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일이다. 패권국 미국의 최고 권력자 자리는 미국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특히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안보 차원이다. 1년이 되어 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2년 6개월이 지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연차를 헤아리기 어려운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 1993년 위기부터 30년이 넘은 북한 핵 문제 등등. 차기 미국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선택하는지에 영향을 받을 사안들이 줄줄이 있다.
둘째, 경제 차원이다. 어느 선에서 보호주의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시 당선되면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10% 이상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며 상대방이 관세를 부과하는 ‘트럼프 상호무역법’을 제시했다. 평균 관세율이 비농산물 15.7%에서 농산물 19.5%(2016년 외교부 통계)인 한국은 3.5%의 평균 관세율의 미국을 상대할 때 큰 부담이 될 것이 명확하다. 한국이 관세를 내리든 미국이 관세를 올리든.
문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대놓고 외쳤던 트럼프 전 대통령만 보호주의를 사용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도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 법을 통해 보호주의를 사용해왔다. 새로 등장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도 보호주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 누가 되느냐에 따라 경중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미국인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보호주의 기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패권국가 미국은 ‘관대(benign)’하기보다는 ‘악의적(malign)’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국제경제학자 킨들버거(C. Kindleberger)가 상정한 패권 국가는 다분히 ‘관대’하다. 하지만 국제정치경제학자 길핀(R. Gilpin)이 상정한 패권 국가는 악의적인데, 자국 이익이 가장 우선이며 필요한 경우 다른 국가들의 팔을 비틀어댄다. 지금의 미국에서 킨들버거보다 길핀이 더 잘 보인다.
미국은 왜 관대하기보다 자기 이익 중심으로 바뀌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세 가지로 가능하다. 첫째, 국제관계 차원이다. 중국이란 도전자의 국력 상승과 미국의 대응이다. 중국의 국력은 GDP나 GNP로 하면 미국의 80%에 육박할 정도까지 성장했다. 그런데 국제정치학에서는 좀 더 체계적인 분석에 사용하는 SBS 척도 혹은 CINC(Composite Index of National Capability) 척도가 있다. 군사력, 경제력, 인구의 3분야에서 6개의 지표를 활용해서 측정하는 것이다. 철강생산량과 에너지 소비량과 전체 인구수와 군인 수를 대입하기 때문에 이 지표상에서 중국은 이미 1996년 미국을 따라잡은 패권 국가다. 어떤 지표로 측정하는지와 관계없이 중국이 미국에 괄목할 수 있는 경쟁자가 된 것은 확실하다. 즉 패권경쟁이다.
둘째, 이익집단 정치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Rust-Belt라는 제조업이 붕괴한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몰표를 받으면서 당선되었다. 자유무역으로 패권이 된 미국에서 보호주의자들이 트럼프라는 정치 국외자(outsider)를 선택한 것이다. 이후 미국의 양대 정당은 소비자로서 미국인만이 아니라 무너진 제조업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바꿨다. 정당 양극화와 경합 주(swing state)가 늘면서 제조업과 이익집단의 이익을 무시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즉 미국 선거 정치의 구도 변화가 주된 원인이다.
셋째, 미국인들의 가치관에도 변화가 점진적으로 생기고 있는 듯하다. 1776년 독립 이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상징해왔다. 그런데 미국의 정체성이었던 이 가치들이 점차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보편주의적인 미국적 가치가 이익 중심의 가치에 의해 점차 희석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선거 구호가 유권자의 가치를 반영한다면 말이다.
세 가지 중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세 번째다. 미국이 더는 관대한 패권이기를 거부하면 국제질서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우리는 반도체를 얼마나 더 규제받을까보다 더 암울한 국제질서를 맞이할 수도 있다. 가령 해양수송로 안보에서 미국의 역할을 조금만 줄인다고 가정해보자. 이번 미국 선거가 더 신경이 쓰이는 이유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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