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 꼼수 드러낸 대법원

2013-08-23     법률저널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21일 개최하려던 국내 10대 로펌 대상 ‘재판연구원 취업 관련 간담회’를 16일 전격 취소했다. 법원행정처 주관으로 김앤장·태평양·광장·세종·율촌 등 국내 10대 로펌 인사담당자와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초청해 취업 간담회를 열 계획이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4월 계약직 공무원으로 임용한 로스쿨 1기 출신 재판연구원 99명의 내년 취업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간담회를 계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통보받은 변협에서 “부적절한 취업 알선 행위”라며 반발하자 지난 16일 설명회를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변협은 21일 논평을 통해 “법원이 재판연구원을 판사 임용 전 단계로 여기고 있다”며 “임기를 마친 재판연구원을 대형 로펌에 취업시켜 ‘경력 관리’를 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실제 법원이 지난 9일 변협과 10대 로펌에 보낸 ‘재판연구원 취업 관련 간담회 안내’란 제목의 공문엔 ‘재판연구원의 변호사 채용에 관해 포괄적인 정보를 교환하고, 향후 채용 절차·규모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려 한다. 더불어 재판연구원의 변호사 직역 진출을 도와 새로운 법조인 양성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도모하기 위함’이란 문구가 들어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대법원은 적극 해명에 나섰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대한변호사협회를 포함한 재야 법조계 전체에 첫 재판연구원들의 업무 및 역할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재판연구원들의 향후 진로와 관련한 재야법조계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자리였을 뿐, 재판연구원의 향후 판사 임용을 위한 ‘경력 관리’ 등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변협이 제기한 법원의 ‘순혈주의’ 강화 우려에 대해서도 “향후 재판연구원의 진로는 본인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법원은 이에 관여할 의사와 권한도 없고 현실적으로 관리가 가능하지도 않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라는 말이 있듯이 대법원이 로펌과의 간담회 계획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우선 유수 로펌만을 ‘초청’하려 한 것부터 논란 소지를 자초했다. 법원의 해명대로 재판연구원의 역할과 자질을 설명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이었다면 주요 10대 로펌만을 초청할 것이 아니라 ‘재판연구원 취업설명회’ 같은 공개적인 행사가 더 적합하다. 더욱이 제3자의 입장에선 로클럭→대형 로펌→판사 임용으로 이어지는 폐쇄적 선발 과정을 구축해 ‘법·펌’ 커넥션을 공고히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나아가 법원이 로펌에 재판연구원을 소개하고, 이들 중에서 다시 판사를 임용할 경우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법원이 퇴직하는 법원공무원들을 소개하기 위해 로펌과 간담회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는 터에 재판연구원들을 로펌에 소개할 계획을 세운 것은 3년의 경력을 채우게 하고 이들의 대부분을 다시 판사로 임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사법개혁의 핵심인 법조일원화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처사다. 법조일원화의 취지는 법률가로서 오랫동안 다양한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 중에서 판사를 임용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이 재판연구원으로 하여금 1년만 변호사 경력을 쌓게 하고 이들을 다시 판사로 임용하겠다는 것은 ‘회전문 인사’를 통해 순혈주의를 유지하려는 편법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법원이 로펌과 검찰에 우수한 인력을 뺏길 수 있다는 조바심에 무리수를 둔 셈이다. 과거에는 사법연수원 졸업 뒤 우수한 인력이 바로 법관으로 임용됐지만, 법조일원화 제도 시행 뒤 법관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임명된 2기 로스쿨 출신 재판연구원 55명 중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명문로스쿨은 고작 6명(10.9%)에 불과했으며 지난해보다 비중이 더욱 낮아졌다. 특히 서울대 로스쿨의 경우 지난해는 4명이었지만 올해는 1명에 그쳤고 고려대도 4명에서 2명, 연세대 역시 7명에서 3명으로 ‘뚝’ 떨어졌다. 이에 따라 1기 재판연구원들의 취직을 알선해 ‘재판연구원이 되면 10대 로펌에 취직할 수도 있고 경력관리 뒤 다시 법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신호를 줌으로써, 우수 인력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대법원의 꼼수를 드러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