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의 명의신탁관계에서의 처분행위, 횡령죄 불성립”
대법원, 형사적 처분성 불인정
매수인 측의 명의신탁 약정 사실을 매도인이 알고 있는 경우, 명의수탁자가 그 부동산을 제3자와 거래한 경우에는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주심 이인복 대법관)은 11월 29일, 악의의 명의신탁관계 하에서 명의신탁자가 매도인으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한 후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후 타인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한 행위는 횡령 또는 배임죄에 해당한다며 기소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상고심(2011도7361)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가 이른바 계약명의신탁 약정을 맺고 명의수탁자가 당사자가 되어 명의신탁 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소유자와 부동산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그 매매계약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명의수탁자 명의로 마친 경우에는 부동산실명법 제4조제2항에 의해 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고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며 “이 때 명의수탁자는 부동산 취득을 위한 계약의 당사자도 아닌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에서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 또는 배임죄에서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원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존판례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명의수탁자는 매도인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말소의무를 부담하게 되나 이 경우, 소유권이전등기는 처음부터 원인무효여서 명의수탁자는 매도인이 소유권에 기해 방해배제청구로 그 말소를 구하는 것에 대해 상대방으로서 응할 처지에 있음에 불과하다”며 “그가 제3자와 사이에 한 처분행위가 부동산실명법 제4조제3항에 따라 유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거래의 상대방인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명의신탁약정의 무효에 대한 예외를 설정한 취지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매도인과 명의수탁자 사이에 위 처분행위를 유효하게 만드는 어떠한 신임관계가 존재함을 전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그 말소등기의무의 존재나 명의수탁자에 의한 유효한 처분가능성을 들어 명의수탁자가 매도인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에서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 또는 배임죄에서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본 사건 명의신탁 약정은 매수인 측의 명의신탁 약정 사실을 매도인이 알면서 명의수탁자와 계약을 체결한 이른바 ‘악의의 계약명의신탁’에 해당하여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인 명의로 마친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고 매도인이 그 소유권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며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 명의신탁자인 피해자에게 있음을 전제로 피고인이 그와의 관계에서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인이 명의신탁자인 피해자에 대해 사건 부동산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아 이를 전제로 횡령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즉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 부동산의 처분에 의하여 형사상 책임은 부담하지 않고 민사책임만 부담할 뿐이라는 판단이다.
본 판례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부동산실명법이 금지하고 있는 명의신탁을 일반 형법에 의하여 보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하다는 법원의 판단”이라며 “부동산실명법 자체에 명의신탁 행위를 처벌하는 법규정을 두고 있고 특히 명의신탁자를 명의수탁자보다 더 처벌하고 있으므로 불법성이 더 높은 명의신탁자를 형법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없고 다만 원칙적으로 민사적인 구제절차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동산실명법상 불허되는 계약명의신탁 관계를 형사처벌의 영역에 끌어들이지 않도록 하였다는 데 이 판결의 의의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성진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