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새로운 시작과 ‘목적있는 공부’ (3)

2015-03-20     신희섭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자동차. 터널을 들어왔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알기 어려운 그래서 밀려오는 갑갑함. 이것이 한국경제의 현재 상황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 얼어붙은 시장의 소비심리는 녹을 줄 모르고 있다. 소비하락은 한국의 자영업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수출산업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기대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수출산업이 돈을 잘 벌어도 국내 다른 경제주체에 주는 혜택은 크지 않다. 대기업이 중심이 되어 있는 수출 분야와 영세 자영업 분야의 시장인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은 불안한 경제상황에 대비해 자금을 보유하는 방안을 택하면서 고용을 늘리지는 않고 있다. 더욱 어려워진 취업난은 젊은 세대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은퇴이후의 인생 2모작의 준비가 안 된 채 은퇴를 하게 된 노인인구는 줄어든 소득과 늘어난 수명만큼 경제적 고통도 같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전쟁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세대가 주로 소비를 이끌어주었는데 이 세대들의 기대소득이 낮아지면서 소비는 더욱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세계경제조건도 한국에게 녹색신호를 주지는 않고 있다.

경제가 나빠지면 확실히 사람들은 움츠려들기 마련이다. 사회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저축과 같은 방법을 이용해 미래에 대해 대비를 한다면 모르지만 이제 사회로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현실의 경제상황은 즉각적이며 대응이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서두가 길어진 것은 지난 해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작년에 한 대학에서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물을 기회가 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던 중 에 한 학생이 자신은 꿈이 없다고 했다. 꿈을 가지면 뭐하냐고 반문했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자신이 꿈을 가진다고 해서 이를 이룰 가능성이 없다면 꿈을 가지는 것 자체가 사치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단지 한 학생의 염세주의로만 보기 어려웠던 것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그 강의실에만도 몇 명 더 있었기 때문이다.

한 방 얻어맞은 듯 했다. 생각이 짧은 학생들의 푸념 정도로만 들리지 않은 것은 요즘의 20대들의 퍽퍽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피부로 체감하는 한국경제상황과 그와 연관된 사회적 변화들은 꿈을 가지지 못하는 이들의 입장을 납득하게 만든다. 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와 같은 사회현상은 이들의 아픈 현실을 공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나이에 이 젊은 친구들은 과연 이것을 포기하고 싶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난해한 목적론까지 끌어들여서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상황은 어렵고 어두운 터널의 끝이 어디일지 알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체념만 가지고 미래를 맞이할 수는 없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회는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기회 자체가 더 좁아진 것은 확실하지만 여전히 기회는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함으로서 역으로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한국은 가치가 편향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유교적 가치에 영향을 받아 관직에 나서기를 선호하며 대기업과 같은 거대조직이 주는 안정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어떤 기업에 다니거나 중앙부처의 공무원이 되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신분을 얻는 것이 된다. 몇 몇 알아주는 직업군들을 제외하면 다른 직업군은 신분피라미드에서 열패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과 문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의 숫자에 비해 이 자리를 차지하려는 아주 많은 지원자들이 있다. 한 방향을 보고 모두가 달리는 사회. 그래서 한국의 대학진학율은 세계최고를 기록한다.

1940년대부터 한국에 외교관으로 왔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정치를 ‘소용돌이 정치’라고 평가했다. 중앙을 향해서 마치 소용돌이가 치듯이 경쟁하는 한국사회구조는 이 외국학자의 눈에도 정확하게 들어온 것이다. 소용돌이를 타고 중앙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한 사람은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며 하나의 계급 군을 이룬다. 반면에 소용돌이에 휘말려있지만 중앙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되면 성공하지 못한 삶으로 치부되며 다른 계급 군이 되어버린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한 방향을 향해서만 달려가야 할까? 사회 모든 사람들이 의사를 선호해서 사회에 의사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들이 변호사가 되어 다른 변호사들에게 사건 수임을 의뢰하는 상황이 되는 상황이 되면?

사회적 구조 안에서 나의 목적 즉 나의 쓰임새를 생각해 보는 것은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만약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신은 왜 나를 만들었을까? 신이 짜둔 세상질서에서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면에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의 대서사시에서 나의 극중 역할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볼 수 있다.

일상의 주변을 보면 자신의 쓰임새를 잘 만들어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본다. TV에서 자주 보는 MC 유재석은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쓰임새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 요즘 핫 한 걸그룹 EXID는 콘서트 장에서 아니면 브라운관에서 놀라운 춤사위로 지친 영혼들에게 위안을 준다. 가로수길의 ‘한잔의 추억’은 그 집 특유의 치킨과 떡볶이로 가끔씩 가출하는 나의 영혼을 불러온다.

자신의 쓰임새를 새로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관직의 꿈을 찾기 위해서 고시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본다. 잘 다니던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사회봉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원에는 한 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금단의 열매인 학문의 즐거움을 위해서 50대에도 공부를 다시 시작한 분들이 적지 않다. 강남역 ‘기리야마 본진’ 사장님은 오랜 외교관생활 중 일본에서 우동에 매료되어 일본 장인의 기술을 도입해서 현재는 에도식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자신이 사회와 어떻게 호흡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정할 때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목적 즉 쓰임새가 될 일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좋아할 뿐 아니라 그것이 내 인생의 중요한 목적이 된다면 잘 할 가능성이 높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이것이 내 목적과 연결되면 성취감도 가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잘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자질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례들을 알고 있다. IT 분야에서 세계최고의 입지를 만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보면 이들이 자신들의 자질을 믿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만약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나와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기업체에 취업을 했고 그 분야의 전문직으로 남아 있었다면 과연 인류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전기자동차회사 테슬라를 운영하면서 우주여행과 화성기지구축을 준비하고 있는 엘론 머스크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기성조직에 안주하여 제도권의 기업에 들어가서 높은 연봉을 받는 것에 만족했다면 우리는 현재 테슬라 같은 엄청난 전기차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를 만들어내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창의성이 중요한데 이것은 굴레가 될 수도 있는 기존 제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기존 제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자질에 비추어 볼 때 맞지 않는 것이다.

개인이 가진 자질과 선호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도 공부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타인들을 유심히 관찰하면 좋다. 그럼 나와 다른 것이 보이면서 자신을 볼 수 있다.

다양한 가치관을 고려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세웠다면 다음에 필요한 것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목적있는 공부’를 위한 전략과 전술에 대해 다루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