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의 우리 법학

2001-09-13     김상용

새 시대, 새 사회를 간절히 소망하며, 마음 설레이면서 기다리던 2000년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1999년간을 영원히 과거로 남겨두고, 시간의 흐름은 우리 모두를 새 시대에 데려다 놓았다. 중단없이 전진만 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구나 새 천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색다를 것이다. 법학, 그 중에서도 민법학을 평생의 業으로 연구하여 온 필자로서도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민법학의 가야할 모습을 그려보면서, 새 천년의 법학과 민법학의 방향을 다시 한번 정립해 보고자 한다.

 

새천년은 법학지식을 공유하는 사회가 되어야

 

새롭게 시작되는 새 천년은 지식이 산업의 중심이 되는 지식산업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보가 가장 중요한 사회가치로 인정받는 정보화 사회이며, 동시에 경쟁이 무한으로 펼쳐지는 무한경쟁사회가 될 것이다. 또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국경이 없어지는 명실상부한 국제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에 우리의 법학은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각자가 각각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법학분야에서 각 職域의 구분을 없애고, 함께 지혜를 모아 우리의 법학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계와 실무가 서로 격리되어 학문적 교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서로가 경계의 담을 헐고, 각자가 갖고 있는 법학지식을 함께 사회를 위하여 활용할 수 있는 새 천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무한경쟁사회에서 우리 사회를 救援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각자의 영역의 담을 쌓고 살아 보아도, 그것은 발전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퇴보를 자초하는 것임을 머리로 깨닫고 가슴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함께 서로 주고 받으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우리 법학계가 하루속히 이루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제화 시대에 우리의 법학을 구축하기 위한 不斷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화 시대의 법학의 발전전략으로서, 먼저 법학을 하는 사람들은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새로운 분야의 연구와 함께, 세계의 각 지역의 특수법도 연구하여야 한다. 미개척의 법학의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이해하여, 즉시즉시 우리의 법으로 變容하여야 한다. 우리도 열린 마음으로 외국의 새로운 이론을 그때 그때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법학자들은 외국의 새로운 법이론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진취적이고 개척자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과 법학의 기초를 제대로 쌓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가 하나로 되지만 각 지역의 특수성은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세계의 각 지역의 특수한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을 배양하여야 하며, 각 지역법의 전문가가 배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세계의 몇몇 나라의 법만을 연구하여 왔으나, 새 천년에는 세계 각 지역의 地域特殊法의 연구와 이해에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지역법 전문가가 배출되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세계 각 지역과 교류를 원활히 할 수 있는 넓은 안목을 가져야한다. 앞서가는 몇몇 나라의 법만을 비교연구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전 세계의 모든 지역의 법을 연구하는 넓은 자세로 법학의 연구영역을 넓히고, 연구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좁은 영역안에서만 결코 살아갈 수 없다. 법학도 예외가 아니다.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하고, 未知의 다른 나라의 법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기초가 튼튼한 법학을 구축해야

 

또한 기초가 튼튼한 법학의 구축이 필요하다. 정보화 사회의 도래로, 예전에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에 대한 새로운 법이론의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청된다. 그러한 새 시대의 새로운 현상에 대하여 법적 해답을 주어야 하고, 새로운 문명의 발전방향도 정립해 주어야 한다. 과학의 폭발적인 발전에 대해, 법학이 형식논리만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인류의 장래를 생각하는 긴 안목에서, 과학발전으로 인한 축복과 재앙으로 부터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깊은 철학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사회발전에 대응할 수 있는 법이론을 개발하여야 한다.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기 위해서는, 법학의 기본 내지 근본을 튼튼히 쌓아야 한다. 인간, 사회, 역사, 철학 등에 대한 깊은 이해의 바탕위에서 법이론이 정립되어야 한다. 법학이란 결코 논리의 학문이 아니라 가치의 학문이다. 그런데 昨今의 우리 법학계의 풍조는 기초를 다지지도 않은 체, 細技를 부리는 모습이 지배적이다. 교과서 보다는 간단한 해설서에 의존해서 법조인의 자격만 취득하면 된다는 기초를 잃어버린 듯한 法學徒, 기초를 다져야할 법과대학에서 고시강의가 그 중요성이 인정받고 있는 대학의 모습, 기본적인 교과서 보다는 문제집이 더 많은 법학분야의 출판양상, 어느 하나도 법학의 기초를 탄탄히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들이다. 새 천년에도 이러한 양상이 법학계의 중심모습이 된다면, 냉혹한 무한경쟁시대에는 살아 남기가 어려울 것이다.

