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법학의 ‘학문적 후퇴’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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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법학의 ‘학문적 후퇴’ 방치할 것인가
  • 법률저널
  • 승인 2007.06.2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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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희 성 (법학박사, 수원대 행정대학원장)

 

누가 뭐라해도 현행 사법시험은 법학적 실력을 테스트하는 최고의 시험이다. 따라서 시험제도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법학수준을 가늠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학수준은 요약된 골격적 저서를 읽고, 그것으로 최고시험에 합격하는 '수준이하의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본다.


이런 법학이라는 학문의 후퇴적현상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70년대로부터 90년대에 이르는 근 30년간을 나는 사법시험·행정고시 등의 강의를 하면서 강의자체는 핵심을 요약하기도 했지만, 요약강의 안을 만들어 강의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하면 시험준비 강의를 하면서도 풍부히 기술하고 있는 교과서를 보아줄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사법시험 합격인원이 300명 이상 1000명으로 증가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시험에 합격하고도 그 공직취임·변호사 등을 포기하고 강의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어감에 따라 상황은 대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변화를 모두 거론할 수는 없으나, 가장 뚜렷한 것은 다음의 세 가지로 본다.


첫째, 공부를 함에 있어서 학원강사가 모자이크적으로 요약해 놓은 책만을 보고, 풍부히 심도 있게 기술해 놓은 책은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는 학자의 저술태도마저 바람직하지 않은 경향을 보여 법학에서 학문적 후퇴를 가져오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가 60년대 공부할 때는 민법의 경우는 적어도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친족·상속법'의 5권으로 나누어 풍부히 기술된 책을 보았다. 그리고 행정법도 '행정법총론'(또는 행정법Ⅰ)과 '행정법각론'(행정법Ⅱ)으로 나누어 상세히 기술된 책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어떤가. 그 민법을 4분의 1, 5분의 1로 줄여 놓은 요약서가 행세를 하고, 행정법도 두권으로 2000page가 넘어야 하는 량을 1000page내외의 단권으로 줄여 놓았다.(이 말씀이 이런 류의 책을 낸 분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이런 풍토를 야기시킨 우리의 법학풍토를 개탄하는 것이다.)


공부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 '상세한 책을 보되, 요약이 필요하고, 요약하되 상세한 책'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요약암기'game이 법학은 아니다. 그래서 답안 채점자의 입에서 '영양실조의 답안지'라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본다.


많은 새로운 이론과 판례가 누적되어 책이 이들을 기술하여야 함에도 요약서가 난무하는 것은 현행 사법시험·행정고시 등의 출제방식과 그 인원에 기인하고, 일부 수험준비생들의 그릇된 인식에 영합한 출판사의 영리적 태도에 기인한다고 본다. 


독일·일본 등의 경우도 교과서는 비교적 간략하다. 그러나 학문·저술의 풍토가 완연히 다른데서 오는 것이다. 행정법으로 예를 들면 수백개의 분야별로 상세히 연구한 책들이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기초를 가르치는 교과서는 간략히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법학의 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해인가 나는 공부의 일생을 정리하고 싶어 '하천법', '도로교통법'을 저술하겠다고 출판사에 제언했더니 몇권이나 팔리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문적풍토와 복사문화의 현황으로 보아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파악하고 있는 바는 상당수의 선진국에서는 일정수준의 저서를 특정기구에서 심사하여 5000권내에서 5만여권을 모두 도서관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 나라의 학문 내지 저술문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둘째, 골격서가 판을 치는 것은 현행 사법시험의 결점에서 오는 면이 많다. 현재 1차에서 4과목(영어시험은 자격시험으로 대체하고 있다), 2차에서 7과목을 치고 있으나, 1차에서 행정법을 더 추가하고 문제도 50문 이상으로 하고, 시험기일과 시간을 2배 이상으로 늘리라고 하고 싶다. 특히 문제수준을 요약서나 판례만을 암기하고 온 사람을 합격못하도록 출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적응하는 전문가를 배출하기 위하여 3차 시험에서 의학, 약학, 토목공학, 전산공학, 회계학, 생물학, 물리학, 경제학, 특허법, 국제사법, 노동법, 세법, 경제법 등등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응시하게 하여 각 특수분야의 국제적전문가를 길러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인의 생각은 탁상의 이상론으로 수험생에게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나, 유비쿼터스적 발상의 전환과 개혁이 필요하다.


셋째, 법학교수제를 개혁하라고 말하고 싶다. 명색이 교단에 서 있는 교수의 한 사람으로 말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본인이 그동안 느낀 바는 우리나라에서 법학교수되기가 '어렵고도 쉽다'는 것이다. 특히 사법시험인원이 1000명 이상되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1,2년 공부를 더하고 사법연수원 2년을 수료하더라도 10년 미만으로 판사·검사·변호사가 될 수 있고, 대부분 그 수입에서 대학교수의 몇 배를 능가하고 있어 대학졸업·군필, 석·박사과정 이수 또는 외국유학 등으로 15년 이상 걸리고 그러고도 교수가 되느냐가 불확실한 판에 우수자가 대학교수로 오겠느냐 하는 것이다. 적어도 80년대 까지는 형편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고 본다.


2000년대 들어와서 생긴 현상을 그대로 두면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우리 법학교단은 황폐(?)해질 것 같은 생각을 하면 내가 기우일까. 물론 지금 로스쿨 할 것이라고 변호사 자격을 가진 인사중에 학위 가진자를 전임교수로 채용한 경우가 많다. 내가 함부로 말하는 지는 모르나, 재정적 문제가 주가 되어 그들을 변호사 개업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에서 채용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학문적연구와 강의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면 나만의 독단적 생각일까. 물론 변호사자격을 가진 분들중에 몇 분은 아예 강의와 저술에 전념하고, 우수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20~30년 후를 내다보면 지금의 제도는 개선되어야 하겠다. 우수하고, 또 교직에 전념하는 교수를 확보하려면 그들의 대우가 개선되어야겠다. 적어도 선진국과 같이 교수의 저술을 장려하고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로스쿨제도의 내용과 그 채택여부를 조속히 확정하라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것은 그 내용을 논란한지 10년이 다 되었고, 나름대로 안을 만들어 국회 법사위원회에 제출하였으나, 통과를 보류한 채 각계각층에서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모든 제도를 개혁하는 데는 이견이 있게 마련이나, 장기간 논의하여 만든 안을 두고 또다시 왈가왈부하는 것이 최근의 상황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고, 자기들의 밥그릇 챙기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 유감스럽기만 하다. 


모든 제도의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시행하면서 단점이 발견되면 보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지엽적인 단점을 들어 파괴적(?)논의만 계속할 것인가. 나로서는 더 이상 논의하여도 이해대립에서 오는 모든 이견이 해소될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통과의결을 하던, 부결을 하던 조속히 확정하여 대학의 법학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짓게 하여야지 이 현재와 같은 어정쩡한 상태를 계속시키는 것은 수험준비생에게 적지 않은 불안감을 주고 대학의 법학교육을 계속 혼란상태에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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