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중지미수가 성립하기 위한 자의성 판단

2012-06-08     법률저널

 

- 대법원 1999.4.13.선고 99도640 판결 등

이창현 한국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공소사실 요지


  피고인은 피해자(여) 운영의 주점을 출입하다가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지게 되고 점차 친해지자 수차례에 걸쳐 폭력을 행사하여 오던 중, 1998.5.25. 오후에 위 주점에 찾아갔으나 피해자가 피고인의 폭력에 지쳐서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서 주점의 출입문을 열어주지 않자 이에 앙심을 품고 칼날길이 약 5cm인 칼을 등산복에 숨긴 채 같은 날 19:30경 주점 여종업원이 주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위 종업원을 따라 주점에 들어간 다음, 그 안에 있던 피해자에게 용서해 달라고 하였으나 말로만 잘못했다고 하지 말라는 취지로 대답하자 이에 격분하여 주점의 간판 불을 끄고 전화선 코드를 뽑아버린 후 소지하고 있던 칼로 피해자의 목 부위와 가슴 부위를 수회 찌르고 종업원이 피고인을 만류하자 “너도 칼로 찔러버리기 전에 저 구석에 가있어. 너도 죽고 싶으냐. 나오면 죽여버리겠다”라고 말하여 종업원으로 하여금 피고인을 만류하지 못하게 한 다음, 계속하여 위 칼로 피해자의 머리 부위를 향하여 내리 찍었으나 피해자가 이를 피하는 바람에 맞지 아니하자 피해자에게 “밤새도록 너를 죽이려고 칼을 갈았다. 오늘은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종업원도 죽고 3명이 다 죽는다”라고 말하면서 등산화를 신은 발로 피해자의 허벅지와 발을 걷어차다가 피해자의 가슴 부위에서 많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겁을 먹고 그만 두는 바람에 피해자에게 약 3주일간의 치료를 요하는 다발성 경부 및 흉부자상을 입히고 살인미수에 그친 것이다.

 

2. 쟁 점


피고인이 범죄의 실행행위에 착수하였다가 중지한 경우에 자의성이 인정되어 중지미수에 해당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3. 대법원 판결 내용


가. 범죄의 실행행위에 착수하고 그 범죄가 완수되기 전에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범죄의 실행행위를 중지한 경우에 그 중지가 일반 사회통념상 범죄를 완수함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중지미수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나. 원심이 유지한 제1심 판결이 적법하게 확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그의 목 부위와 왼쪽 가슴 부위를 칼로 수회 찔렀으나 피해자의 가슴 부위에서 많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겁을 먹고 그만 두는 바람에 미수에 그친 것이라면, 위와 같은 경우 많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에 놀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일반 사회통념상 범죄를 완수함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대법원 1997.6.13.선고 97도957 판결 참조), 이를 자의에 의한 중지미수라고 볼 수 없다.

 

4. 윤리적 동기에 따라 중지한 경우
   : 대법원 1993.10.12.선고 93도1851 판결  [강간미수]
 

가. 사 안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간할 마음을 먹고 폭행한 다음 강간하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다음번에 만나 친해지면 응해 주겠다는 취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그 이상 강간의 실행행위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그 후 피고인은 피해자를 자신의 차에 태워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강간미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제1심과 항소심(원심) 법원에서는 중지미수가 아닌 장애미수를 인정하였다.

 

나. 대법원의 판단 
 

범죄의 실행행위에 착수하고 그 범죄가 완수되기 전에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범죄의 실행행위를 중지한 경우에 그 자의에 의한 중지가 일반 사회통념상 장애에 의한 미수라고 보여지는 경우가 아니면 이는 중지미수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85.11.12.선고 85도2002 판결 참조).
   

