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법시험 존치, 더 이상 지체할 이유 없다

2016-04-29     오신환










오신환 국회의원(법제사법위원, 새누리당)

고려시대에 음서제가 있었다. 아버지나 조부가 고위관직에 있을 경우 그 자손은 과거시험을 통하지 않고서도 벼슬길에 나아갈 수 있는 제도였다. 심지어 음서제 출신 관리가 과거제 출신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 그 개인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의 혈연적 요소가 그 지위를 결정했고, 그에 따라 그 부와 권력도 자연스럽게 세습할 수 있었다. 이러다보니 고려시대 문벌귀족이나 권문세족 같은 귀족 가문이 형성되고, 부정부패로 얼룩지다 종국에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붕괴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요즘 로스쿨이 고려의 음서제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과 함께 로스쿨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법시험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로스쿨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사법시험을 대체하기는커녕 오히려 로스쿨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의원의 자녀가 로스쿨 시험에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도 하기 전에 대기업에 입도선매되었다 시험에 낙방해 결국 대기업 고용이 취소되는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사태도 벌어졌다. 어디 그 뿐인가. 한 로스쿨 교수는 양심선언을 통해 로스쿨 입학청탁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법시험은 개인의 실력으로 합격·불합격이 결정된다. 아무리 좋은 집안의 자제라 할지라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합격할 수 없다. 반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합격하면 출세의 길이 보장되는 희망의 사다리이다.

물론 사법시험에 대하여 대학의 법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고시낭인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일면 타당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로스쿨출신들 마저도 모자란 법학교육을 위해 사설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 또 변호사시험이 5회로 응시가 제한됨으로써 변시낭인이 발생한다는 점을 볼 때 로스쿨이 사법시험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사법시험과 로스쿨을 병행존치시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두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고 투트랙으로 운영되면 상호 보완을 통해 법조인양성제도가 더욱 투명하게 운영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국민 법률서비스 역시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1년 전, 필자는 4.29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사법시험법>과 <변호사시험법> 개정안, 이른바 사시존치법을 대표발의 하였다. 또한 수차례의 토론회, 공청회 및 현안질의 등을 통해 사시존치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작년 12월에는 법무부가 사시폐지를 4년 유예한다는 발표를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시존치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사시존치법 논의를 위해 법안소위가 한 차례 열리기는 했으나 이해 당사자간의 논란을 핑계로 관련법 논의는 중단된 상황이다. 법무부가 사시폐지 4년 유예안을 발표한 뒤로는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총선이 지난 4월 22일에야 첫 회의를 열었다. 자문위 구성 발표에서 첫 회의까지 4개월이 넘게 걸렸고, 그렇게 시작된 1차 자문위 회의는 아무런 성과없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제19대 국회도 막을 내린다. 그렇게 되면 자문위원회 역시 자동적으로 해산된다. 자문위는 사시존치를 위한 의사결정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도출된 합의내용이더라도 국회에서 다시 재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다시 말해 자문위 운영에 힘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촉박한 마지막 임시국회 의사일정을 감안할 때 자문위에 사시존치의 명운을 맡길 수는 없다.

따라서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최대한 빨리 사시존치 관련법을 의사일정에 포함시키고 여야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로스쿨 문제의 심각성과 사법시험 존치의 필요성을 밀도 있게 검토하고 사법시험 존치든, 폐지유예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황금같은 시간을 아끼고 신속한 결정을 위해서 자문위원들을 법안심사소위에 불러서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