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합격기]“수험생활은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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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합격기]“수험생활은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
  • 법률저널
  • 승인 2006.12.0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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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제48회 사법시험 최고령 합격

1.  들어가며

 

(1) 11월 28일자로 제48회 사법시험 합격자가 최종 발표되었다. 이번에는 3차면접시험에 '심층면접'을 도입하여 면접탈락 7명을 포함, 최종 8명을 탈락시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애초 법무부에서 2차 합격자를 발표하면서 '심층면접'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합격생은 물론 작년 합격한 연수생들 및 대학 교수님들도 크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설마 떨어뜨리겠냐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실제로 3일 동안의 면접과정에서 26명을 '심층면접'에 붙이고 7명을 면접에서 탈락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보니 앞으로는 3차 면접시험도 실제로 당락을 좌우하는 시험이 되었다고 하겠다. '심층면접'과 '탈락'에 해당하는 기준을 두고 여러 말이 많으나 법무부가 '심층면접'시행을 공고한 지 1달여 만에 첫 해부터 '결연하게' 행사한 것을 보면 앞으로도 면접시험에 대한 불안, 초조는 계속될 것 같다. 이번 3차면접에서 아쉽게 탈락한 여덟 분의 경우 내년에 다시 면접에 응시할 수 있으니 비록 맘고생이 많고 힘들더라도 기운내서 내년에 합격하기를 빈다. 나를 포함하여 이번에 최종 합격한 994명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2) 이렇게 최종 합격하고 보니 기쁘다. 그리고 지난 7년여 수험생활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생각해보면 내 수험기간 동안 사법시험제도가 여러 번 바뀌었고 그래서 더 힘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2002년부터 행정자치부에서 법무부에로 사법시험 주관이 이전되면서  1차시험의 경우 응시과목이 줄어들면서 외국어의 경우 영어대체제로 바뀌었고 비전공자는 35학점을 이수해야 응시할 수 있으며 시험시간과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또 2차시험의 경우 답안지가 바뀌었고 분할채점이 도입되어 채점이 빨라졌으며 면과락보다는 총점에 따라 합격이 좌우되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의 유형과 배점도 다양화되어 공부방법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내년부터는 민법의 배점이 높아지고 또 로스쿨도입을 두고 논란이 많다. 마치 우리나라 사법시험제도의 '실험 터널'을 거쳐 온 느낌이다.   

 

(3) 지난 10월 12일 제48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를 발표하던 날, 예정보다 10여일 앞당겨 발표하는 바람에 아내는 미처 모르고 있다가 그 전날 알게된 터라 아침 출근하고 나서도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발표시각은 오후 5시였으나 오전부터 맘이 차분하지 못하여 목욕을 다녀온 후 12시경 혹시나 하는 맘으로 법무부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합격자명단이 발표되어 있었다. 서둘러 이름을 찾아보니 얼마 안가 내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분명 내 이름이었다.

 

(4) 사법시험 2차 합격. 2차시험 6번 도전 만에 얻은 합격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2000 6월 성균관대에서 본 첫 2차시험 이래 2001년 고려대에서 그리고 2002년 월드컵함성을 뒤로 하면서 동차로 치른 2차. 다시 2003년 마지막이라 생각하면서 치른 고려대 법대에서의 2차와 한 과목 과락으로 인한 실패의 아픔. 그리고 나서 한층 성숙한 마음으로 도전하여 1차시험을 고득점(93점)한 바탕으로 치룬 2005년 2차시험은 비록 아쉽게 낙방했지만 자신감을 갖게 했고, 그래서 6개월간의 2차답안 연습과정의 연장으로 치룬 2006년 2차는 내심 기대하였는데 막상 합격자명단에서 내 이름을 보자 무엇보다 안도감이 들었다. 이 어려운 구직난 속에서 늦은 나이에 취직한 기분이었다.  

 

(5) 나는 이제 나이 40세 되던 '99년에 새로운 진로를 모색한 이후 법조인이라는 새 길을 시작하려 한다. 내 젊은 날 학문의 길과 사회실천의 길을 걸어오는 도정에 다시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가려 한다. 그래서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길에 대한 희망과 설렘과 용기를 갖게 된다.  

 

(6)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오직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임을 나는 안다. 사법시험을 처음 시작할 때 단 한 번에 담배를 끊게 하여 건강을 주시고 아내의 취직을 열어주신 하나님,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틱장애로 고생하는 아들을 이제까지 보살펴주신 고마운 하나님, 40대 나이에도 집중력을 주시고 인내하게 하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에 나를 위해 기도한 아내, 담임목사님, 사모님, 전도사님, 권사님, 집사님 등 많은 분들의 기도가 없었다면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기 힘들었을 것이고 이런 합격의 기쁨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아들 잘되기를 바라시는 부모님, 고마운 남동생, 여동생 등 가족과 장인, 장모님 등 처가족에도 감사함을 전한다.

