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기의 LEET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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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기의 LEET논술
  • 법률저널
  • 승인 2007.09.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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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술문 작성연습의 중요성

  실제 논술문을 작성해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수험생에게는 단순히 글을 많이 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수험에서는 한정된 공부시간 내에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한다. 그 방법으로서 ①전문가에 의한 평가∙첨삭과 ②다른 사람의 글과 자신이 쓴 글을 비교하는 것을 제시한다.



2. 예제


다음 제시문은 [디지로그]의 일부분이다. 이를 읽고, 6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에디슨은 평생 동안 1300여종의 특허를 획득한 천재 발명왕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한 에디슨은 알고 있지만 실패한 에디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 말 중에 ‘청기와 장수’라는 표현이 있다. 옛날에 청기와 굽는 법을 어떤 사람이 알아냈지만 혼자 이익을 얻기 위해 아무에게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죽는 바람에 후세에 그 비법이 전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한 말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비법이나 비방과 같은 지식정보가 사회적으로 공개 전승되는 법이 없었다. 혹자는 그것이 바로 산업화에 실패하고 기술의 낙후를 불러온 잘못된 민족성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특허법이라는 지식정보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하는 사회적 장치가 없었다면 서구 사회라고 한들 청기와 장수가 없었겠는가.

  에디슨이 그 많은 발명과 특허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재능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보다 지식정보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개인의 재산권으로 인정해준 미국의 프로패턴트라는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지식인들도 미국 연방헌법 제 1조에 특허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영국에서 독립하자마자 제정된 1788년의 미연방헌법 제 1조 8항 8절에는 특별한 지식을 이용하여 발명한 물건에 대해 일정기간 국가가 이익을 보장해주는 특허법이 명시되어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링컨 대통령이 흑인노예 해방의 아버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가 특허정책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링컨은 프로패턴트 정책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특허를 획득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초기에 열세했던 북군이 남군을 꺾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발명가들이 특허권을 존중하는 링컨 편에 서서 신무기를 개발해주었기 때문이다.

                                       [중간 생략..]

  에디슨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회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최초로 소리를 축적하여 자본화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낸 사람이 공식적으로는 토머스 에디슨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 원리와 이론 그리고 실험기기를 만들어 낸 사람은 그보다 앞서 포노그래프라는 장치를 만들어낸 프랑스 인쇄식자공 레옹 스코트였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샬 크로도 에디슨의 포노그래프 원리와 거의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청각에 의해 인식된 현상의 기록과 재생방법]을 1877년 4월 30일 프랑스 과학아카네미에 제출했지만 1년 넘게 개봉되지 않고 다음해 11월에야 발표되는 바람에 에디슨이 특허권을 얻은 후 거의 1년 뒤에 뒷북을 친 꼴이 되었다.

 

 

99퍼센트의 영감이 낳은 소프트 마인드의 위력

 

  1896년 프랑스의 파테 형제는 에디슨의 포노그래프에 관한 특허권을 매수해,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를 정기적으로 레코딩함으로써, 1500곡의 유행곡을 수록해 음악살롱을 열었다. 그러나 에디슨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힌 것은 1904년 오디온 사가 선보인 양면 원반 레코드였다. 에디슨은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 원반형 레코드와 경쟁하지만, 1920년 무렵에는 원통형 레코드를 생산하는 곳은 에디슨 사 한군데밖에 없었고, 결국 에디슨 사마저 원반형을 택하게 된다. 소니의 베타맥스와 빅터의 VHS의 비디오테이프 양식이 양분되어 경쟁을 벌이고, 결국 기술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그 양식 문제로 베타맥스가 백기를 들게 되는 사건이 20세기 초에도 벌어진 바 있다.

  에디슨은 무서운 집념으로 베를리너의 디스크와 경쟁을 벌린다. 잠을 자지 않고 심혈을 기울인 끝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원통형 소프트의 복사기술을 발명해내고 자기만이 아는 그야말로 ‘청기와 장수’식 다이아몬드바늘을 제조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으며 베를리너형 레코드와 싸운다. 레코드 산업에 대한 그의 집념은 베를리너가 죽기까지 거의 40년간이나 계속된다. 베를리너가 죽자마자 에디슨이 레코드 산업에서 손을 뗀 것만 보아도 이 천재를 따라다닌 어두운 그림자가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2년 뒤 에디슨은 “99퍼센트의 땀(Perspiration)에 1퍼센트의 영감(Inspiration)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대체 이 천재 발명가가 그토록 강박관념에 휩싸이게 만든 원통형 콤플렉스의 그 원통한 사연은 무엇일까.

