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들이 도로 한복판을 점거하고 있고,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총격을 가하며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한다. 하늘 위로는 군용 헬기들이 굉음을 내며 도망가는 시민들을 쫓는다. 1980년 5월 비상계엄 하에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고 민주화가 되었다는 대한민국에서 다시 계엄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거대 야당의 수석 최고위원인 김민석 의원이 현 정권이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언급을 하고,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 힘 한동훈 대표와의 회담에서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며 박근혜 정부때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에서 작성한 계엄안에 대해서까지 언급하자 대통령실에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거짓 정치 공세”라며 반발했고,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도 줄줄이 비판 대열에 나서고 있다.
계엄이 선포되면 무력을 보유한 군이 직접 국민들을 상대로 치안을 담당하고, 영장제도, 표현의 자유 등 국민들의 기본권에 중대한 제한이 가해지며, 정부와 사법부의 권한 또한 군의 통제하에 놓여지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은 계엄 선포의 요건과 절차 등을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계엄선포권을 부여하면서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계엄법은 이를 구체화하여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경비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선포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만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헌법과 계엄법이 정하고 있는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님에도 정권유지나 비판세력 탄압 등을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하게 되면 어떤 법적 책임이 문제될 수 있을까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경우에 성립한다. ‘국헌을 문란할 목적’이란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형법 제91조).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고,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은 계엄사령관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되며, 계엄사령관은 특별조치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계엄이 해제되기 전까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기능이 소멸되고, 헌법기관의 권능행사가 불가능(판례는 사실상 상당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고 본다)하게 된다.
문제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는 경우 이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형식적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권한행사이므로 ‘국헌문란의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 우리 헌법과 계엄법은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을 엄격히 규정해놓고 있으므로 이러한 상황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정권유지 등을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그 권한을 남용하여 실질적으로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계엄이라는 강압적 수단을 통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국헌문란의 목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헌법을 유린하는 행위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내란죄를 범한 경우에는 재직 중이라도 불소추특권이 인정되지 않음을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범한 경우를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지만, 이처럼 계엄이라는 수단을 통한 내란죄 성립은 예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법원은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 라고 판단한바 있다.
한편, 판례는 계엄선포는 강압적 효과가 필연적으로 뒤따르고 그와 같은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행위가 되므로 이는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일부 군인들은 계엄을 수단으로 헌법 수호를 외치는 국민들을 무력으로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 후 오랫동안 군사독재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국군방첩사령관에 이어 국방부장관마저 대통령의 고교 동문으로 갑작스럽게 교체되자 야당을 중심으로 계엄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대통령실이나 여당의 주장처럼 근거없는 정치공세에 불과했으면 정말 좋겠다.
신종범 변호사/법무법인 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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