피고인은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하다가 피해자가 다음번에 만나 친해지면 응해 주겠다는 취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하여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며, 위 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은 자의로 피해자에 대한 강간행위를 중지한 것이고 피해자가 다음에 만나 친해지면 응해 주겠다는 취지의 간곡한 부탁은 사회통념상 범죄실행에 대한 장애라고 여겨지지는 아니하므로 이 사건 피고인의 행위는 중지미수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5. 놀라거나 두려움에 따라 중지한 경우
  : 대법원 1997.6.13.선고 97도957 판결  [현주건조물방화미수]
 

가. 사 안  
  피고인은 피고인의 아버지가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주거로 사용하는 건물내 아버지의 방에서 라이터로 휴지에 불을 붙여 장롱 안에 있는 옷가지에 불을 놓아 위 건물을 소훼하려 하였으나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물을 부어 불을 끄는 바람에 미수에 그친 것이다. 

 

 나. 대법원의 판단 


(1) 피고인이 이 사건 현주건조물방화미수 범행 당시 라이터로 휴지에 불을 붙여 장롱 안에 있는 옷가지에 놓긴 하였으나 이를 후회하고 스스로 곧 진화하였으므로 형의 필요적 감면사유인 중지미수에 해당한다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원심에서 제기하지 아니한 새로운 주장으로서 원심판결에 대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

(2) 뿐만 아니라 직권으로 살펴보아도 상고이유로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인이 스스로 범행을 후회하여 진화한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그리고 범죄의 실행행위에 착수하고 그 범죄가 완수되기 전에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범죄의 실행행위를 중지한 경우에 그 중지가 일반 사회통념상 범죄를 완수함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이를 중지미수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만(대법원 1985.11.12.선고 85도2002 판결, 대법원 1993.10.12.선고 93도1851 판결 등 참조), 원심이 유지한 제1심 판결이 적법하게 확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이 장롱 안에 있는 옷가지에 불을 놓아 건물을 소훼하려 하였으나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물을 부어 불을 끈 것이라면, 위와 같은 경우 ① 치솟는 불길에 놀라거나 ② 자신의 신체안전에 대한 위해 또는 ③ 범행 발각시의 처벌 등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일반 사회통념상 범죄를 완수함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이를 자의에 의한 중지미수라고는 볼 수 없다.

 

6. 범죄실행의 어려움에 따라 중지한 경우
 

가. 대법원 1993.4.13.선고 93도347 판결  [강도강간미수]

(1) 사 안   
피고인은 2회에 걸쳐 흉기를 휴대하고 강도죄를 범한 후 두려움으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피해자 A의 양 손을 뒤로 하여 기저귀로 묶고 눈을 가린 후 하의를 벗기고 강간하려고 하였으나 잠자던 피해자 A의 어린 딸이 깨어 우는 바람에 도주하였고, 또 다른 피해자 B를 강간할 마음을 먹고 두려움으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피해자에게 옷을 벗으라고 협박하여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시장에 간 남편이 곧 돌아온다고 하면서 임신 중이라고 말하자 도주하는 바람에 각 미수에 그친 것이다. 

 

(2) 대법원의 판단  
원심이 사실을 확정한 바에 의하면, 피고인이 강간하려고 하였으나 잠자던 피해자의 어린 딸이 깨어 우는 바람에 도주하였고, 또 다른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시장에 간 남편이 곧 돌아온다고 하면서 임신 중이라고 말하자 도주하였다는 것인바, 그렇다면 피고인이 자의로 강간행위를 중지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므로, 원심판결에 형법 제25조 및 제26조의 미수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는 논지도 받아들일 것이 못된다.
 
 나. 대법원 1992.7.28.선고 92도917 판결  [특수강도강간미수]

(1) 사 안   
 피고인들이 강도행위를 하던 중 피고인 갑과 을은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작은방으로 끌고 가서 팬티를 강제로 벗기고 음부를 만지던 중 피해자가 수술한지 얼마 되어 않아 배가 아프다면서 애원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친 것이다.
 
