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전문변호사가 이혼의 당사자가 되는 드라마. 현직 변호사가 쓴 법조물이라 해서 관심 갖고 아내와 본방을 챙긴다. 내겐, 주인공의 열연보다 주인공이 내뱉는 말 즉 대본이 관심사다. 연기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내용인지가 더 중요해서다. 실화라면 더욱 그렇다. 상간녀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중재 자리의 대화가 실감났다. 돈을 주기 싫은 피고소인과 사과를 받고 싶은 고소인. 이 둘을 능숙한 이혼전문변호사가 중재한다. 결론은, 억지사과 반쪽사과 시늉사과. 특히 고소인은, 뻔히 진심의 사과가 아닌 걸 알지만, 가해자가 사과의 모양새라도 갖춰 주길 바랐는데, 이는 보상심리로 읽힌다. “쫄딱 망하게, 빈털터리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다.” 유책 배우자에게 상처받은 고소인의 흔한 심리라는데, 이혼에 등 떠밀린 주인공도 그 심정을 통감한다. 당사자가 돼 보니까.
가장 최근의 감정평가는, 서울 H재개발구역의 재결평가였다. 현금청산자의 재산 혹은 영업장이고, 이미 한 번 평가돼 협의의 과정을 거쳤으나 청산자 쪽에서 조합이 내민 협의금액을 차 버렸다. 시간 끌면 평가자 바뀌면 더 받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은 없어 보였고, 쓸 수 있는 카드를 한 번 써 봤다는 인상이 짙었다. 주택소유자는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현장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더니 ‘더 받고 싶다’는 바람 외에 딱히 시간을 끈 사유는 없었다. 토지가격에 이견은 많아도 물건 가격은 다툼이 덜한데, 인색한 가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소유자도 건물 가격이 넉넉하다는 인식은 갖고 있다.
영업장은 식자재 납품 업체였는데, 영업개시 시점이 문제였다. 보상에서는 개시일을 칼같이 챙긴다. 자격의 문제여서다. 바이케이트를 쳐 놨는데 들어온 사람은 빈손으로 나가는 게 당연. 법을 잘 모른다는 변명하기 힘든 게, 임대차계약 당시 임대인 및 중개사를 통해 향후 어떤 보상도 없을 것으로 전달받고 계약서 특약에도 ‘아무 보상 요구 하지 않고 나가겠다’ 기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협의하지 않고 재결까지 온 건, 정말 혹시나 해서다. 두 건 모두, 협의금액에서 증액할 사유를 발견하지 못해 동결 수준으로 발송했다. 호소할 내용에 설득력이 없는 만큼 보상심리도 크지 않아 보였다.
경기도 인근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곳도 방문했다. 산업단지 개발은, 산업단지 지정을 위한 동의서 징구, 협의매매, 지구지정, 보상계획공고, 협의보상 및 수용재결 등의 과정을 거친다. 공장용지로 바뀔 땅의 현재는 저밀이용이어야 한다. 가격이 낮은 토지를 취득해야 개발실익이 있으니까. 특히 농림지역 농업진흥구역에 속한 농경지가 후보지다. 토지소유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산단 조성을 계획하고 있어 댁의 토지를 취득하고 싶다는 우편을 보내고 접촉을 시도한다. 매입제안 가격은 분명 현 시가를 상회한다. 이 제안을 받은 토지주 마음이 양분된다.
‘농업진흥구역이잖아. 농경지 인생이 끝없이 펼쳐질 땅. 이 가격에 팔 수 있는 기회가 오겠어? 욕심내지 말고 잘 생각해.’
‘산업단지를 만든다잖아. 내 땅이 공장부지가 된다고. 이 큰 사업을 하는데 투자금액이 한두 푼이겠어? 조금 더 준다고 티도 안 날 걸. 욕심 좀 내면 어때. 급할 거 없어.’
특히 후자의 마음은, 합의에 의한 매매를 거절해도 협의보상과 재결단계가 더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굳건해진다. 사업자가 벌어들일 수익 중 일부를 나눠달라는 요구인데도 떳떳해진다. 단지 중앙에 떡하니 있는 땅이라서, 오래 농사를 지어왔던 토박이라서, 다른 토지주에게도 같이 팔자고 얘기할 수 있는 빅마우스라서 등등. 보상심리를 지탱해 줄 사유 만들기는 쉽다.
보상평가에서 소유자들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 ‘소유자추천평가사’는 법조계에서의 비싼 변호사, 전관과 유사한 향기를 내뿜으며 홍보한다고 들었다. 소유자들을 만족시킨 타 사업장의 전력을 부각하면서. 핵심은 보상심리를 잘 파고들어가는 것이리라. 다만, 적정한 수준에서 제어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내가 토지주라도 그런 화려한 전력을 지닌 사람이 나서주면 마음은 든든하다.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결국 어느 정도의 보상심리를 만족시켜주는 선에서 정리해 줄 게 기대돼서다.
아직 이혼전문변호사의 이혼행보 결론을 예상할 수 없지만, 그녀의 최종 결론이 보상심리로 기울 것 같지는 않다. 시작은 가해자에 대한 응징과 그로 인한 심리적 보상이었겠지만, 자녀 위한 최선의 길을 모색하는 아름다운 결론이지 않을까. 보상심리는 필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
이용훈
㈜대화감정평가법인 파트너 감정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