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 인사혁신, 고시생·공시생 ‘뿔났다’

2015-01-30     이상연 기자

“공채 축소 및 경채 확대는 젊은이들 꿈 짓밟는 것”

[법률저널=이상연 기자] “공채를 줄이고 경채(경력채용시험)를 늘리는 것은 젊은이들의 꿈을 짓밟는 것입니다”, “해외 공직채용설명회를 개최하겠다는 발상은 혈세를 낭비하는 외유형 출장에 불과합니다”

행정고시 준비행 김진철(29·가명)씨는 최근 인사혁신처(처장 이근면)가 공채 축소 및 개방형 직위 확대 등 ‘국민인재 열린 채용’을 기조로 한 이른바 이근면 혁신안에 대해 설익은 발상이라며 이같이 비판했다.

김씨는 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며 “소위 있는 집안 자제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해외인재 채용이나 경채를 확대하는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막는 것이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앗아가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21일 공직사회의 개방성을 크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올해 업무계획을 세우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2017년까지 5급 이하 공채를 50%로 줄이고 나머지 50%는 경력직을 채용하겠다는 것.

또한 5급 민간경력자 일괄채용시험의 선발단위를 직무분야(1∼3명 선발)에서 직무군 또는 직류(직렬) 단위로 개편하고 채용규모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인사혁신처 주관 ‘7급 민간경력자 채용시험’ 시범 실시해 7급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이 처장은 사상 처음 해외 공직 채용설명회를 개최할 계획도 밝혔다. 해외 설명회를 통해 특별채용 형식으로 우수 유학생을 수혈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2000년대 확립한 인사제도인 우수 유학생 선발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공무원의 개방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고 제대로 일하는 경쟁력 있는 공직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채 축소와 해외 인재 채용 등 ‘삼성식’ 채용방식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5급 공채 준비생인 A(27)씨는 “수험생들 대부분은 일반 기업체에 취직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시험에 실패하면 고시 낭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면서 “공채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는 것은 가난한 수험생들의 목줄을 죄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공채 축소를 반대했다.

수험생 B(31)씨는 “공시생, 공시족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공채를 줄이고 경채를 확대하는 방향은 계층 이동의 통로를 막고 공정성이라는 직업공무원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B씨는 “민간경력자 채용 확대는 스펙 중심으로 채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자칫 석ㆍ박사 등 스펙 쌓기에 유리한 소수의 계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행정 불신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해외 공직 채용설명회 등 ‘삼성식’ 유학파 인재 정책에 대해선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수험생 C(29)씨는 “삼성의 인사 문화에는 장점도 많지만 무노조, 성과주의, 총수에 대한 맹목적 충성 등 공직에 어울리지 않는 부정적인 면도 많다”면서 “‘삼성의 인사 전문가’로 통하는 이근면호의 인사혁신에 대해 공시생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험생 D(25)씨는 “삼성의 인사를 벤치마킹해 유학생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방안은 가히 삼성공화국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유력한 자제들을 공직에 들여놓으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다”고 힐난했다.

수험생뿐만 아니라 홍준표 경남지사도 대열에 가세했다. 홍 시자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부의 대물림을 넘어 이젠 신분의 대물림 시대가 돼 가고 있다”며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부유층을 위한 로스쿨 시대를 열더니 삼성출신 인사혁신처장(이근면)이 들어와 이제 공무원도 해외 유학생 특별채용 시대를 열려고 한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이어 “해외 유학을 못 가는 서민 자제들은 이제 법조인의 길도 막히고 고위 공무원 길도 막히는 신분의 대물림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지사는 또 “현직 공무원에게 유학 기회를 많이 주면 국제화가 되는데 국제화 명분으로 부유층을 위한 음서제를 도입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사회 개혁이 아니라 특권층의 신분 대물림을 시도하는 어설픈 인사혁신처장을 보면서 이 나라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사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행정부노조는 “우수 유학생을 특별채용으로 수혈하겠다는 발상은 공무원채용시험의 가장 중요한 공평성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과연 ‘해외유학’이라는 조건이 공직자의 주요 채용기준이 돼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견고한 댐의 붕괴가 작은 구멍에서 시작되듯이, 공직시험의 공평성이 무너지면 직업공무원제의 근간,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헌법체계가 흔들리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해외유학이라는 보편타당하지 않는 조건이 공직자 채용에 도입된다는 것은 정부와 공직인사 그리고 국가전체를 보는 안목과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인사혁신처장을 바꾸는 것이 최선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