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의 임기가 오는 10월 17일 만료된다. 그런데 후임 재판관 임명은커녕 추천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문형배 재판관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 사건 변론 준비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11월 12일 변론이 예정돼 있는데 헌법재판관 3명이 공석이 될 가능성이 있다.”, “6명이 남게 되면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변론을 열 수 없는데 이에 대한 청구인(국회)의 입장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심판을 청구한 것이 국회인데, 국회가 헌재 재판관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재판관 공석이 된 현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문형배 재판관은 이진숙 위원장 측 대리인에게도 ‘헌법은 법률의 상위인데 법률 때문에 헌법 절차가 침해되는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국회 몫인 차기 헌법재판관 3명의 선출 절차는 여야 공방으로 멈춰있다. 이번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 이종석 헌재 소장과 이영진, 김기영 재판관은 과거 각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당 추천으로 임명됐다. 원래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선출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당시 원내 교섭단체가 3개로 늘어나면서 3개당이 각각 재판관을 추천했다. 그런데 지금은 교섭단체가 민주당과 국민의힘 2개로 줄었다. 이런 경우 3명을 추천하게 되면 여당에서 1명, 야당에서 1명, 여야 합의로 1명을 추천하면 된다. 그런데 거대 야당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헌법재판관 퇴임이 채 열흘도 남지 않은 현재까지 후임 임명 절차가 꽉 막혀 버린 것이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이번에 이종석 소장 등 3명이 퇴임하면 아무런 심리도 할 수 없게 된다. 헌법재판관 임명에는 추천 절차 외에도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므로 지금 일찍 서둘러도 당분간 헌재 공백 사태는 불가피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재명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 위한 추천 절차를 진행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오히려 헌법재판소에 3명의 재판관을 공석으로 두어 헌재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 ‘이재명 정치’와 ‘이재명 방탄’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마비될 때 국회 의결만으로 얼마든지 탄핵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헌재가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하면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직무에 복귀할 수가 없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검사는 물론 판사까지 민주당 의원만으로 탄핵 의결을 밀어붙여 직무에서 배제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과 이재명은 보수 성향의 인사가 헌법재판관이 될 바에야 공석으로 두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봐야 한다.
묘한 것은 이 시점에서 좌파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전 서울대 교수 백낙청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아닌 ‘하야’를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백낙청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섣불리 시도할 때 노무현 시즌2가 될 수 있다고 보고 ‘탄핵’보다는 ‘하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민주당이 약한 고리라고 보는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등 국정 농단 프레임을 만들어 집중 공격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의 김대남 녹취록과 뉴스토마토 보도로 촉발된 명태균 폭로가 김건희 여사를 공격하기 위한 계획된 시도라는 것이다. 두 개의 폭로가 거의 동시에 11월 이재명 선고를 앞두고 나온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다. 섣불리 탄핵을 시도할 경우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 민주당과 이재명이 박근혜 대통령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탄핵이 아닌 하야를 노리면서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로 만들어 대통령 하야의 명분을 만들려 시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헌재 마비’도 ‘하야 요구’도 모두 비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다. 국민의 지탄을 크게 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재명이 사법리스크를 벗기 위해 비상식적 일을 벌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손에 달렸다. 국민의 각성한 민주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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