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하루 2시간 이상 운전을 한다. 3년째다. 첫째가 반수했고 둘째와 2년 터울이어서, 이 기간은 오롯이 고3 학부모로 살아간 시기다. 딸 등하교 길은 출퇴근 차량이 많은 경로다. 아침저녁 기사 노릇 제대로 하고 있다. 올해 수험생활을 끝내도록 둘째를 격려하곤 하는데, 다분히 중의적이다. 제발, 엄마가 올해 말 핸들을 내려놓게 해 줘, 약간의 협박이 숨어 있다. 최근, 등굣길 마치고 귀가 중 트럭이 아내 차 옆구리를 받았다. 끼어들기가 명백해 대물 100%에는 이의가 없는데, 저쪽에서 대인 접수를 안 해 준단다. 차량손실은 떠안겠지만 운전자 피해는 없다고 주장한다는데, 아내는 충격으로 목과 어깨가 굳었다. 최소한 물리치료비용은 지원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가해자 가족이 탄 차의 옆면 전체가 이렇게 일그러졌어도 똑같은 입장일지.
손해가 어느 정도야? 물을 때는 손해의 정도를 파악하려는 물음일 텐데, 그보다 앞선 전제는 과연 손해가 있느냐다. 대인 피해도 골절 등 외상이 뚜렷하면 다툼이 적을 것이다. 그런데, 교통사고 후유증은 표시는 안 나면서 가늘고 길게 간다. 토지는 어떨까? 특히 갑자기 강제로 분할된 토지라면. 재산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객관적으로 입증되면 그 손실은 보상 대상이다. 잘려 남은 토지를 잔여지, 그 토지에 발생한 재산상 손실을 가치하락으로 부른다. 잔여지의 가치하락을 보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손실만 증명하면 받아낼 수 있다. 사인의 행위로 인했으면 손해배상 영역이었을 텐데, 공익사업에 의한 피해라서 가치하락 손실보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손실보상 첫 출발은 가치하락의 정도를 판단한 감정평가사의 보상평가서다.
잔여지의 가치하락은 공익사업으로 촉발됐고 공익사업 전·후 물리적 측면의 변동이 잔여지의 가격을 감소시켰다. 사업시행 손실과 가치하락은 같은 면을 보고 있다. 이 말은 가격이 감소하지 않았다면 손실을 논할 필요성이 없다는 해석을 낳는다. 손실만 있을까. 가격이 증가하는 변화도 있다. 공익사업으로 조성된 도로개설이 대표적이다. 잘려 나간 토지 위에 조성된 새 도로가 잔여지에 선물이 된다. 마치 손을 자르고 몸통이 건강해진 것처럼.
잔여지 가격이 증가했어도 원치 않는 강제 분할이 있었으므로 100% 수혜로 보긴 어렵다. 그러나 그 주변에는 전적으로 수혜만 입는, 정(+)의 외부효과를 만끽하는 토지들도 있다. 공익사업에 의해 신체 어느 곳도 잘려나가지 않은 온전한 토지로서 잔여지와 나란히 이 새 도로에 접하게 된 토지들이다. 공익사업 전·후 가격이 증가한 녀석들이다. 어쨌든 이런 토지들과 함께 잔여지의 가격이 증가했을 때, 약삭빠른 사업시행자가 이런 궁리를 할 수 있다. “새 도로로 인해 잔여지의 가격이 상승했으니까 그 상승분을 빼는 식으로 보상금 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잘려나간 토지의 보상금을 지급할 때 에누리하겠다는 얌체 짓이다. 이런 행태를 원천 차단하려고, 토지보상법 66조에서 ‘사업시행 이익과의 상계금지’ 원칙을 명확히 했다. 사업시행자는 동일한 소유자에게 속하는 일단(一團)의 토지의 일부를 취득하거나 사용하는 경우 해당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잔여지(殘餘地)의 가격이 증가하거나 그 밖의 이익이 발생한 경우에도 그 이익을 그 취득 또는 사용으로 인한 손실과 상계(相計)할 수 없도록.
이를 형평의 측면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사업시행 이익은 새 도로로 인한, 잔여지를 비롯한 그 주변 토지들의 가격 상승분을 가리킨다. 가만히 앉아 새 도로를 선물로 받은 주변 토지들에 당장 소득세, 법인세, 개발부담금을 부과할 수는 없다. 실현된 소득도 아니고 허가등에 의한 정식 개발도 아니지 않는가. 후일 높은 가격에 팔면 양도세로 일부 회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 누린 불로소득은 그냥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더더욱 일부 신체가 잘려 나가고 남은 잔여지가 받은 선물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 따라서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불로소득을 운운하지 않는 것이 형평이다. 사업시행이익 상계금지 원칙은 잔여지에서만 유의미하다. 지급받을 보상금이 있다는 전제여야 상계가 성립되므로.
정리하면 이렇다. 사업시행이익 상계금지 원칙은 잘려나간 토지의 보상금을 지급할 때 잔여지의 가격상승분에 손을 대지 말라. 잔여지 가치하락 보상은 공익사업 전·후 잔여지의 가격 변동 중에서 가격 감소의 사례에만 적용해라. 가치하락 보상은 사업시행 손실과 한 묶음. 그런데 골치 아픈 사례는 항상 있기 마련. 사업시행 이익도 있고 사업시행 손실도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익이 손실을 상회할 때와 그 반대로 손실이 이익보다 클 때, 가치하락 판단이 과연 달라질까? (2편에서 계속)
이용훈
㈜대화감정평가법인 파트너 감정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