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는 오늘도 혼란스럽다. 많은 정치인이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우후죽순 나타나지만 도통 미덥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과연 어떤 정치를 하려 하는가? 어떤 정치 철학을 갖고 있는가?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비전이 있는가? 그것을 실현할 지도력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오늘날 정치인들은 저마다 국민을 입에 올리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국민은 없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권력욕을 채워줄 피지배자로서의 국민만 있을 뿐이다.
정치지도자는 국가가 어려울 때, 국민이 어려울 때 이를 타개할 출구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지도자의 예를 미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11년 29세에 뉴욕 주지사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고 대공황 시기에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 12년간 미국을 통치했다. 그동안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의 터널을나와 미국이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고 이후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 최강국 미국의 토대를 놓았다.
그러면 루스벨트의 어떤 조건이 그런 업적을 이루게 했는가? 무엇보다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과 ‘실천력’이다. 정치·경제의 출구 전략이 절실한 오늘 우리는 루스벨트에게서 바로 이러한 전략과 실천력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성공비법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정파의 힘까지 끌어모아 하나로 빚어내는 능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설득’과 ‘통합’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정파의 주장이나 각 주 정부의 의견을 다채롭게 수용하고 끊임없이 설득했다. 그는 또 통합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런 소통과 화합의 기반 위에 약자를 위한 개혁정책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당시 그가 서민의 편에서 입안한 개혁정책은 미국의 불황 타개책을 넘어 세계 민주사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국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되 정치적 시선을 사회적 약자에게로 돌림으로써 평등과 복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루스벨트는 대공황기에는 대내적 협동을 통해 강한 미국을 만들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세계 여러 나라와의 대외적 협력을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정립했다.
루스벨트에게서 눈에 띄는 것은 ‘견고성’과 ‘유연성’으로 대변되는 그의 정치 철학이다. 그에게서 ‘방법은 바뀌어도 비전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목표의 견고성과 방법적 유연성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는 국정운영과 통치 스타일에서도 다원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는 공황이라는 시대와 전시라는 상황에 맞춰 방법을 바꾸고 자신의 주장과 정책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나갔다. 이것은 그가 철저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신봉자라는 것을 말해 준다. 게다가 그는 밝고 낙천적인 성격과 강한 인내심 그리고 뛰어난 자질을 가진 인간이었다. 루스벨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적이고 위기의 순간마다 놀라운 의지를 발휘했다. 39세에 갑작스레 찾아온 소아마비는 그를 평생 장애인으로 만들었지만, 루스벨트는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했다. 위기의 대공황기에는 뉴딜정책으로 경제를 살리고, 위기의 2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 지휘관으로서 자유 사회를 구했다. 이후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잡았고 오늘날 초강대국이 되었다.
루스벨트는 험난한 정치 여정 속에서 수많은 성공을 거두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가 정치에서 소외된 각계각층의 국민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면서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국민은 그에게 절대적 신뢰를 보냈다. 우리는 ‘기적은 일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교훈을 루스벨트에서 얻게 된다. 국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감동을 주며 기적을 만들어 낸 루스벨트의 위대한 정치 행적을 오늘 우리 정치지도자가 부디 배우고 본받기를 기대해 본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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