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로부터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한 대학병원의 관계자와 연락할 수 있냐는 전화였다. 아는 분이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할 인력이 없다고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다른 대학병원에 담당 의사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결국, 친지는 시간이 한참 지나도 연락처를 찾지 못했다. 환자가 큰 탈이 없기를 바랄 뿐, 참 무력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온통 걱정은 추석 연휴 기간에 아프면 어쩌나에 있다. 응급실 사태를 겪고 나니 그저 남 일 같지만 않다.
의대 증원이 불러온 일이다. 의대 증원 정책은 보는 입장에 따라 찬반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근간인 의료체계를 재편하면서 사회의견 수렴과 조정과정이 부족했던 것은 확실하다. 더구나 미래 인재 육성 차원에선 더 심각하다.
인적 자원이 핵심인 한국에서 미래 세대 교육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의대 증원은 향후 대한민국의 이과 분야 인재를 의료계에 몰아넣을 것이 자명하다. 현재 의료 관련 대학 정원수를 보자. 의대 3,058명, 치대 630명(2023년 기준), 한의대 800명(2023년 기준), 약대 1,743, 수의대 500명, 합산 6,731명이 된다. 여기에 2025년도부터 의대를 2천 명 늘리면 8,731명이 된다.
당연히 유능한 인재를 유능한 의사로 만들면 개인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조건을 더해서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대학 진학에서 이과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에듀플러스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수능을 본 학생들의 문과와 이과 비율은 63.9% vs. 36.1%였다. 그런데 2023년에는 50%로 증대했고, 2024년에는 52%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즉 직장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점차 이과로 몰리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둘째, 저출산으로 인해 한 해 출생아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1969년에서 1971년에 태어난 세대처럼 한 해 출생아가 100만 명이 넘을 때 의료계 9,000명은 크게 부담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2023년 출생아는 23만 명이다. 이들이 모두 대학에 가지 않는다. 2023년도 대학진학률 68.7%를 대입해보면 20년 뒤 대학에 갈 한국에서 태어난 학생 수는 158,000명이다. 장기적으로 60%쯤 이과를 간다고 하면 94,800명이 이과에 입학한다. 그중 10% 정도 되는 9천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의과 계열에 몰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치대와 약대와 수의대에선 의대를 가기 위한 휴학이나 자퇴를 선택할 것이고, 다른 이과 계열에서도 의대 재수나 삼수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결론. 한국의 우수한 두뇌는 대체로 의대만 바라볼 것이다.
이런 시장 논리가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다. 미래 직업 시장에서 더 높은 수익과 안정적인 전문직을 찾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그럼 이걸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교육 시장은 발 빠른 부모들과 미래가 불안한 학생들이 시장 논리대로 움직인다. 다만 정부가 어떤 제도를 만드는지에 따라 미래 기대치는 변화한다. 그래서 정부가 있는 것이다.
현 정부는 유럽과 비교해 한국 의사 수가 부족하고, 성형 등 특정 분야에 의사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지역 의료체계가 너무 약화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곤 의사 증원이란 미래 신호를 보낸 것이다. 정부 의도 대로 정책 결과가 특정 분야 편중완화와 지역 의료체계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정말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 높은 소득과 전문직으로서의 안정성을 원하는 미래 의사들은 현재 의사들과 다를까! 의사로서 공적 가치가 이들이 돈도 안 되고 의료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분야로 뛰어들게 할까! 서울과 대도시에서의 다양한 편익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 의사의 가족들도 모두 동의할까!
지금 의사와 미래 의사를 별개로 보는 가정은 기본적으로 자기모순이다. 인간의 이익 동기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교육이 중간에 공적가치를 강화해주기를 바랄지 모른다. 하지만 학원이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공교육기관에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만에 하나 2,000명쯤 늘리면 그중에는 기대하는 의사가 몇 명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라면, 이는 최악이다. 돈 안 되는 분야와 지역의료를 잔여(residual)처럼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현재 정부와 의사단체의 강경책으로 누가 어떤 이익을 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환자들은 길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고 있다. 이 정도면 결단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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