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임용을 앞둔 예비 사무관들 앞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나 역시 외교안보연구원(현 외교안보연구소)에서 비슷하게 임용 전 연수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면 대단히 영광스러운 기회였고 공무원을 그만두고 공무원분들 앞에 섰다는 데에서 오는 개인적 감회도 새로웠다. 그러나 300여 명에 가까운 청중과 유튜브 촬영 카메라 앞에서 4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혼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쾌-불쾌의 스펙트럼으로 생각하면 긴장, 걱정 때문에 불쾌에 가까운 체험이었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자신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난다(stepping out of one’s comfort zone)는 영어 표현을 쓴다.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 같다고 생각했다.
안전지대 안에만 있어서는 성장도 없다
아무리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익숙한 일이 쉽고 가까운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안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업무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도, 직접 실무를 하면서 그 일을 배울 때의 노력 대비 효과를 따라갈 수 없다. 나의 업무 기준으로 말하자면 예측 못 했던 상황, 그 과정의 클라이언트와 혹은 팀 내 커뮤니케이션 등을 포함해서 정형화된 트레이닝으로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그래서 더더욱 늘 해서 익숙한 업무만 아니라 이제껏 해 보지 않은 일을 하고 거기에 따르는 배움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변호사가 직면하는 딜레마
아무리 본인이 안전지대 밖으로 나갈 결심이 서 있더라도, 전문가로서 내 시간에 돈을 지불하고 내 서비스를 찾는 클라이언트의 존재를 생각하면 업무를 자유로운 배움의 기회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주니어 변호사 시절에는 클라이언트도 완벽한 전문가를 기대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새로운 업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비싼 시간당 비용을 지불하면서 변호사에게 새 업무에 대해 훈련을 시켜주는 것이 클라이언트의 일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답은, 내가 해 온 업무, 잘할 수 있는 업무에 대해 클라이언트와 충분하게 소통하고 기회가 있으면 전문 분야에 인접한 분야에 경험을 쌓는 것이다. 최근에 새로 맡게 된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이 케이스인데, 클라이언트 역시 해당 사실관계 자체가 굉장히 드물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나를 비롯한 우리 팀의 구성과 업무 경험을 이해한 후 업무를 맡겨 주었고, 나는 평소에 하던 일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지만, 새로운 부분이 있는 업무를 하면서 배우고 있다.
관건은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것
나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남으로써 (바꾸어 말하자면 나의 안전지대를 확장함으로써) 전문가로서 성장을 계속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항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분야만을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안전지대를 확장해 나가는 노력을 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일본 일간신문에도 연일 게재되던, 법적으로도 난해한 안건의 업무를 1년 반 가까이 도운 적이 있다. 업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나뿐만 아니라 팀 구성원 대부분이 심한 번아웃(burnout) 증후군을 겪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서비스 제공자인 이상, 100% 업무를 골라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내 몸과 정신을 지나치게 혹사하지 않는 것도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하는 비결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Herbert Smith Freehills’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