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성·전문성 동시에…로스쿨 출신 공직 진출 증가
행정-법률 겸비한 ‘슈퍼 커리어’ 쌓기 위해 로스쿨行
[법률저널=이상연 기자] 최근 5급 공채와 로스쿨 출신들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도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5급 공채나 법원행시, 입법고시에 합격하는가 하면, 5급 공채 수험생이나 현직 사무관들도 로스쿨 입시에 도전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 로스쿨 출신 인재들의 공직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5급 공채 법무행정직 수석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박진재 씨였다. 박 씨는 영국 명문 공립학교인 차터하우스 스쿨(Charterhouse School)과 옥스퍼드대(University of Oxford) 철학·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5급 공채 법무행정직에는 거의 매년 로스쿨 재학생이나 변호사 자격을 갖춘 이들이 합격하고 있다.
로스쿨 출신들은 법원행정처 공채(법원행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 법원행시 수석은 전북대 로스쿨 3학년 재학생인 윤찬우 씨가 차지했다. 입법고시 법제직 역시 로스쿨 출신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입법고시 법제직 합격자 중에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포함됐다.
이처럼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변호사시험으로 전환되면서 로스쿨 출신들은 다양한 공직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로스쿨 체제가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공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로펌 관계자는 “로펌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취업난이 가중되자 로스쿨 학생과 변호사들이 새로운 영역을 모색하게 됐다”며 “검찰, 법원은 물론 행정부처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법률가의 수요가 늘고 있어 이들에게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쿨 출신의 공직 도전, 그 이유는?
로스쿨 출신들이 5급 공채나 법원행시, 입법고시 등 공직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공직의 안정성과 신분보장을 들 수 있다.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로스쿨 졸업 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23년 공무원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의 평균 재직 기간은 14.2년에 달하며, 공직은 적지 않은 보수와 함께 정년이 보장되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또한, 공직을 통한 사회 기여와 보람을 꼽을 수 있다. 로스쿨에서 배운 전문 지식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활용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공직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공익 활동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가 공직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며 “전문성을 살려 공직에 일하며 사회정의 실현에 기여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경력 개발 기회도 한몫한다. 로스쿨 변호사들의 경우 아직 공직 경험이 부족한 편이다. 공채나 특채를 통해 공직에 입문함으로써 경력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다.
승진, 전문성 제고, 이직 등 로스쿨 학위가 가져다주는 실익을 추구하는 공직자들의 전략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슈퍼 관료’로 성장하고자 하는 야심 찬 공직자들에게 로스쿨은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온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로스쿨 출신 공무원들이 증가하면서 조직에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공직사회에 신선한 시각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들이 공직을 선택하는 데에는 변호사 시장의 불확실성이라는 ‘푸시 요인’이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경로를 통해 역량을 갖추고, 이를 공직에서 발휘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급변하는 정책 환경 속에서 법적 분쟁과 소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법학적 사고와 전문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 신선한 변화를 불어넣을 ‘법조 출신 관료’들의 활약상에 관심이 모아질 전망이다.
5급 공채 준비생, 사무관들의 로스쿨 진학 증가
5급 공채 수험생이나 사무관들의 로스쿨 진학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5급 공채 수험생들이나 사무관들도 로스쿨 입시에 도전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올해 5급 공채 2차시험을 마친 1차 합격생들의 다수가 2025학년도 법학적성시험(LEET)에도 응시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특히 정부 부처 A 사무관 역시 올해 법학적성시험에 응시해 최상위권의 성적을 얻어 서울대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서는 올해 초 5급 공채 출신의 사무관 3명이 롯그쿨 진학을 위해 공직을 떠났다. 비슷한 시기 금융위원회에서도 20대 사무관 2명과 주무관 1명이 한꺼번에 로스쿨행을 택했다.
이들이 로스쿨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전문성 확보와 직무역량 강화 목적이 크다. 로스쿨에서 법학 전문 교육을 받음으로써 행정 현장에서 필요한 법률 지식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책 입안이나 집행 과정에서 법적 쟁점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경력개발의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로스쿨 학위는 공직 내에서 승진이나 전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변호사 자격을 활용해 법무법인이나 기업 법무팀으로의 이직도 모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직에 대한 회의감도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과도한 업무량, 경직된 조직문화, 잦은 순환보직 등으로 공직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면서 이직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로스쿨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공직과 로스쿨의 선순환 기대
5급 공채와 로스쿨 출신들의 교차 진출은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공직과 법조계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두 영역의 전문성과 경쟁력이 상호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 입문을 통해 행정 현장을 경험한 로스쿨 변호사들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쿨에서 전문성을 쌓은 공직자들은 정책의 법적 타당성을 높이고 소송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과 로스쿨이 인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두 영역이 서로 자극하고 견인하면서 국가 발전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와 법조계가 개방과 소통의 자세로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이 같은 인재 교류의 선순환 구조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