  에디슨에게는 축음기가 음악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지식정보, 즉 기계기술 이상의 콘텐츠에 대한 문화 마인드가 없었던 것이다. 축음기를 만든 것은 에디슨이 분명했지만 오늘과 같은 디스크 산업, 그리고 미디어 산업에 소리축적 기술을 이용한 것은 에디슨이 아닌 베를리너요, 영국 그라모폰 사의 오언이요, 최초로 음악 살롱을 만든 프랑스의 파테였다.

  에디슨은 디스크식 레코드와 자신의 포노그래프의 음질기술을 경쟁하기 위해서, 가수와 그 가수가 녹음한 원통형 음반을 가지고 미국 전역을 순회 공연한다.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가 어두워지고 다시 조명이 들어오면 가수는 간 데 없고 에디슨의 축음기가 돌아가는 퍼포먼스를 펼쳤던 것이다. 이는 그의 관심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공연이 아니라, 소리가 얼마나 정확하고 선명하게 담기는지를 보는 기술 실험에만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만약 정보지식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콘텐츠 개념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아마도 레코드에 관한 한 ‘1퍼센트의 땀에 99퍼센트의 영감’으로 편히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패한 에디슨의 이야기는 원통형과 원반형의 경쟁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축음기’ 하면 그것을 발명한 에디슨보다도 레코드의 대명사가 된 ‘니퍼(Nipper)'라는 개의 로고가 먼저 연상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게 것이다. 1889년 영국 런던의 평범한 풍경화가를 프랜시스 바로 (F. Barraud)는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의 나팔통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애견 니퍼를 그린 그림을 들고 에디슨을 찾아갔다. 바로는 자신의 개 니퍼가 죽은 형이 생전에 즐겨듣던 음악이 흘러나오면 축음기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면서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라는 화제를 단 이 그림을 포노그래프의 선전용으로 사달라고 제의했다. 하지만 에디슨 축음기회사는 ’개가 무슨 음악을 듣느냐‘며 코웃음을 치고 일거에 거절했다.

  바로는 다시 그 그림을 가지고 영국 그라모폰 사의 사장 오언을 찾아간다. 부재중이었던 사장은 그 뒤 그림 속의 원통형 에디슨 축음기를 자신의 회사 원반형 레코드로 고치면 100파운드에 사겠다고 제의했다. 오언은 이 그림을 이용해 축음기의 하드웨어에 충견의 픽션(Fiction)을 집어 넣어 상품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광고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이 니퍼는 오늘날의 정보지식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디자인이나 옌센이 말하는 드림웨어(상품이 아니라 픽션을 파는 꿈과 감동의 상품)의 소프트파워를 사용한 것이다.

  21세기의 주류를 이루는 소프트 마인드, 소프트 파워의 세계를 몰랐던 에디슨은 이번에는 그야말로 개에게 뒤꿈치를 물리게 된 셈이다(원래 ‘니퍼’라는 개 이름은 익살맞게도 발뒤꿈치를 문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 베를리너에게 패배를 당한다. 에밀 베를리너는 1900년 영국 그라모폰 사를 방문해 이 개작된 그림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미국으로 돌아온 직후, 자신이 직접 그린 개 그림을 미국과 캐나다에 각기 의장등록을 한다. 뒤에 빅터 토킹 머신 사가 베를리너로부터 이 상표권을 인수했고, 마지막으로 니퍼는 RCA 도그(Dog)가 되어 전세계 음악 애호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로 발전하게 되었다.

 

 

21세기형 인물은 에디슨이 아닌 베를리너

 

  에디슨의 좌절을 통해 우리는 지식정보사회에서 고부가가치를 유발할 수 있는 산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 콘텐츠, 픽션, 디자인 파워가 결합된 미디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실패한 에디슨이 새로운 21세기를 여는 ‘트리거(Trigger)’로 작용한 것이다. 에디슨의 한숨 속에서 지식정보산업의 앞날을 내다볼 수 있다.

