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 기념 학술대회 개최
법학부의 중요성 인정하나 로스쿨 우회로는 회의적
로스쿨 인가주의에서 준칙주의로 변경 필요성 제기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모두가 법학의 위기를 말한다.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을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해 양성하겠다며 출범한 로스쿨은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변호사시험 합격에만 치중하는 ‘변시학원’이 됐고 사법시험의 폐단 중 하나로 비판받던 ‘고시낭인’은 ‘변시낭인’, ‘오탈자’라는 이름으로 로스쿨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현행 로스쿨 제도가 ‘인가주의’를 채택하면서 법조인 양성 체계에서 배제된 법학부는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다. 법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줄고, 법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이 줄면서 법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문 후속 세대의 부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로스쿨 제도의 도입과 더불어 시작됐다.
한국법학교수회가 지난 6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다뤄진 모든 화두의 중심에도 로스쿨 제도가 놓여 있다. 수많은 법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AI 시대와 제도의 도입 취지를 고려한 로스쿨 교육 및 변호사시험 등 개선 방안, 학부 법학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학문 후속 세대의 양성 방안, 법학의 연구 및 발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법률저널은 학술대회에서 다뤄진 여러 논의 중 로스쿨 교육, 법학부 교육, 학문 후속 세대 양성 등 법학 교육에 관한 분야의 논의를 소개한다. 그 첫 번째는 로스쿨 교육에 관한 부분으로 ‘법률가 양성 교육에 대한 성찰’에 대한 주제 발표와 토론, 로스쿨 교육과 관련된 개회사, 기조 강연, 총론 강연 등을 통해 제시된 의견 등도 함께 다룬다.
“로스쿨 설치 대학에 법학부 폐지되면서 중고교생들의 법학과 진학 유인 사라져”
모두가 한목소리로 법학부가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우려하며 법학부의 역할과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홍식 한국법학교수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법조시장의 규모는 커진 데 반해 로스쿨 제도 도입 후 법학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우리나라 전체 법학과 수는 2023년 117개로 2009년 209개에 비해 반감했고 로스쿨이 설립되던 2008년 당시 만 명 이상이던 대학교 법학전공 입학정원은 2023년 3천 명 미만으로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학논문의 수와 법학박사학위 취득자도 마찬가지로 감소일로에 있으며 현재의 실무 중심 교육방식으로 인해 이 같은 추세는 심화할 것”이라며 “학문 후속세대 양성을 말할 것도 없고 학부 법학교육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우려했다.
조 회장은 “법학과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학부 법학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며 “학부 법학교육은 법학 전공자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시민을 위한 법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며 “우리 시민들이 법의 본석을 깨닫고 법적 사고양식을 공유한다면 ‘법의 지배’는 공고해질 것이며 그 중차대한 역할을 학부 법학교육이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은 한국법학교수회의 60주년 선언문에도 반영됐다. 한국법학교수회는 선언문을 통해 “학부 법학의 중요성이 재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로스쿨 체제 이후 학부 법학의 지위는 계속 약화돼 왔으나 법학교육의 공급이 큰 폭으로 축소된 현재 학부 법학의 독자적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며 “특히 학부 법학은 법적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의 양성을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며 학부 법학의 가치에 주목했다.
이처럼 법학부의 위기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에 대한 관점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제2주제 법학교육 파트의 3세션 ‘학부 법학교육의 위기와 대안’의 주제 발표를 맡은 안정빈 경남대 교수는 통폐합, 명칭 변경 등으로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법학과의 현실을 소개하며 그 원인으로 현행 로스쿨 제도가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에 법학부를 두지 못하도록 한 점을 꼽았다.
즉, 법학부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고교 시절부터 법학부에 진학하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생각이다. 그 예시로 안 교수는 로스쿨 설치 대학에도 법학부를 둘 수 있도록 하고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예비시험도 병행하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또 1년의 단기 로스쿨 코스로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주는 LLM 제도 및 온라인 로스쿨, 2년제 로스쿨, 예비시험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베이비 바 등 미국의 다양한 우회로, 4년제 법학과나 3년제 JD 과정 등을 운영하는 호주, 뉴질랜드의 사례 등도 법학부에 인재들을 유입할 수 있는 예시로 제시했다.
