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기의 LEET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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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기의 LEET논술
  • 법률저널
  • 승인 2007.10.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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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A], [B] 두 논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게이오대학 로스쿨 2005 기출문제)

[A] 1997년 2월, 과학 잡지 Nature지에 체세포복제 양, ‘돌리’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돌리탄생에 관련한 뉴스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때, 사람들의 머리를 스쳐간 것은 아마 인간복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즉시 인간복제 금지성명을 발표하고 복제인간 탄생을 향한 연구에 윤리적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8년 한국에서 복제인간 탄생의 일보 직전까지 연구되었다. 30대 여성의 미수정란의 핵을 제거하고 같은 여성의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여 4단계까지 세포 분열된 초기배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배아를 자궁에 이식시키면 복제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즉, 기본적으로는 돌리와 같은 방법으로 복제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진 것이다. 복제인간 탄생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2000년 6월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제1단계가 거의 완료되어 DNA 30억 문자를 전부 읽어냈다. 한편, 각각의 병과 체질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확정하는 일도 계속해서 진전되고 있다. 앞으로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의해 밝혀낸 정보에 입각하여 각각의 유전자의 기능을 해명하고, 병과 체질의 유전자를 상세하게 특정해 나갈 것이다. 누군가의 DNA를 얻으면 그 사람이 장래에 걸릴 수 있는 병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들은 이미 ‘유전자 개조사회’라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 돌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거의 서기 2000년경에 생명을 둘러싼 기술은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그에 대하여 생명윤리학은 과연 유효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최근의 생명윤리학의 경향을 살펴보면 기술의 비약적인 진전에 대하여 능숙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생명윤리학자들은 ‘인간복제 반대’를 소리 높여 외치며 유전자개량에 부정적 태도를 표명하고 있다. 누군가가 인간복제와 유전자개량의 자기결정을 하려고 한다면 생명윤리학은 자기결정의 제한을 표명할 것이다. 생명윤리학은 보수주의로 전락해 버리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여기서 복제인간과 유전자 개량문제를 검토함으로써 유전자개조사회의 생명윤리학적 가능성을 탐구해 보도록 하자.

  복제인간에 대해서 논의하는 경우, 기본적으로는 두 개의 장면을 나누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장기(臟器)은행’으로서의 복제이며, 또 하나는 ‘인간복제’로서의 복제이다.

  장기은행으로서의 복제에는 반드시 ‘살아있는 인간’을 탄생시킬 필요가 없다. 일정한 장기를 제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환자와 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장기가 제조되면 신체에 거부반응 없는 장기를 입수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장기와 조직의 복제는 앞으로도 계속 증대할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나쁜 면은 없는 것일까?

  장기은행으로서의 복제를 고려할 경우, 아마 문제가 되는 것은 복제인간을 장기은행의 목적으로 탄생시키는 점일 것이다. 장기와 조직의 복제가 아닌 복제인간 그 자체를 탄생시키는 경우에는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장기은행과는 독립적으로 인간복제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하의 논의에서는 인간복제 그 자체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자.

  복제인간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먼저 불식해 놓고 싶은 것은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간복제상이다. 예를 들면 독재자나 천재의 복제나, 인간복제에 의한 노예나 군대와 같은 이미지가 선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복제는 현실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효율성 면에서도 별로 의미가 없다. 애초에 독재자가 복제인간을 만들려고 한다면 어떠한 윤리적 규제를 가하더라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인들이 인간복제를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이다. 예를 들면 결혼해서 10년 정도 경과한 부부(켄과 메리)가 있다고 하자. 두 사람 모두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두 사람이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아 보고, 정자와 난자에 의한 인공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적어도 둘 중 한 사람의 유전자를 계승한 아이라도 갖고 싶은 것이다. 그 때, 켄이 메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당신을 꼭 닮은 여자아이가 갖고 싶어. 당신의 복제인간을 만든다면 어떨까? 누군가 난자를 제공해 줄 사람이 없을까? 의사에게 상담해 보자."

