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과대학교수회·한국법학교수회 공동 학술회의’ 개최
로스쿨 설립 준칙주의·예비시험 도입·법학부 부활 등 논의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법학 교육의 패러다임 변환을 위해 도입된 로스쿨이 16년차를 맞이한 가운데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을 배출함으로써 법치주의를 실현한다는 당초의 취지를 살리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 반성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로스쿨 도입으로 법조인 배출 규모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변호사시험 합격을 중심으로 로스쿨 교육이 이뤄지면서 로스쿨의 고시학원화, 변호사시험 낭인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한 대학에서는 법학부가 존폐의 기로에 놓이면서 학문 후속 세대의 단절, 학문으로서의 법학 고사 등이 우려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국법과대학교수회와 한국법학교수회가 ‘법학교육과 법치주의의 위기 극복과 미래-대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지난 5일 유네스코 회관에서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제1회의에서는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가 ‘OECD 기준에 근거한 적정 법조인 수와 교육을 통한 법조인의 양성방안’에 대해, 양만식 단국대 법대 교수가 ‘일본 로스쿨 개혁과 한국에의 시사점’에 대해, 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이 ‘학부 법학교육의 위기 극복 및 민주적 법치를 위한 법조인 수요 충족 방안’에 대해 주제 발표를 했다. 토론자로는 홍선기 동국대 법대 교수와 고철웅 한남대 법무법학과장,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장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제2회의는 ‘학부 법학교육의 위기와 극복방안’과 ‘원로 선배의 제언’을 주제로 진행됐으며 강봉석 홍익대 법대 학장, 김상균 청주대 법학과 교수, 김현철 이화여대 로스쿨 원장, 안수길 명지대 법대 교수, 한지영 조선대 법사회대 학장, 허명국 한림대 법학과장, 안정빈 경남대 법학과장, 윤태영 아주대 로스쿨 교수, 홍복기 연세대 로스쿨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명예교수, 이은기 전 서강대 로스쿨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다뤄진 여러 의견들은 법조인 배출 규모 및 양성 방식 등을 종합한 ①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 방안과 위기에 놓인 법학부의 활로를 모색하는 ② 법학부 생존·발전 방안 등에 관한 논의로 나눠 소개하도록 한다.
“현재의 로스쿨은 독과점 체제, 기준 충족하는 대학에 로스쿨 설립·운영 허용해야”
장용근 교수는 OECD 주요 국가의 변호사 수 조사 등 변호사의 적정 수급 규모에 관한 여러 자료를 소개하며 수요에 맞춘 공급이라는 인식을 벗어난 관점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는 어느 정도가 수급 상황에 맞는 적절한 규모인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 로스쿨의 인가주의와 총입학정원제를 통해 법조 인력의 배출 규모를 조절하는 것은 진입장벽을 만들어 대국민 서비스의 향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장 교수는 “미래의 적정한 숫자를 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며 추정치”라며 “이를 제대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개업을 포기하고 다른 업종으로 가거나 로스쿨이 인허가를 자진 철회하는 시장 자체적인 자연도태 현상이 발생할 때까지는 충분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률시장은 아직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단계이기에 변협의 공급 과잉 주장은 설득력이 줄어든다”며 “이는 단지 개인의 수입이 예전에 비해 쉽게 벌어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국민의 수요는 고려하지 않은 채 직역중심주의적 사고에 그친 것이다. 일정 과정을 거쳤다고 당연히 일정 수입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앞으로의 검증이 필요하지만 2500명에서 3000명 수준의 지속적인 법조인 증원 후 법률시장의 규모 감소와 국민의 법률 소비 기회의 만족도를 고려해 유지, 감원, 증원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과잉 배출로 인한 위험에 관해서는 “미국 등 선진국은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험만으로 이를 제한하기보다는 윤리강령이나 변호사의 강력한 책임 등으로 통제하고 있고 오히려 다수의 배출이 자율적인 정제적 효과를 보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법조인 증원의 필요성을 전제로 장 교수는 법조인 양성에 있어서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현재의 로스쿨은 높은 진입장벽과 국가 주도의 독과점 체제, 변호사시험을 통한 숫자의 통제라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와 더불어 요건을 갖춘 곳은 로스쿨을 운영하고 역량이 부족하다면 반납할 수 있도록 하는 준칙주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게 장 교수의 판단이다.
