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수들 ‘사외 이사 겸직’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2014-06-27     법률저널

금융회사 사외이사를 대학교수와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 권력기관 출신들이 독식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주요 금융회사의 사외이사 가운데 교수가 40.3%로 가장 많고, 권력기관 출신이 33.1%를 차지했다. 이들을 합하면 73.4%로 사외이사 4명 중 3명이 교수나 권력기관 출신인 셈이다. 특히 국내 4대 금융지주 이사회는 교수와 관료 출신이 장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은 재선임·신규선임된 사외이사 8명 중 교수가 6명을 차지했다. 우리금융은 4명 중 3명이 교수였고, 신한금융은 9명 가운데 주주 쪽 인사 4명을 제외한 5명이 권력기관 출신(3명)과 교수(2명)로 이뤄져 있다. 또 하나금융은 5명 중 교수와 권력기관 출신이 각각 2명이다. 산업은행은 사외이사 전원이 교수들로 구성됐다. 특히 금융회사 사외이사들은 임기를 채우고 물러날 때 지인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 교수나 관료끼리 사외이사를 대물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뿐만 아니라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외이사에도 교수들이 상당수 꿰차고 있다. 보험업계 역시 많은 회사에 교수들이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통업계 사외이사마저 교수들이 독식하고 있다고 한다. 안행부 장관에 내정된 정종섭 후보자는 지난 2011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사외이사로 처음 선임됐고 2년 뒤 재선임됐다. 지난 13일 안행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사외이사직을 사임했다. 지난 3월에도 정 후보자는 삼성생명 사외이사로 임명됐으나 서울대 총장 후보로 나서면서 3주만에 사외이사직을 사임한 바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된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후보자도 2006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포스코ICT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자신이 사외이사로 있는 기업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발주 받는 ‘셀프 수주’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는 교수들이 경영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외이사가 100%에 가까운 찬성표를 던지면서 대주주 전횡 및 견제·감시를 위한 사외이사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을 하는 대가로 고액 연봉을 챙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종섭 안행부 장관 후보자는 이사회에 참석한 모든 안건에 대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경영진의 감시자 기능을 하지 못하고 ‘거수기’ 역할에 그친 게 아니냐는 논란도 나온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2006년 3월 포스코 아이시티 사외이사로 선임된 뒤 회사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 2008년 4월까지 총 21회 열린 이사회에서 올라온 총 50건의 의안 중 한 건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아 프로젝트 기간 중 회사의 편을 들어준 것 아니었느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교수들이 기업의 사외이사나 임원 등 영리기관의 직책을 겸하면서 학문연구 및 수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수의 사외이사 활동이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 교육 활동에 지장이 생긴다면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대외활동이 많다 보면 간신히 수업은 하더라도 연구 활동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 교수의 ‘직무유기’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교수들의 사외이사 활동이 사회와 대학의 발전에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교수의 영리기관 겸직은 제한적으로만 허용되어야 한다. 교수가 꼭 현실 참여를 통해서만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며 학문 연구에 전념하면서도 공익에 얼마든지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방만 경영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만큼 외부 전문가를 이사진에 포함시켜 대주주가 전횡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지 16년이 됐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데는 사외이사들의 용돈벌이 직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특정 직업군의 사외이사 독식으론 경제체질을 바꿀 수 없다. 관련 분야 전문성이 없는 교수들이 ‘거수기 사외이사’로 들어가는 관행을 이제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