 

2. 사법시험에 도전하기까지

 

(1) 내가 '79년 광주 금호고를 졸업하고 1년 후 '80년 전남대에 들어갔을 때 나는 사법시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2학년부터 철학과를 선택하면서 학문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대학 졸업 후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로 진학, 독일 근,현대 철학을 전공하였다. 

 

(2) 그런데 '84년부터 시작된 학원자유화 물결과 더불어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과 민주주의방향에 대한 논쟁이 치열해지고 사회과학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당시 학생운동권 일부가 노동운동을 지향하여 노동현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도 당시 대학원생으로서 써클활동을 하면서 노동현장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86년부터 인천에서 공장생활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87년 노동자대투쟁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쉼 없는 격동기 속에서 사회적 실천활동을 하다보니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3) 그 와중에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국제정세의 변화(독일의 통일과 소련의 해체 등)와 국내정세의 변화(김영삼 문민정부의 등장 )에 따라 학생출신 활동가들이 대다수 복학하고 생활전선으로 들어가고 노동운동도 노조중심의 활동으로 정립되어 가면서 나 자신도 변화된 사회환경에 맞추어 방향을 모색하였다. 몇 년간의 지역사회 활동과  학원 영어선생을 한 후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3. 사법시험을 공부하는 동안 느낀 몇 가지

 

(1) 이하에서는 지난 7년여 간 사법시험 공부를 하면서 느낀 몇 가지를 적어보기로 한다.  요즘에는 사법시험 안내 책자도 발간되어 자세히 공부방법을 알려주고 있고, 또 학교나 학원에 가면 자세한 상담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학습참고서나 학습방법을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혹시 나이가 30대 이상이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출신대학 법학과나 신림동 고시학원을 방문, 상담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모르면 자주 묻고 최근 경향을 파악하여 자신의 공부방법과 학습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초기의 열정을 끝까지 유지하기"

사법시험을 시작하겠다고 '99년 3월 신림동 고시원에 들어간 때가 벌써 엊그제 같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과 기간제 영어교사인 아내를 처가에 맡기고 1.5평 남짓한 고시원 방안에서 밑줄 그어가며 헌,민,형 교과서를 공부하던 열정이 생각난다. 당시 마음자세와 집중력은 상당했던 것 같다. 마치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는 것처럼 빨아들였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여간 고시원 방안에서 독학으로 1차시험 준비를 한 결과 다음해 2000년 2월 1차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그 때 암기했던 헌,민,형 조문은 이후 지금까지도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로 2006년 현재 1차시험의 난이도는 2000년 당시의 2-3배정도 된다고 본다. 따라서 혼자 독학으로 통과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3) "법학의 출발은 법조문으로부터"

1차시험 뿐만 아니라 2차시험 준비과정에서 법조문에 대한 강조는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특히 1차시험 준비는 법조문의 철저한 이해와 암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방대한 민법교과서도 사실 민법조문해설에 판례를 더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항상 법전을 왼손에 들고 학습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 "legal mind(법적 사고)를 형성하기"
2001년 두번째로 치른 2차시험에서 실패한 이후 무엇보다 절실히 느낀 점은 'legal mind' 형성의 중요성이었다. 사실관계의 파악→법률적 포섭→사안의 해결이라는 법적 사고과정이야말로 법학공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법률가란 사실관계 속에서 법률적 쟁점을 파악하여 관련법률에 포섭하여 사건(case)을 해결하는 것이라 볼 때, 특히 2차시험의 중심은  'legal mind'의 측정에 있다고 본다.

 

(5) "동차합격을 위해서는 욕심 버리기가 우선"
2002년과 2005년 두 번의 동차 기회를 놓치고 나서 느낀 점은 동차합격을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어려운 1차시험을 치르느라 힘을 소진하고 나서 약 4개월여 동안 2차준비를 하는 동안 많은 수험생들이 여러 가지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을 많이 보았고, 나 자신도 경험하였다. 그런데 1차성적이 합격선을 어느 정도 넘는다고 판단된 경우라면 2차준비에 매진하는데, 이 때 자신의 학습정도와 시간적 한계를 고려하여 무리하게 욕심내지 말고 처음 시작하는 맘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칫 동차합격에만 목표로 하다 자신의 학습페이스를 놓치거나 방심하여 다음해를 준비하는데 차질이 생기면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다.