  또한 에디슨의 실패를 통해 특허권이 지식정보를 키우는 동인인 동시에 제약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특허법의 양날의 칼이 발명왕 에디슨의 개인사에서 최초로 징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에디슨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무엇보다 소중한 교훈은 다니엘 벨이 말하고 있듯이 기계기술이 이제는 지적기술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증기기관을 만들어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 제임스 와트는 보일러공이며, 20세기 전기시대를 연 에디슨은 통신기술자 출신이다. 에디슨은 그 많은 전기기기를 발명했지만 맥스웰의 자장이론과 같은 물리학은 몰랐다. 지식정보사회의 새로운 기술발명은 대장장이의 땜장이 기술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IT나 BT는 기초과학과 고도의 전문지식, 그리고 복잡한 과학이 서로 얽힌 복합적 지식 없이는 새로운 기술혁명을 이뤄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정보사회를 오해하고 있다. 소리를 축적하는 청각정보 시스템을 만들어놓고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던 에디슨처럼, 그리고 사람이 없는 파리의 도심 풍경만을 찍은 외젠 앗제(Eugene Atget)가 출현하기까지 사진기를 만들어 놓고도 거의 반세기 동안 인물사진 밖에는 찍을 줄 몰랐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오늘날 인터넷 기술을 비롯하여 그 많은 IT들이 바로 실패한 에디슨과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IT를 산업기술처럼 쓰려 했다가 닥친 이른바 e이코노미의 거품경제, 엔론, 월드컴의 분정 분식회계로 맞은 증권시장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몰고 오고 있다.

  원통의 실린더냐 원반의 평면 디스크냐, 이 작은 컨셉트의 차이가 20세기냐 21세기냐의 문명 흐름을 갈라놓는다. 우리는 지금 IT의 멀티미디어 시대에 살면서 베를리너의 원반과 성격이 거의 같은 CD와 DVD 디스크를 사용한다. 에디슨의 실린더가 아닌 것이다.

  아직도 니퍼의 빅터 상표는, 개가 짖는 바람에 숨어 있던 마호메트가 들켰다는 이유로 개를 미워하는 이슬람 문화권과, 음치를 “개처럼 노래 부른다”는 속담이 있다는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전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베를리너는 단순한 과학기술자가 아니라 시인이요, 자선사업가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21세기를 움직이는 사람은 에디슨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름도 생소한 베를리너의 상상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예시답안


  21세기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기계기술과 결합한 문화 컨텐츠, 소프트 파워에 대한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기계기술을 개발했다고 할지라도 문화 컨텐츠를 개발하지 못하면 기계기술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에디슨은 축음기를 개발하였으나 축음기와 관련된 문화 마인드가 없었기 때문에 축음기와 관련된 고부가가치 산업을 주도하지 못했다. 에디슨은 축음기 특허권을 얻었으나 대중화되기 힘든 원통형 레코드를 고집했다. 오히려 베를리너가 원반형 레코드를 개발하여 시장을 장악하였다.

  또한 에디슨은 음악을 즐겨듣는 충견인 ‘니퍼’라는 로고의 가치를 무시했다. 영국 그라모폰 사가 이 로고를 사들여 ‘니퍼’를 축음기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에디슨은 1300여종의 특허를 낸, 성공한 발명가였으나 축음기에 있어서는 문화 마인드를 가지지 못하여 시장을 주도하지 못했다.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기계기술 이상으로 문화 컨텐츠, 디자인을 이용하여 꿈과 감동의 상품을 만들어 내는 문화 마인드가 필요하다.



4. 학생답안


(1) 고등학생의 답안

  에디슨의 성공과 실패는 지식정보사회에서 고부가가치를 유발할 수 있는 미디어의 중요성과 기계기술 이상의 콘텐츠에 대한 문화마인드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에디슨은 특허법의 보호 아래 자신의 기계기술을 발전시켜 성공한 발명왕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베를리너와의 디스크 경쟁에서 에디슨의 실패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에디슨은 충분한 기계기술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을 지식정보사회에 응용할 수 있는 문화마인드가 부족하였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새로운 기술발명만으로 혁명을 이루어낼 수 없다. 과학적 지식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변화하는 사회에 이용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베를리너는 에디슨이 가지고 있지 못했던 소프트마인드를 이용하여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지적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이것을 적극 활용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에디슨과 같은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문화마인드를 갖추고 기계기술을 사회에 지적기술로 응용해야 한다.



