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존 룰즈(John Rawls)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대통령제가 바람직한지 한 가지 사고실험을 해보자. 단 몇 가지 가정이 있다. 첫째,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부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둘째,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손대지 않고 우리는 정부형태 2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셋째, 대통령제와 내각제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넷째, 불편부당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개인적 선호, 보유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작동하지 않게 ‘무지의 베일’이라는 조건도 작동한다. 마지막 조건은 합리성을 가진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좀 더 나은 특정 제도를 선택할 것을 보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제도 특성과 제도 운영방식에 따른 장단점을 최대한 단순화해볼 것이다. 그럼 대통령제는 선택할만한가?
첫째, 대통령제는 대통령이라는 개인을 보고 표를 던지는 ‘인지성(identification)’이 작동한다. 이는 정부를 사람처럼 형상화한다.
둘째, 당선자 결정방식에서 한 표라도 더 받으면 당선되는 ‘상대 다수제’를 사용하면 권력의 향배는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의 13대 대선에서 36.64%로 당선된 노태우 후보가 유명하다. 하지만 14대 대선(41.96%), 15대 대선(40.27%), 19대 대선(41.08%)도 다자경쟁과 낮은 득표율 당선을 보여준다. 득표율이 48% 이상인 경우는 한국정당이 양당제로 바뀌게 된 2000년대 이후인 16대, 17대, 18대, 20대 대선뿐이다.
셋째, 대선은 선거구가 전국이다. 따라서 대선을 통해 전국적인 이슈나 사회적 갈등을 반영할 수 있다. 반면 국회의원선거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 대통령은 전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국회에 대해 자신만이 전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넷째, 대통령제는 국민의 주권을 두 개로 구분해서 행사하도록 한다. 즉 주권자인 인민은 하나의 주권으로 의회를 선택하면서 다른 주권으로는 대통령도 선출한다. 이원적 주권이론이란 사회계약론의 시조인 토머스 홉스나 인민 주권론자 장 자크 루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주권자가 생각을 달리해서 의회와 대통령을 각기 다른 이(후에는 정당)로 선택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나! 게다가 두 기관의 권력 운영 입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의회와 대통령 중 어떤 선택을 한 주권자의 의사를 따라야 할지 알 수 없다. 반면, 정치를 스포츠 경기처럼 ‘죽이지 않는 전쟁’으로 보면 대통령과 의회 두 번의 선택도 흥미를 유지하기 좋다.
그런데 대통령제는 단점도 명확하다. 의원내각제와 비교해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첫째, 인적인 통치로 인해 개인적 요인에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대통령제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공동체를 위해 공평무사해야 한다. 공화국의 시민답게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아야 한다. 반면 내각제는 정당이란 제도가 운영기반이다. 수상의 리더십은 정당을 기반으로 하지만, 대통령의 리더십은 정당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인품이나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대통령에 대한 한없는 믿음은 대통령제의 기원인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기인한다. 그는 독립전쟁의 총사령관으로서 전쟁 영웅이자 지도자였다.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했다. 그는 로마 공화정의 시민적 탁월함을 보였다.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었기에 사적인 이익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국가들의 대통령제 운용은 어떤가!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대통령의 가족들에 의한 부패 스캔들마저 터진다.
둘째, 제도 내에 모순이 많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으로만 선출되지만, 국가 원수의 기능도 수행한다. 국가원수 선출투표를 한 적이 없지만, 대통령은 전 국민을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 내각제에서 국가원수를 따로 두어 수상의 역할에 제한을 두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의회 다수당과 대통령이 다른 분점 정부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어떤 위임을 우선할지도 막연하다. 이에 더해 제도적인 측면과 리더십이라는 운영 측면이 꼬이는 경우도 많다.
자 이제 처음 정부형태 선택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대통령제를 선택해야 할까? 이쯤에서 다른 공동체는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로버트 달은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에서 1950년대 이래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를 유지한 국가가 총 22개라고 선별했다. 그런데 미국처럼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헌법상 중요 권한을 갖는 대통령제 국가는 미국 혼자뿐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주의를 70년 이상 지속해온 나머지 21개 국가가 대통령제를 선택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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