아울러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을 병행하는 것과 같이 로스쿨이 아닌 법학부를 졸업해도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주는 방안, 로스쿨 입시에서 법학 전공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4년제 법학부에서 기본법을 익히고 3년제 로스쿨에 진학해 실무과목을 배우도록 연계하는 방안, 법학부 졸업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에도 법학부를 둘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 등도 소개했다.
안 교수는 전국 25개 로스쿨에 총입학정원 2,000명으로 규모를 제한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현행 인가주의를 일정 수준의 설비와 역량을 갖춘 대학은 로스쿨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준칙주의로 변경할 것을 제안하며 준칙주의의 도입에는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증원과 관련해 협의가 선결 조건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법무부와 대한변협이 행사하고 있는 로스쿨에 대한 평가 규제, 시험 규제 권한을 교육부 산하 대학법학위원회로 이전해 변호사시험 출제와 합격률 결정 등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비시험 도입 및 법과대학·로스쿨 투트랙 등 방안은 로스쿨 제도 실패로 이어질 것”
안 교수가 소개한 법학부 위기 극복, 로스쿨과의 상생 방안의 다수는 법학부를 통해서도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내용으로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재윤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학부 법학과의 위기는 로스쿨 출범과 일정 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며 학령 인구 급감과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 현실 등을 지목했다.
김 교수는 “로스쿨 비설치 권역 법학부 졸업생에게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더라도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기초법은 법학부에서, 실무과목은 로스쿨에서 가르치도록 연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로스쿨 인가대학의 법학부 부활 및 예비시험 도입 방안에 대해서도 실효성은 낮고 사교육 의존도만 높아질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는 로스쿨 개혁과 학부 법학 교육의 위기 극복 대안에 관해 제시한 여러 의견들에 대해 “제도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한 그저 ‘논의를 위한 논의’ 혹은 ‘대안을 위한 대안’에 그칠 뿐”이라며 논의를 현실화할 수 있는 ‘공식적 기구’를 설립할 것을 촉구했다.
김 교수는 “로스쿨 개혁과 학부 법학과 교육 정상화를 단 하나라고 실천할 수 있는 공식적 기구, 가칭 ‘법학교육개혁추진위원회’를 조속히 출범시켜야 한다”며 “법학교육개혁추진위원회는 로스쿨을 대표하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와 한국 법학교수를 대표하는 한국법학교수회가 주축이 돼 구성돼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어 “법학교육개혁추진위원회는 그 동안의 논의와 대안을 종합해 우리나라 법학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식적 안을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법무부, 교육부, 대한변호사협회, 국회 등 관련 기관과 협의를 시작해 법률 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며 “올해 안에 이러한 공식 논의 기구가 출범하지 않는다면 법학교육의 암흑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석배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도 로스쿨의 우회로가 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예비시험에 대해서는 “수험기간 단축 및 수험료 절감, 경쟁률 높은 예비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취업에 유리하다는 인식 등으로 예비시험에 대거 몰리면서 사실상 로스쿨 제도를 무력화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예비시험을 도입하면 로스쿨 제도는 일본처럼 실패한 제도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과대학을 졸업한 학생과 로스쿨을 졸업한 학생이 같이 변호사시험을 보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을 병행하는 제도가 사실상 실패하고 대부분의 의학전문대학원이 문을 닫은 사례를 들며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로스쿨 설치 대학에 법학부를 부활해 학부에서는 기초법 등 이론교육을, 로스쿨에서는 실무교육을 하는 방안 역시 사법시험 제도로의 회귀나 마찬가지라며 부정적으로 봤다.
이 교수는 “로스쿨 제도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면 우선 로스쿨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시험 합격자 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평가로 전환해 일정 수준 이상이면 합격하도록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 교수가 제시한 법과대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 중 로스쿨 제도 안에서 고려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LLM 제도의 도입이다. 법과대학 졸업생들에게 굳이 같은 과목을 다시 수강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기 때문”이라며 “LLM 제도를 도입해 법과대학 졸업생이 1년간 실무과목을 포함해 30~35학점 정도를 이수하고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