(2) 로스쿨 수험생 답안

  에디슨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성공하였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 요구되는 문화마인드의 부재로 인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패배하였다. 에디슨이 정보사회에서 요구하는 콘텐츠 개념을 미리 파악하여, 자신의 영감에서 얻어진 기술과 접목시켰다면 더욱 발전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양식의 문제로 에디슨은 베를리너 디스크와의 경쟁에서 밀렸고, 자신만의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다. 이는 에디슨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계기술 이상의 콘텐츠에 대한 문화마인드의 부재로 인한 것이었다.

  기술적으로는 크게 성공을 하여 특허를 내기도 하였으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만한 마인드는 가지지 못하여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소프트 마인드, 소프트 파워의 세계를 알지 못했던 에디슨은 기계적 기술에 픽션을 가미해 니퍼라는 개를 통해 광고효과를 누린 베를리너에게 또다시 패배하였다.

  에디슨의 좌절은 우리에게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결코 새로운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문화마인드, 즉 지적 기술임을 알려준다. 21세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베를리너의 상상력에 그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4. 첨삭 총평


(1) 비유자제 : 논술은 소설이나 수필이 아니다.

  비유는 논술에서 독(毒)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답안 중에 “모든 것이 한 그릇에 담겨 녹아 섞이는 시대”라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이 부분은 ‘21세기 정보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기술이나 학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의도를 담은 문장이다. 또한 “지적인 기술, 즉 지적 측면에 고도의 순도성을 띈 것들”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지적인 기술은 오히려 복합적이고 순수하지 않은 기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글을 화려하게 꾸미려다 보니 어색한 표현이 되고 채점자의 고개가 갸웃하게 된다. 논술은 논리적인 글이어야 한다. 문학적이고 화려한 표현보다 자신의 의도가 정확하게 드러난 표현이 좋다.


(2) 비문속출 : 문장은 간결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야 한다.

  제출된 답안 중 한 부분을 예로써 제시한다.


“에디슨은 지식정보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하는 특허법이 구현된 사회∙역사적 배경을 업고 성공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기계기술의 진보와 개발에만 주력했고, 콘텐츠와 디자인 등 소프트웨어 마인드를 등한시했기 때문에 실패를 맛보고 경쟁에서 뒤쳐졌는데, 이러한 사례는 콘텐츠 중심의 문화마인드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예라 하겠다.”


  쉼표가 세 번이나 쓰인 이 문장은 한 문장이면서 한 문단으로 구성되었다. 이렇듯이 호흡이 긴 문장을 쓰게 되면 채점자의 시선이 분산된다. 더불어 자칫 비문이 되어 감점요인 1순위가 된다. 특히 ‘~고’, ‘~며‘ 등의 문장연결을 지양하고 ’~다. 그리고~‘의 형태로 쓰는 것이 좋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글을 쓸 때에는 무조건적으로 간결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야 한다.



(3) 이해불가 : 채점자는 논술문으로만 당신을 만난다.

  논술 채점자는 완결된 글의 형태로 글쓴이를 평가한다. 따라서 평가의 대상으로써의 논술이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문장의 형태로 드러낸 것이다. 만연체의 글, 화려한 비유가 난무하는 글, 근거가 미약한 글은 불친절한 답안일 뿐더러 채점자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때처럼 자신의 답안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4) 볼펜을 사용하자.

  실전에서는 볼펜을 사용하여 수험에 임하게 되므로 연습과정에서 볼펜으로 답안을 작성해야만 한다. 실제 시험에서는 부정행위 등의 문제로 인하여 연필이나 수정액 등을 일절 사용할 수 없다. 또한 평상시에 연필 등을 사용하여 가필, 수정하는 습관이 들 경우 실전에서는 시간부족으로 글을 완성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더불어 답안지 사용법과 관련하여 교정 부호 등도 채점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평상시에 볼펜을 사용하여 실전에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


(4) No pain, no gain

  글쓰기는 귀찮고 번거롭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 직접 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써보지 않으면 논술 실력은 절대 늘지 않는다. 따라서 귀찮고 번거로운 글쓰기일지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5) 답안 작성시 주의할 용어

원형

형용사형

단어의 뜻

낫다

나은

be better

낳다

낳은

bear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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