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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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투자자
  • 한상영
  • 승인 2006.10.1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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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경제 이야기>

 

한상영 변호사 법무법인 유일 dyream@chol.com

 

사람을 만나다 보면 수평적 대화가 가능한 경우가 있지만, 처한 상황이나 지위의 차이로 인하여 수직적인 대화로 끝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크게 아파본 적은 없지만 간혹 병원이라도 가게 되면 사소한 병이라도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약자의 신분이 되어 의사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의사는 이러한 환자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더라도 너무 많은 환자를 대하면서 습관이 되어서인지 환자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몇 마디만으로 설명을 끝내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의사가 있다면, 환자가 자기 신체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최상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이를 보장하기 위한 의사의 설명의무는 어떻게 보면 의학적 지식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현상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의사는 전문적 의학지식을 보유한 자로서 환자가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의학정보를 바탕으로 환자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판단이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그 판단의 적용대상은 환자 자신이므로 최종적인 결정권은 환자에게 있으며, 의사는 환자의 이러한 결정권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와 흡사한 것이 투자자와 금융회사의 관계이다. 물론 투자자는 환자와는 달리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신체가 아니라 비인격적인 재산을 대상으로 상대방의 설명을 듣는 입장이기 때문에 크게 위축되거나 상하관계의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투자자도 금융회사에 비하여는 투자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매우 미흡하므로 환자와 마찬가지로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약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비록 금융회사가 투자정보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투자의 대상인 재산의 소유주체는 투자자 자신이므로 최종적인 결정권은 투자자에게 있으며, 이러한 투자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금융회사도 설명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008년도에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에서는 이러한 투자자보호를 매우 강화하고 있다. 즉 투자자보호를 위해 마치 의사의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처럼 투자자에 대한 “설명의무(Product Guidance:상품안내)” 개념을 자본시장통합법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설명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금융투자회사는 상품투자를 투자자에게 권유할 때 상품의 내용과 상품에 포함된 손실위험 등을 투자자가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설명내용을 투자자가 이해했음을 확인하는 서명을 문서로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투자설명서를 제공하거나 설명하면 족하였고, 투자자의 이해여부에 대해서까지 확인을 하도록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았었다.

 

만약 금융투자회사가 위와 같은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중요한 사항을 설명에서 누락하여 투자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금융투자회사가 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이 경우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배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일 것이냐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의사의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 위반의 경우, 대법원 판례는 환자측에서 선택의 기회를 잃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위자료”만을 청구하는 경우와 환자에게 결과적으로 발생한 “모든 손해”를 청구하는 경우로 각각 배상의 범위를 나누고 있으며, 그 입증책임의 정도도 구분하여 “모든 손해”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설명의무 위반과 피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환자측에서 입증해야 한다고 한다.

 

투자자에 대한 설명의무를 금융투자회사가 위반했을 경우도, 위와 같은 대법원판례의 이론이 그대로 적용될 지는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일응의 판단기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본시장통합법은 위와 같은 설명의무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안들을 규정하고 있다. 즉,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하기 전에 금융투자회사 직원은 투자자의 특성, 예컨대 투자목적, 현재의 재산상태, 과거의 투자 경험 등을 투자자에 대한 면담을 통해 파악할 것을 의무화 하고 있다(Know your customer rule).

 

또한 이렇게 파악된 투자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투자자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투자를 권유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적합성의 원칙(Suitability)도 규정하고 있다. 특히 투자자가 투자상담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금융투자회사 직원이 투자를 권유하는 행위(Unsolicited Call)도 규제의 대상이 된다.

 

물론 투자자 가운데도 투자위험의 분석능력이 우월한 전문투자자와 그렇지 못한 일반투자자가 존재 할 수 있는 바, 위와 같은 설명의무와 적합성의 원칙은 기관투자가와 같은 전문투자자에 대해서는 적용할 필요가 없고,  일반투자자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현재 현물시장을 규제하는 증권거래법과, 선물시장을 규제하는 선물거래법에서도 시세조종이나, 내부자거래등과 같은 투자자보호 규정이 있지만, 새로 시행될 자본시장통합법에서는 이를 보다 강화하여 체계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병원에 간 적이 있을 때, 벽에 “환자의 권리장전”이라는 공고문을 본 기억이 있다. 병원에서도 의사가 환자를 대면할 때, 자본시장통합법하에서 금융회사직원이 투자자를 대면할 때처럼, 환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 환자특성 파악, 특성에 맞는 치료방법 권유 등 환자보호를 위한 노력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 같다.

 

환자와 투자자, 그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각각 의사와 금융투자회사 직원과 흡족한 Communication을 통해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변호사와 고객의 관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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