  또는 결혼해서 10년이 지나서 겨우 아이(리카)를 얻은 부부(타쿠야와 레이코)가 있다. 그런데 리카가 3살이 되었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 사람의 슬픔은 너무도 커서 정신병자가 될 정도였다. 타쿠야가 레이코에게 말했다. "리카의 복제인간을 만들자. 우리들에게는 리카밖에 없잖아." 리카를 낳은 후 레이코가 불임증이 되어 버려서 이제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타쿠야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희망이 이루어 보려고 의사에게 상담하게 된다.

  또한, 나오미와 요코라는 레즈비언 커플의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두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남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아기’를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오미는 제안한다. "내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거기에 요코의 체세포의 핵을 집어넣어서 우리 두 사람의 아기를 만들자. 나는 요코를 꼭 닮은 여자아이를 반드시 키우고 싶어. 현재의 기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잖아."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의사에게 상담을 하러 간다.

  마지막으로, 독신주의자인 히토미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녀는 40세가 되었을 때 문득 자신의 노후가 걱정되었다. "나도 나이가 들면 때로는 말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나중에 나를 부양해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 죽을 때도 내 임종을 지켜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덕에 모아놓은 돈도 있으니까 이 돈으로 내 복제인간을 만들면 어떨까? 나 자신을 복제해서 만든 아이니까 아이의 마음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히토미는 이런 생각으로 의사에게 상담하게 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경우를 상상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을 것이다. 네 개의 사례에서 그들이 복제인간을 원하는 경우, 생명윤리학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인간복제에 대한 반대의견으로서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를 이유로 들고 있다. 예를 들면 ‘복제인간은 보통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든가, ‘여러 가지 질병이나 장해를 가진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윌머트 박사조차 이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즉, ‘기술적인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는 복제를 인간에게 행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 복제 실험은 인체실험이라고도 말한다. 이 반론은 과연 어디까지 유효할까?

  이 반론의 최대 약점은 ‘만약 복제기술이 완전해진다면 인간복제를 용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전혀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복제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기술적인 난점만 해결된다면 인간복제는 전혀 나쁠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문제는 현재의 기술적인 수준인가, 아니면 인간복제 그 자체인가가 명확하지 않다. 기술적 난점을 이유로 한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것은 논점을 호도하는 것이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불완전한 것은 인간복제뿐만이 아니다. 장기이식도 결코 완전한 기술이 아니다. 애초에 의료, 그 자체가 확률로 보면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 수술을 할 때는 항상 사전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인간복제만이 기술적인 이유로 반대되어야 하는 것일까? 예를 들면 수년 전 미국에서 비비1)의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행하여진 적이 있었다. 인간복제가 이 수술보다 더 위험한 것일까?

  인간복제는 현재의 시점에서 아직은 시기상조인가,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확실히, 인간복제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 가지 위험성이 있다. 아직 잘 모르는 부분도 많다. 인간복제를 실험하여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인간복제는 절대로 금지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외과 수술을 생각해 보자. 성공 가능성이 지극히 낮고 게다가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는 그 수술 외에는 아무런 방법도 없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성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으므로 수술은 앞으로 절대로 금지한다고 말할 것인가? 만약 누군가가 ‘그래도 좋으니 반드시 수술하고 싶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거부해야 하는 것인가? 또 앞으로도 절대로 금지해야 하는 것일까? 

