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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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6.12.2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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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예수는 왜 왔을까?


성탄절이 다가온다. 곳곳에 성탄 트리가 장식되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진다. 외국의 항공사들 중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특정 종교에 대한 차별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엄포성 경고에 아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포기했다는 외신도 전해져 왔다. 그런데 과연 예수는 이 땅에 왜 왔을까?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왔을까? 권력자들의 오만과 독선을 깨우치려고 왔을까? 전쟁과 기근이 넘쳐나는 곳에 위로와 안식 그리고 평화를 주기 위해서 왔을까?  예수가 살던 2000여 년 전과 지금 중 어느 때가 더 악하고 나쁠까?


혹시라도 그의 외침은 광야에서의 외침에 불과하였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이 더 악하고 더 추잡스러운 죄악이 광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시의 세상은 소수의 권력자들의 지배에 의해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대부분은 선하고 순수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무지에 의한 악함이 더 극에 달했을까? 지금 사람들은 높은 교육을 받고 세상의 이모저모를 더 깨우치게 되었으니 더 지혜로워져 세상이 더 평화로워진 걸까? 세계는 여전히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고, 곳곳의 분쟁은 더욱 잔인해져가고, 대량학살로 이어지고 있다. 2006년의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테러가 넘쳐나고, 질병과 기근, 자연재해와 인간재해가 넘쳐나고, 탐욕과 불신이 넘쳐나고 있고, 모든 것이 현재진행형이다.


20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아무래도는 세상이 더 악해졌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내 자신이 더 악해져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식이 넘쳐나고 문명이 발달한 만큼 더욱 무지몽매하고 악해진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 질병과 기근이 사라진 자리에 탐욕과 불평등이 더 큰 무게로 자리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여기저기에서 사랑의 연탄 나누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보고 문득 예수가 저기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 장의 연탄을 위해 많은 이들이 수고를 하고, 세밑의 훈훈한 정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30% 정도 연탄 수요가 늘었다고 하니, 석유에 이어 엘피지 가정용 가스 공급이 일상화되어 있는 세상에서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음을 본다. 오죽하면 유럽에서조차 장작을 떼는 사람이 늘어나 공기오염 등 환경문제가 심각한 이슈가 되고, 이웃끼리 소송까지 벌어지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니, 풍요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빈곤 또한 늘어나고 있음을 본다.


올 연말을 넘기기 전에 나는 얼마의 자선기금을 구세군 냄비에 넣을 수 있을까? 청년시절, 30여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오천 원을 처음으로 자세군 냄비에 넣은 이후 해마다 아주 적은 돈을 기부해 오고 있다. 당시 가난했던 나로서는 오 천 원이라는 돈이 그리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선뜻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승용차를 이용하다 보니 지하철을 자주 타지 않지만, 지하철을 타러 갈 때면 지하철 입구나 지하철에서 힘들게 구걸하는 이들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쥐어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지하철 요금보다 더 많은 천 원을 걸인에게 쥐어주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얼마나 힘든 노동을 하고 있는가, 그 노동에 대한 대가는 누군가의 감동을 통해 지불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혹시라도 옆 사람에게 그러한 모습이, 동전이 건네지는 현장에서 괜히 튀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교회에서 사랑의 헌금을 한다.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돕기 위한 행사비로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무명인 것이 좋다. 이름 없는 무명인 것이 좋다. 하루의 삶이 신의 축복이기에, 예수가 가르쳐준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반성을 하면서도 오늘 하루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커다란 축복임을 깨닫는다. 오늘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는가?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살아 있기에 나쁜 짓도 할 수 있고, 좋은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10원짜리 주화가 새로 바뀌어 지난 18일부터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불환통화국가인 우리나라에서 10원짜리 주화는 어찌 보면 태환통화이다. 실제 제작비용이 18원 정도 들어간다니, 종래의 10원짜리 주화가 38원의 제작비가 들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많이 싸졌지만, 액면가치보다 비싼 것은 사실이다. 재정경제부는 정치권 등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5만 원짜리 또는 10만 원짜리의 고액권을 발행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예수가 가르친 사랑을, 아니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 모든 이들이 지금 가진 모든 것이 축복임을 안다면, 십 원짜리가 되었든, 오십 원짜리가 되었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마음이 모두에게 솟아나는 세밑이기를 바란다.


지난 9일, 구세군자선냄비에는 현금 4만원과 한 통의 편지가 투함되었다고 한다. “1년간 매일 100원짜리 동전을 저금해 3만6500원을 모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부족한 것 같아 4만원을 채워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천 년 전의 십자가 위의 예수는 저 무명의 편지를 쓴 주인공의 마음과 손길로 지금도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종교계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단순히 행사에 그치는 상호부조, 자선의 마음이 아니라 일상화되어 있는 서로 돕고 사랑하는 상생의 마음이 되기를 바란다.


저 성탄트리의 반짝임이 꺼지는 순간, 예수의 사랑도 함께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다고 일 년 내내 성탄트리를 켜놓을 수도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별처럼 반짝이기를 바랄 뿐이다. 십 원 짜리이든, 오십 원 짜리이든, 아니면 고액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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