70점을 주고 최하 등급 대학 출신자에게는 40%나 낮은 42점을 주는 식이다. 출신 대학 점수가 낮은 지원자는 격차가 최대 10.5점에 불과한 법학적성시험(LEET)이나 학부 학점을 아무리 잘 받아도 차이를 만회하기 어렵도록 했다. 자기소개 평가서의 점수 격차가 최대 2점에 불과한 걸 고려하면 출신대 등급제가 금수저 논란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또 평가 항목에서는 나이가 많을 경우 불이익을 주는 연령차별도 있었다. 전문 자격증이 없는 지원자들은 ‘병역미필 27살 이하, 병역필 30살 이하’ ‘병역미필 31살 이하, 병역필 34살 이하’ ‘병역미필 35살 초과, 병역필 38살 초과’로 나눠 각각 20점, 17.5점, 15점을 매겼다.

로스쿨 입시를 둘러싼 논란이 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출신대 등급제’와 ‘연령별 차별’ 논란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나이에 의한 차별은 실정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우리 헌법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이를 구체화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나이를 이유로 교육시설 이용에서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로스쿨에서 법을 위반하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다른 로스쿨들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학 등급제와 연령에 의한 차별은 정량평가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자의적인 기준이 당락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현대판 골품제’와 다르지 않다.

그간 소문으로만 돌던 학부와 나이에 대한 선호와 차별이 로스쿨 입시 서류평가 기준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에 로스쿨 입시 준비생들이나 관련 단체들은 분노했다. 로스쿨이 결혼정보회사도 아니고 학교별과 연령별 차별화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혜 대상이 아닌 자는 들러리에 불과한 셈이다. 등급이 낮은 비명문대 출신의 학생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한국판 카스트를 극복할 수가 없다. 출신대학, 연령, 사회·경제적 배경이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면 계층 이동의 통로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고 보통의 젊은이들은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달리기 경주에서 선수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면 그 경주가 공정하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와 학벌이라는 잣대는 불공정한 절차를 통과한 법조인을 만들고, 이들은 구시대적 법조계 네트워크를 재생산하게 마련이다.

로스쿨이 학생 선발에 일정 자율은 보장돼야 하지만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점수화할 요소가 아닌 것을 평가기준으로 삼은 것은 자율을 넘어선 명백한 위법행위다. 서울변호사회는 “학벌에 따라 훌륭한 법조인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며 “학벌은 단순히 어느 대학을 나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고주의에 기반하여 폐쇄적인 권력구조를 만드는 원천이고, 학벌에 기반하는 선발방식은 수십년간 법조계의 폐해로 지적된 법조계 권력관계를 재생산한다”며 로스쿨 제도의 도입과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도 “무슨 근거로 SKY 대학 출신자들의 성실성이 C, D 등급 출신 대학 지원자들에 비해 우수하다고 평가하는지 어안이 벙벙하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학벌편중주의 타파와 시험 한방의 사법시험에 대한 대안으로 출발하였다는 로스쿨체제가 노골적인 학부 등급제를 실시하여 학교 서열화와 고착화에 앞장서고 있을 뿐 아니라, ‘수능한방’ 및 ‘면접재량’으로 법조인을 선발하는 개악으로 전락한 것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로스쿨 제도인지 되물었다.

교육부는 내부문건이 공개된 로스쿨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해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결과에 따라 응분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모든 로스쿨을 대상으로 출신학교와 연령차별 실태를 조사하고 즉각 시정조치와 아울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로스쿨이 학생선발에 있어서 불공정한 선발의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법률에 직접 규정하도록 법률개정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