  기술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경우,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금지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적인 보험제도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돈으로 복제인간을 만드는 경우, 타인이 이것을 금지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도 단지 기술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약 장애아를 낳을 가능성이 있는 여성을 생각해 보자. 예를 들면 타인이 "당신의 아이는 심한 장애를 갖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이를 낳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출산을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여성 자신이다. 이 여성이 장애 가능성을 알고 나서도 출산을 선택한 경우, 그 선택에 대하여 금지할 수 있는 이유는 전혀 없다. 사산일지도 모르고, 장애도가 심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출산할지, 하지 않을지는 여성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이 여성이 "어떤 상태에 처하더라도 출산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면 누구도 그것을 금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여성의 선택에 반대하는 사람은 장애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므로 노골적인 차별주의자인 것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는 여성 본인의 문제로 타인이 이 결정에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인간복제를 기술적인 이유로 금지하는 경우도 이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복제기술로 인간을 낳는 것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금지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표현이 얼마나 차별적인지는 누구나 명백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복제기술에 의해 아이를 낳으려는 선택을 한 경우, 이 선택에 대하여 외부에서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기술적인 이유로 금지하는 경우에는 매우 차별주의적인 태도가 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어떤 아이를 낳을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이다. 어떤 기술을 사용하여 아이를 낳을지도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낳을지 말 것인지에 관하여 타인에게 이것저것 간섭받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정상이 아닌 아이가 태어날 지도 모르니까 낳아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왜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이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것일까? 이렇게 보면 기술적인 이유로 제3자가 인간복제에 반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기술적인 이유가 아닌 인간복제 그 자체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인간복제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는 이유가 자주 제시된다. 즉 출생에는 남성과 여성이 관여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단어는 정체가 매우 불명확한 단어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좋다’는 말과 똑같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것은 통상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불리는 것으로 ‘사실(무엇 무엇이다)에서 가치(무엇 무엇이 좋다)’를 끌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난해한 강의를 듣고 있으면 졸리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해서 자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여러 가지 예시를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기 때문에 좋다고 할 수 없고 자연이 아니라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자연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애매해서 무엇을 자연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단정할 수 없다. 체외수정은 어떠한가? 양성의 관여가 있다는 점에서는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지만 체외에서 인공 수정한다는 점에서는 부자연스러울 지도 모른다. 또한 남편 이외의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서 여성이 체외에서 인공 수정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경우를 구분할 수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자연스러운지는 아마 명확하게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자연스러운지 그렇지 않은지는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의존하고 있다. 시험관 아기 제1호에 관한 뉴스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시대에는 이것이 자연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 계속해서 시험관 아기가 탄생하고, 인공수정의 기술이 어디서나 사용되게 된다면 시험관 아기에 대한 위화감은 사라져 버린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출산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어떤 기술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어디서나 사용되게 되면, 그것을 자연이라고 간주하게 된다. 자연이라고 느껴지는지 아닌지는 그것이 다수파인지 아닌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인간복제가 자연에 반한다는 것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인간복제는 금지되고 있고 완전히 소수파(또는 제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복제기술이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다수의 국가와 지역에서 복제인간이 탄생하게 되면 인간복제는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느낄 것이 분명하다. 여기저기서 복제인간이 생활하게 되었을 때 “인간복제는 부자연스럽다”라고 말하면 단순한 시대착오적 발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자연이라는 것에 고집한다면 도킨스의 다음의 주장을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통의 생식보다 복제가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충분히 가능하다."

  인간복제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아이를 원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인간복제는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인의 생활을 생각해 보면 인간복제에 대한 수요는 매우 높을 것이다.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결혼에 의해 소위 반영구적으로(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같이 생활하고, 그 속에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근대적인 가족제도가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커플이라도 반드시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거나, 영속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동성애 커플도 있고 독신주의자도 있다. 이성과 즐기고 싶기는 하지만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종래와 같은 형태로 아이를 낳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사귀고 있는 남성(톰)이 있지만 톰과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 여성(제니스)를 생각해 보자. 앞으로 제니스는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될 지도 모르고, 톰과는 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니스는 지금 자신의 아기를 갖고 싶어졌다. 그 때 제니스는 톰과 아기를 만들려고 할까? 반드시 NO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제니스의 이 희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자은행일까? 그러나 제니스는 누군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정자는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인간복제기술은 제니스의 희망을 그대로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제니스는 자신의 몸에서 난자를 추출하여 자신의 체세포를 복제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제니스가 하고 있는 일이 도덕적으로 나쁜 짓인가?

  이러한 것은 레즈비언 커플인 나오미와 요코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사랑의 형태는 결코 하나가 아니므로 레즈비언이나 게이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사랑의 형태를 선택할 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이다. 아무 관계도 없는 제3자가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전혀 없다.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아이를 원한다고 해도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간복제기술은 그녀들의 희망을 이루어 줄 것이다. 그녀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복제인간 만들기를 선택했을 때 이에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이러한 경우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자식을 원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통상의 출산의 경우에도 각인각색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집안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자식을 낳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피임을 실패해서 자식을 낳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원해서 낳는 아이도 있고, 저주 받고 태어나는 아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랑의 결정도 있고 우연의 산물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선택하는 것은 아이를 낳는 부모이지 아무 관계없는 제3자가 아니다. 