 

(6) "이제는 과락 면하기가 아닌 총점제 경쟁하기"
2차시험의 가장 큰 공포는 과락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평균 커트라인이 50점대 전후인데 과락이 40점이니, 주관식 평가시험인 2차시험에서 면과락이면 합격이라는 말이 수년동안 전해오던 중 정말 현실화된 해가 지난 2003년이었다. 1천명 선발예정인원에 100여명 모자란 900여명을 선발하였는데, 면과락하면 당시 합격하였다. 반면 총점으로 당시 커트라인을 훨씬 상회하고도 1과목 과락으로 불합격한 경우가 상당수였다고 한다. 나도 당시 민법과락으로 실패하였는데, 그 이전에 치른 3번의 경우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과락은 실망을 넘어 채점기준에 대한 의구심과 타과목과의 불공평에 대한 생각으로 억울함마저 느끼게 했다. 이후 법무부의 많은 노력으로 2005년부터 분할채점을 하면서도 채점기준을 더욱 객관화시키고 과락율을 더욱 낮추어 총점제를 원칙으로 하도록 한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험중인 사법시험제도'라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7) "지속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수험생활이 길어지길 바라는 수험생은 아무도 없다. 또 그러길 예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경쟁 속에 몇 번 실패하다보면 금방 5년, 7년, 10년이 가고 만다. 이 때 계속 도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사법시험준비의 3대 요소라 하면 흔히 지능, 돈, 건강을 드는데,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고 본다. 사법시험에 도전할 정도면 지능은 의심할 것이 없고 건강도 돈이 있으면 유지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라면 최소 2년이상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돈을 확보한 후에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쟁터에서 실탄없이 빈총으로 이기길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나도 2003년 2차실패 후 새로 바뀐 영어대체시험인 토익을 준비 못한 탓도 있지만 돈도 없어 1년 여간 공백이 있었다.  

 

(8) "공부할 때는 집중해서 끈기 있게 해야"
몇 번의 2차실패 후 다시 시작한 2004년의 경우 나의 각오는 예전과는 달랐다. 우선 2005년 1차시험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 2차과목 중 민법과 형법을 좀 더 깊이 있게 학습하였다. 1차준비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는데, 몇 년 전에 비해 한층 어려워진 난이도에 대비해서 학원모의고사에 등록, 계속 연습하면서 특히 시험준비 막바지에 애먹이는 가족법, 헌법부속법령, 선택과목 (형사정책)을 먼저 정리하고 헌,민,형 판례를 정리해 나갔다.


이 기간 동안 독서실에서 하루 평균 12시간 공부했는데, 사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앉아 있어야하는 시간이었다. 사법시험 공부에는 무엇보다 '집중력'과 '끈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차때는 물론 2차과정에서도 계획을 세우면 조금씩 수정하면서도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해가 깊어지고 학습분량도 대폭 줄어들어갔다. 1차준비과정에서 권순한 강사의 민법판례문제집 2권을 일주일에 독파한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9) "연습이 완전하게 만든다"
1차와 2차의 가장 큰 차이는 객관식과 주관식의 차이이기에 2차시험대비에서 '답안작성연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여름 독학사시험을 통해 35학점을 이수하고 나서 10월 2차발표에서 아쉽게 실패한 후 11월부터 후배와 스터디를 하면서 신림동 학원 모의고사에 등록하여 2006년 4월 3순환과정을 마칠 때까지 6개월여 동안 매일 1시간 내지 2시간씩 답안작성 모의고사를 치렀다. 나중에는 오른손 중지 첫째마디에 굳은살이 박혔을 정도로 계속 시험답안작성을 연습했다. 이를 통해 2차시험 답안작성에 대한 일종의 공포감이 사라졌고, 어떤 문제라도 순서대로 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인지 2차시험에서는 아쉬운 과목도 있지만 대체로 시간 내에 최대한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다. 1차준비 때도 책상에 시계를 놓고 시간 내에 문제풀이연습을 지속적으로 하였는데, 2차준비과정에서도 계속 답안작성연습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험은 연습의 반복 과정이다.  

 

(10)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수년간의 수험생활을 돌아보면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과정이었음을 느낀다. 물론 싸움에서 진적도 많았지만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책과 씨름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지난 2006년 4월말 헌법모의고사를 마치고 마지막 답안지에 채점자가 써 준 '끝까지 최선을 다하십시요'라는 말을 읽고 그 어려운 3순환 모의고사를 마쳤구나하고 생각하던 일, 5월말 시험을 코앞에 두고 심한 독감에 걸려 밤잠을 설치면서도 진도는 밀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일, 6월 독일 월드컵 한국 대 토고와의 첫 경기를 애써 외면하고 계획한 과목진도를 밀고나갔던 일 등이 떠오른다. 

 

4.  글을 마치며

(1) 사법시험은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1,2차 관문을 통과하여 최종 합격하기까지 결코 쉬운 시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끈기와 집중력 그리고 자신감이 요구된다고 본다.

 

(2) 내가 만일 지금보다 더 빠른 기간 내에 합격했다면, 한 번도 실패 없이 합격했다면 그 나름의 기쁨이 있겠지만, 여러 번 실패했으나 최선을 다한 후에 합격한 터라서 실패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만족한다. 수험생이 실패하면 작아지고 오므라진다.  이때는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 가족, 친구, 동료, 선배 등. 나는 나를 믿어준 아내, 가족, 무엇보다 아내의 기도를 통해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누구든지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보답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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