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1987년 체제와 한국의 민주주의 (1)

2014-08-28     신희섭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은 민주주의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는 국가이다. 1987년에 자생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해냈다. 1997년에는 민주주의로의 전환 10년 만에 첫 번째 정권교체를 이룩해냈다. 또한 10년 뒤인 2007년에는 두 번째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헌팅턴이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두 번의 정권교체라는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제도를 더 이상 후퇴시킬 가능성은 사라진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구축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전례가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국민소득이 80불이 안되던 국가에서 20,000불 이상의 국민소득을 올리면서도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구축한 특별한 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양극화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부족이나 국가보안법의 존속과 같은 권위주의시절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들을 이유로 하여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아직 민주주의가 멀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입장을 따르는 경우에는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갈리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를 제도적 관점에서 보고 제도적인 부분에서만 평가를 내리는 입장과 민주주의를 담아야 할 내용으로 보고 민주주의를 규범과 가치라는 이념으로 보는 입장에 따라 한국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출생과 성장과도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 편의 기준으로 수렴되어 한 가지 입장으로 통합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시대에 제도로 태어났고 이후 근대에 들어와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다른 이념과 결합되어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큰 골격 속에서 이란성 쌍생아로 자랐기 때문이다. 즉 자유주의와 만난 민주주의는 절차와 제도를 통해서 구성원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하는가에 초점을 두었고 사회주의와 만난 민주주의는 평등이라는 이념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발전하였다. 이러한 이종교배는 자기지배(self?rule)라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자기를 지배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 지배인지를 달리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입장을 정리하는 방식으로서 민주주의의 최소강령적 이해와 민주주의의 최대강령적 이해로 나뉘기도 한다.

이론적인 차이는 활자의 차이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론의 입장 차이는 현실에서 막대한 규정력을 가진다. 수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 차이에 근거하여 세력화를 꾀하고 이를 넘어서 상호간의 정치적 적대감을 드러낸다. 한국정치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같은 맥락에 있다.

민주주의 이해 차이는 민주주의가 구축된 시기인 1987년에 대한 평가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민주주의를 구축할 때 자유를 획득한 것에 의미를 두고 점진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했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민주화 과정에서 평등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입장도 있다.

2014년 8월 말 현재 한국정치는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다. 새로운 경제원동력을 만들어야 하며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안전대책을 수립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관료화된 부분에서 생긴 체제의 누수현상으로 보이는 각종 관피아들을 찾아서 개혁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여 현재의 고된 삶에 위로를 해주기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과도하게 큰 민주주의의 이해방식이라는 기준에 매여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정치체제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위한 이론적 정립과 판단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하지만 화합하기 어려운 기준을 들이대며 민주주의를 거대담론의 틀에서 끌어들이게 되는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입장 차이는 결국 원심력을 가지고 더 분기 될 것이고 이것은 논쟁을 위한 논쟁만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거대담론을 넘어서는 세밀한 현실방안에서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현실의 세부적인 주제에 대한 고민 속에서 ‘자유’라는 가치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적절하게 타협을 이룰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이번 시간에는 ‘1987년 체제’에 대해 다룰 것이다. ‘1987년 체제’ 역시 민주주의의 이해라는 기준을 벋어날 수 없는 주제이다. 어떤 체제를 규정한다는 것이 어떤 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어떤 이에 의한 평가라는 것은 다시 어떤 기준에 의한 평가인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이 선 이론적 기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현실의 문제이며 당시 정치적 세력에 대한 문제로서 정치적 타협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1987년 체제’를 다루어본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며 1987년을 이야기한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이런 이야기들은 1987년을 규정해야만 한다. 사회현상의 특정 부분을 규정하고 이것을 개념화하려는 노력은 1987년을 하나의 체제로 규정하게 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러한 이론적인 규정노력은 입장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1987년 체제’에 대해서 대체로 시기 구분은 이견이 적다. 하지만 과연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크다.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1987년 체제의 규정을 살펴보자. 먼저 가장 광범위한 틀로서 1987년 체제를 헌정주의, 헌법체제, 사회체제를 통칭하여 사용하는 견해1)가 있다. 이보다는 좁혀서 1987년 체제를 정당체계로 규정하는 입장2)도 있다. 이런 체제 정의와 달리 세력의 문제로 보는 입장도 있는 데 이 입장에서는 1987년 체제를 사회세력에서의 민주화연합세력으로 본다.3) 이런 시각과 달리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1987년 체제를 정당체계와 개별 정당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3김 정치’로 규정하는 시각4)도 있다. 이런 시각들은 관점과 눈높이의 차이가 있지만 1987년을 정치체제로 규정하고 이 정치체제가 어떤 특성을 지녔으며 어떤 관점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반면에 진보주의진영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1987년을 해석한다. 이념적 측면에서 1987년의 민주화를 ‘자유주의의 과잉체제’로 보고 당시 급진주의세력과 운동세력이 배제된 체제5)로 해석하는 것이다. 당시 민주화진영을 급진주의와 자유주의로 구분하고 급진주의가 배제되면서 자유주의의 두 중심인물인 김영삼, 김대중 총재가 민주주의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진보 진영의 도 다른 입장은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연관시켜 1987년이 민주화를 통해서 한국에서 운동의 두 중심노선인 NL과 PD를 수렴할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된다고 본다.6)

이런 입장과 달리 1987년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제시된 시각으로 1987년 체제를 ‘시대정신의 측면과 이념과 사회적 과제의 측면’에서 이해하면서 이 체제의 성격에서 ‘산업화이후’체제의 측면을 강조하자는 입장7)이다. 반대로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생산자 민주주의와 일상성의 민주주의로까지 민주주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1987년 체제를 전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로 축소한 민주주의체제로 규정해야 한다는 시각8)도 있다. 시대정신의 흐름으로 한국정치의 역사를 보면서 1987년은 산업화에서 선진화로 가는 길목에 있는 민주화의 의미를 규정하는 입장9)도 있다.

다음 시간에는 1987년 체제의 규정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각주)-----------------

1)박명림, ‘87년 헌정체제 개혁과 한국 민주주의: 무엇을, 왜, 어떻게 바꿀것인가’ 『창작과 비평』(파주: 창비, 2005) 130호.
2)박상훈, ‘한국의 ‘87년 체제’: 민주화 이후의 정당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어떤 민주주의인가 』(서울: 후마니타스, 2007)
3)윤상철, ‘87년체제의 정치지형과 과제’『창작과 비평』(파주: 창비, 2005) 130호.
4)김세걸, ‘포스트 3김 시대의 정치개혁: 쟁점, 전망, 방향’ 『동아연구』 2003년 제 44집
5)이광일,‘87년체제, 신자유주의 지구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진보평론 2007년 여름호 32호
6)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 체제’『창작과 비평』(파주: 창비, 2005) 130호.
7)유철규, ‘80년대 후반 이후 경제구조 변화의 의미’,『창작과 비평』(파주: 창비, 2005) 130호.
8)손호철, ‘한국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 『해방60년의 한국정치, 1945-2005』(서울: 이매진,2006), ‘한국 민주주의 20년: 성과와 한계, 그리고 위기’ 『한국민주주의의 현실과 도전』 (파주: 한울아카데미,2007)
9)김호기, 박형준, ‘87년 체제, 97년체제, 08년 체제’ 『시대정신 대논쟁 』(서울: 아르케,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