(2) 대법원의 판단  
강도행위의 계속 중 이미 공포상태에 빠진 피해자를 위와 같이 강간하려고 한 이상 강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피해자의 진술을 비롯한 관계 증거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이 간음행위를 중단한 것은 피해자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신체조건상 강간을 하기에 지장이 있다고 본데에 기인한 것이므로, 이는 일반의 경험상 강간행위를 수행함에 장애가 되는 외부적 사정에 의하여 범행을 중지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중지범의 요건인 자의성을 결여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7. 범죄발각의 우려에 따라 중지한 경우
  : 대법원 1986.1.21.선고 85도2339 판결  [관세포탈미수]
 

가. 사 안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당일 미리 범행의 제보를 받은 세관직원들이 범행장소 주변에 잠복근무를 하고 있어 그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본 피고인은 범행의 발각을 두려워 한 나머지 자신이 분담하기로 한 실행행위를 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그 정을 모르는 사람이 밀수품을 다른 곳으로 운반함으로써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에 대해 피고인 및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이 공소외 1, 2 등과 이 사건 밀수입범죄를 공모한 다음 다른 공범이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였으나 피고인은 그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후 이를 공소외 2에게 통지하고 아무런 실행행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피고인의 소위는 중지범에 해당한다는 상고이유로 상고하였다.

 

나. 대법원의 판단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이 범행을 중지한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할 것이어서 그 소위를 형법 제26조 소정의 중지범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니 원심이 피고인의 그 판시 소위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의 관세포탈미수죄에 의율한 조처는 정당하다 할 것이고 거기에 채증법칙위배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할 수 없으므로 논지는 이유 없다.

 

8. 검 토
 

중지미수의 성립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자의성의 판단과 관련하여 학계의 학설은 객관설(외부적 사정과 내부적 동기의 구별), 주관설(심리설), 절충설(자율적 동기 여부), 규범설 등으로 나뉘어 있으나 다수 학설(배종대, 형법총론, 홍문사, 2011, 514면; 신동운, 형법총론, 법문사, 2011, 493면; 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 2011, 381면. 한편, 신동운, 앞의 책, 492-493면에 의하면 절충설을 심리적 절충설과 규범적 절충설로 나누면서 심리적 절충설을 지지하고 있다)과 판례는 절충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박상기, 형법총론, 박영사, 2012, 346면에 의하면 위 대법원 1992.7.28.선고 92도917 판결을 예로 들면서 범인이 강요된 장애사유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의 애원을 듣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범행중지를 결정하였으므로 절충설에 의할 경우 자의성이 인정된다는 논거 등으로 대법원의 태도는 절충설이 아니라 오히려 객관설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견해이다).
  

판례는 동정이나 후회와 같은 윤리적 동기에 의하여 중지한 경우에는 자의성을 인정하지만 범행 실행 중에 놀라거나 겁을 먹은 나머지 중지한 경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범행중지를 결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범죄를 실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중지한 경우, 막연한 범죄발각의 우려를 넘어서서 현실적으로 범죄가 발각될 우려가 중요한 이유가 되어 중지한 경우 등은 일반 사회통념상 범죄를 완수함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해당하여 자율적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봄에 따라 비록 범행을 중지하였다고 하여도 자의성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이재상, 앞의 책, 383면에 의하면 대법원 1999.4.13.선고 99도640 판결에 대하여는 장애미수이지만 대법원 1997.6.13.선고 97도957 판결에 대하여는 자의에 의한 중지라고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위 판례는 모두 놀라고 겁을 먹은 나머지 중지에 이른 경우에 해당하여 자의성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 구분할만한 명확한 기준도 보이지 않는다). 
 
* 핵심사항 : 중지미수에서의 자의성, 살인미수, 강간미수, 현주건조물방화미수, 강도강간미수, 특수강도강간미수, 관세포탈미수      

 

이창현 교수는...
연세대 법대 졸업, 서울북부·제천·부산·수원지검 검사
법무법인 세인 대표변호사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 아주대 법대 교수, 사법연수원 외래교수(형사변호사실무),
사법시험 3차 시험위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