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의 로펌에서 근무하다가 이른바 익스팻으로서 도쿄에 왔다. 익스팻(expatriate)은 우리말로 주재원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 단어로는 더 폭넓게 쓰이기도 한다. 회사에서 해외로 파견한 임직원 외에도, 업무상의 이유로 비교적 짧거나 제한된 기간에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얼마 전 홍콩의 익스팻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원작의 드라마가 제작, 공개되기도 했다. 홍콩뿐 아니라 싱가포르, 도쿄 등 글로벌한 대도시에서는 익스팻이 많이 생활하고 있고 서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본국인 우리나라가 아니라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지에서 일하는 한국 출신 미국 변호사의 수가 꽤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익스팻으로서의 내 경험이 그리 특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뉴욕에서 도쿄로 이주할 때는 회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회사에 따라 또 포지션에 따라 다르지만, 리로케이션(이주) 패키지라 하여 새로운 근무지로의 항공편, 이사, 도착 후의 임시 거처와 집 찾기, 그 외의 생활 측면에서도 회사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안락함의 이면에는 어정쩡하게 외국에서 생활하는 데에서 오는 외로움도 수반된다. 그래서 익스팻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어울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정쩡한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도 없다. 근무지가 있는 도시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곳에서 정착할 것인가 아니면 본국이나 제3국으로 이주할 것인가를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결심해야 할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 결심은 오롯이 개인의 선호와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쿄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이곳에서 일본 관련 업무뿐 아니라 쉽게 서울을 오가며 한국 업무를 하면서 장기적으로 이곳에서 정착하여 업무를 계속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팬더믹 시기를 겪으면서 외국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딱히 눈에 보이는 고생을 한 것은 아니지만, 본국 방문을 했다가 실제로 살고 일하는 외국의 거처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던 시절이었다.
팬더믹이 수습되어 갈 때쯤(당시에는 알 방도가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싱가포르로 가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는 업무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난생처음 간 나라에서의 생활을 2주간 호텔 방에 격리되어 업무 파악을 하며 보냈고 이 생활도 녹록지 않겠구나 싶었다. 결국 반년도 못 버티고 도쿄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같은 익스팻 생활이라도 나와 맞는 곳,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꼈다.
어린 시절 ‘가요무대’를 보면 첫인사로 해외 근로자 여러분이라는 말이 꼭 들어갔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한국인의 외국 생활은 비교도 할 수 없이 안락해졌다. 관점에 따라서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다는 좀 느끼한 표현도 쓸 수 있겠지만, 익스팻은 건조하게 표현하자면 해외 근로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 생활을 선택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할 것이지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외 생활이 고되기는 하지만, 해외라서 보이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자격증을 따고 미국에서 일할지, 아니면 한국에서 일할지, 나처럼 제3국에서 일할지 하는 것은 다 선택의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내 선택에 온전히 책임을 지고, 또 질 수 있는가.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Herbert Smith Freehills’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