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법학자와 문학가의 만남... ‘밤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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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법학자와 문학가의 만남... ‘밤은 깊었다’
  • 이성진 기자
  • 승인 2024.09.13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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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교수의 '나림 이병주' 문학연구서2

이 책은 시작부터 특이하다. 서문에도 제목을 붙이고(“필사 문학과 작품 제목에 관하여”) 다시 15개의 촘촘한 소제목으로 저술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3∼10쪽). 치열함이 느껴지는 일종의 약식 백서다. 저자가 그동안 발표한 수많은 법학 논문도 사실 유려하고 독특한 서문으로 유명하다. 필사문학도 그런 개성과 실험정신이 움직였을 것이다.

필사문학(筆寫文學)은 작품의 깊고 장중한 문장, 사소한 대화까지 세밀히 옮기면서도 전체 줄거리를 압축, 숨은 가치를 발견하고 분석하여 재탄생시키는 실험적 장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정절한 작업으로 분류한 원문을 작품 속 구도에 맞추는 전개 방식으로 이병주 작가의 글로 이병주 문학을 소개한다. 일반적 평론과는 다르므로 문학연구서라 이름 붙였다.

이 책에 소개된 6편의 작품은 내용이 세 영역에서 반복된다. 필사(筆寫)를 바탕으로 다른 각도에서 세 번 읽는 형식을 취했다. <해설>·<줄거리>·<문장과 낭독(어록)>이다. 해설과 줄거리로만 구성하거나 어록만으로는 이병주 작품세계를 알리기엔 부족한 때문이라 한다(서문, 7쪽).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작품 <해설>은 독후감이고, <줄거리>는 요약이며, <문장과 낭독>은 이병주 문장을 음미하는 시간이다.

이병주 문학을 좋아했던 독자들이라면 그 옛날 작품 속 분위기에 여러 감동으로 빠져들 수 있다. 6편의 각 줄거리를 아주 짧게 읽을 수 있도록 발췌된 문장만으로 따로 엮어 놓았고 문장과 낭독(작품 어록)에서 또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개된 문장들이 각 영역에 일부 반복되는 부분은 저자가 양해를 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병주 작가의 문장으로 이병주 문학을 말하고 싶었다 하니 나림 선생의 문장을 즐기며 작품을 만나 보시길 바란다. 원문을 선별하여 옮기는 작업은 땅속 문화재를 발굴하듯 정성 깊게 꼼꼼히 그리고 적절히 이루어졌다.
 

각 작품별 목차는 <작품 개요>, <작품 인물>, <작품 속 법>, <작품 현대 의미> 네 단락으로 나누었다(11∼493쪽). 책의 말미에는 다시 장문의 해제(解題)를 붙였다(495∼649쪽). 해제는 이병주 선생의 세계관, 인간관, 인생관, 법사상, 교육사상, 결론으로 구성했다. 모두 작품 속 문장이 중심이다. 결론(616∼649쪽)은 인간학이란 부제로 선생의 죽음철학과 예술관에 이르기까지 사유와 분석의 아포리즘을 담았다.

목차와 소제목이 많은 것은, 글을 요약하고 해설하며 논리적 해부를 반복해온 연구 관성 때문일 것이다. 1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 형식의 해제 부분은 그래서 이병주 문학 연구자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문학계의 연구 동향을 보면 최근 10년간 이병주 문학을 주제로 한 논문만 해도 수 십 여편에 이를 정도로 연구 열기는 높다. 이 책은 문학 전공자와는 다른 시각과 응원의 마음으로 여러 소재와 주제를 현재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의미 있는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 노발리스․이병주 (작품해제, 498쪽)

이병주 선생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노발리스(Novalis)의 저 멋진 문장이야말로 저자는 미학(美學)이라 한다. 그리고 저자의 방식으로 이병주 문학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함축했다.

나림 이병주 문학은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를 위한 변론요지서이다(작품해제, 648쪽).

저자가 발견한 이병주 문학의 핵심 가치는 근대와 인간이다. 헌법에서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로 발현된다(대한민국 헌법 제10조). 그 주제를 더 깊이 오늘로 데려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변론요지서로 표현되었다. 저자는 인간 존엄을 수호할 국가의 의무가 우리 헌법 제1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작품해제, 499쪽). 이 주장은 독일 헌법 역사를 근거로 대단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 책에 실린 여섯 작품은 이병주 문학의 핵심 가치를 통해 법학과 철학·교육·사회·역사학으로 연구되었다. 모두 모여 이병주 선생의 「인간학」이 되었다. 선생의 인간학은 법학으로 해석하고 옮길 수 없던 회한(懷恨)의 깊이를 장렬한 체험으로 담고 있다. 형사법을 가르치는 저자가 이병주 문학을 탐구하는 이유일 것이다.

법과 문학의 만남은 서울대 안경환 교수님이 개척한 길이다. 그 위대한 발자취를 저자는 존경하며 자신만의 길을 내고 나림 문학의 집을 짓는 노력을 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내면의 노력으로 지어 올린 가상의 집에서 나눈 두 사람의 대화이며 보고서다. 문학을 끊임없이 사랑하는 법학자의 삶과 이병주 작품세계의 만남은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은 그 답을 줄 것 같다.

책 날개에 소개된 이권기 교수님(이병주 선생의 장남)의 글에 따르면, 필사문학은 저자인 하태영 교수가 시도하였으며 2022년 저서 <밤이 깔렸다>가 제8회 <이병주 문학 연구상>을 받으며 그 노력을 인정받았다.

2024년 9월

김진기 (전 동아대 법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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