  통상의 임신에 관해서 paternalism을 인정할 수 없다면 복제인간에 대해서도 paternalism은 거부하여야 한다. 어떤 출산은 바람직하고, 어떤 출산은 바람직하지 않은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현대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인정한다면 인간복제도 금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복제에 대한 다수의 논자들의 의견은 안전성이라는 이유를 빼면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의 정치가들과 언론, 생명윤리학자들 간에는 ‘인간복제 금지’라는 대합창을 전 세계에 퍼뜨리고 있다. 매우 이상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이것은 분명한 음모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특별히 금지할 이유가 없는데도 대대적으로 인간복제 금지 캠페인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복제 금지의 뒷면에는 표면상으로는 논의되지 않는 이유가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 음모인지 아닌지는 별론으로 하고,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까? 세계적으로 대 캠페인을 벌여가면서까지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복제가 남성중심주의의 근간을 해체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복제인간이 태어나게 된다면 남성이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여성의 난자와 체세포뿐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자신의 난자와 체세포를 사용하여 혼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앞의 예에서는 히토미와 제니스의 경우가 그렇다. 또한 레즈비언 커플을 보아도 남성은 필요 없다. 그녀들의 난자와 체세포에서 아이를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남성이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여성의 난자가 필요하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아이를 낳든, 체세포 복제로 아이를 낳든 간에 여성의 난자는 불가결한 것이다.

  종래의 기술로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난자뿐만 아니라 정자도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체세포 복제가 가능하게 되자 상황은 일변했다. 체세포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여성은 난자 제공자와 자궁 보유자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지만 남성은 존재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 아이를 낳는 데 이미 정자는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여성은 필연(필요)적 존재이지만, 남성은 우연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남성중심주의의 역사적 종언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성중심주의의 정치가나 언론이 함께 인간복제 금지 운동을 퍼뜨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복제와 함께 남성중심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복제 금지는 남성중심주의의 음모로 간주할 수도 있으나, 음모인지 아닌지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명백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복제에 의해 남성중심주의의 근간이 무너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페미니스트들이 인간복제 옹호론을 활발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시점에서 그러한 논의가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앞으로 페미니스트와 복제인간의 공동 투쟁이 완성될 것이다. 그에 대하여 인간복제 금지를 표명하는 사람은 남성중심주의를 고집하는 보수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 때 생명윤리학이 어떤 입장에 설 것인가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B] 1990년에 시작된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당초 목표했던 해를 2년 앞당겨 2003년 4월에 해독 종료를 선언했다. 교배실험을 할 수 없었던 인간의 전체 DNA 배열이 이 프로젝트에 의해 다른 생물보다 먼저 밝혀진 것이다. 의학과 의료 분야가 전면적으로 유전학에서 게놈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또한 1997년에는 복제양 작성의 논문이 공표되었고 이듬해인 1998년에는 인간 ES세포(배아성 간세포: 초기 배아를 분해하여 얻을 수 있는 세포이며 모든 조직으로 분화하여 증식할 수 있는 세포)의 수립에 성공하여 포유류 발생공학에서 엄청난 기술 혁신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태는 인체라는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가치를 매기며 관리해 나갈까, 바꾸어 말하면 내부의 자연의 Politics가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제의 전환을 ‘20세기 생명윤리학에서 21세기 생명윤리학으로’라고 표현해 두자.

  지금까지는 내부의 자연의 평가문제를 취급하는 학문은 생명윤리학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30년 전 미국에서 태어난 이 학문은 사상적으로는 자기결정이라는 단순한 개념에 입각하는 것이었다. 이 단순함이야 말로 생명윤리적 과제를 취급하는 원리로서의 유용성의 근원이며, 고지된 동의(inforned consent)의 확인이라는 규제양식은 전 세계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그러나 자기결정원리는 두 개의 주장과 연동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육체는 통합된 개별적 존재이며 처분권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제3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개인의 행동은 제한되지 않는다는 자유주의적 주장이다. 이 점에서 미국적 색채가 강한 개념이었다.


[문1] 논문 [A]의 필자는 복제인간 금지론의 논거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고 있으며, 각각의 논거에 대하여 어떻게 논하고 있는가? 800자 이상 1000자 이내로 요약하라.



[문2] 논문 [B]를 참고하면서, 논문[A]의 필자의 견해에 대하여 600자 이상 800자 이내로 반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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