법학자는 긴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법학을 하는 사람은 긴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법학이란 긴 역사의 침전물이다. 법은 善과 衡平의 技術이며, 법학은 단순한 논리의 학문이 아니라, 가치의 학문이며 동시에 하나의 德目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의 본래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 立身揚名의 수단으로서의 모습만이 무성하다. 이제 근본을 찾아 기초를 튼튼히 구축하여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인 것이다. 그러면 生命이 있는 법학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천년에는 생명이 있는 법학, 생명이 긴 법학을 구축하여야 한다.
새 천년에는 그 동안 이룩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것을 하나하나 제도화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법학을 공부하고, 법학을 연구한 수 많은 인재들이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지만, 법이 지배하는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은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에는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법이 우리의 생활의 일부가 되지 못한데 있지 않나 생각된다. 새 천년에는 법이 생활의 일부로서,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살아 움직이는 법이 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럴려면 법의 내용이 理致에 맞아야 하고, 법의 적용과 집행이 또한 수긍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따를 수 있는 법, 수긍이 가는 법, 권위가 서는 법, 德스럽고 위엄과 체통이 서는 내용의 법을 우리는 가져야 하겠다. 법을 탐구하는 수 많은 인재들이 함께 지혜를 모으면, 세계속의 우리 법의 독자성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새 천년에는 국제화와 함께 우리 법의 독자성도 구축하고 지켜 나가야 한다. 우리 법의 독자성이 구축되었을 때에 비로소 국제화 사회에서 우리의 實存을 유지하고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새 천년에 우리 법의 독자성을 이룰 수 있는 첫 작품은 지금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민법개정이다. 개정되는 민법 속에는 민법이 생활 속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제도의 입법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근본적인 제도개선으로는, 그 동안 비정상적인 부동산거래에 대해서 공법적 규제로 대처하여 왔는데, 등기원인증서를 공증하도록 하여 생활 속에서 부동산거래가 자연스럽게 정상적으로 거래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긴 역사적 안목에서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하는 민법개정작업이 추진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통하여 우리 법의 독자성을 이룩하여야 한다.
새 천년에는 근본과 기초가 튼튼한 법학의 구축, 외국의 새로운 법학의 동향을 항상 추적할 수 있는 체제의 구축, 우리의 독자성을 살려나갈 수 있는 법학의 구축,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제도의 개선, 우리 국민과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법학의 구축을 추구하고 싶다. 이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는 마음과 제도의 벽을 헐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 가능하다. 또한 자기의 고뇌를 담은 법학저서가 많이 출판되고, 그러한 勞作들이 사랑을 받는 법학풍토가 되어야 가능하다. 자기만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 넓은 바깥 세계도 볼 수 있는 안목과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바깥 세계를 보고자 하는 개척자적 자세가 필요하다. 법학분야에도 연구할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해야할 분야가 많고, 숨겨진 연구과제가 수 없이 많다. 그 모두는 법학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찾아내야할 보물들이다. 그러한  보물들은, 긴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차근차근히 기초를 튼튼히 갖춘, 도전적이고 개척자적인 자만이 취득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이러한 사람들의 편에 서 있음을 잊지 말자. 새 천년에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