한지영 학장도 로스쿨의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로스쿨 설치 인가와 관련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소개하며 “제대로 된 로스쿨 평가가 이뤄지고 헌재가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새로운 대학들이 로스쿨 설치 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로스쿨은 교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평가의 주체가 교육부가 아니라 변호사 숫자에 긴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변협이라는 점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며 “3년 또는 5년마다 교육부의 엄정한 평가를 통해 입학정원을 재배정하고 신규로 로스쿨에 들어오려는 대학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봉석 학장도 원칙적으로는 준칙주의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봤다. 다만 “근본적인 대책은 현재의 로스쿨을 준칙주의에 입각한 미국식 로스쿨 제도로 개편하는 것이나 이 방안은 기존 법조 기득권층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며 “현실적인 대안은 일본의 경우처럼 로스쿨과 학부 법대가 병존하는 체제에서 예비시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로스쿨 제도로 개편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법학부 졸업자의 법조 실무가 진출 막아서는 안 돼”…“대안은 예비시험? 야간 로스쿨?”
예비시험을 도입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양만식 교수는 최근 일본의 로스쿨 개혁 방향에 대해 살핀 후 “한국의 로스쿨 제도는 몇 개의 대학에 설치해 법조인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공정성과 형평성을 박탈하고 기회균등을 상실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양 교수는 “법조로 진출하려는 모든 사람이 응시해 합격자에게 로스쿨 수료자와 동등한 자격으로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변호사시험 예비시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예비시험의 도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폐단은 법학 과목 50학점 이상 취득자에 한해 응시하게 하거나 로스쿨 재학생에게는 응시자격 제한, 변호사시험과 같이 5회로 한정하거나 하는 등으로 충분히 제거할 수 있으며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K-MOOC나 독학사제도를 통한 학점 취득으로 응시 기회를 부여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호선 교수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의 하나로 일본과 같이 학부와 로스쿨을 병존하도록 하면서 예비시험 도입을 통해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한지영 교수도 “예비시험 제도의 폐단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한다면 예비시험 제도의 도입도 가능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허명국 교수 역시 “학부 법학과를 통해서도 법률 실무가가 될 수 있는 길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같은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안정빈 교수도 “법학과를 졸업하고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법조인이 될 관문이 완전히 막혀서는 안 된다”며 뜻을 같이했다. 안 교수는 로스쿨 정규 과정을 마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미국의 여러 제도를 소개하며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했다는 한국에서는 로스쿨 이외의 다른 통로가 하나라도 열려 있나”라고 의문을 던졌다.
그는 “결국 한국과 미국의 로스쿨 제도가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면 다른 나라의 로스쿨 제도에서 우리 현실에 필요한 제도는 가져와도 좋을 것”이라며 법대 4년을 마치면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사례를 제시했다. 아울러 “법대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로스쿨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다르지 않다”며 “경쟁력이 있다면 법대와 로스쿨 이원화를 논해도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현 로스쿨 제도의 문호를 확대하는 방안 중의 하나로 야간 로스쿨 또는 방송통신 로스쿨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양만식 교수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양 교수는 “괜히 변호사시험 낭인만을 양산하는 것에 불과하고 야간 로스쿨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무리한 희망을 주는 제도에 불과하게 될 염려조차 들며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고 판단했다.
그는 “야간 로스쿨 과정에서 선발하는 학생은 사회인에게만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전일제 로스쿨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도 지원 가능한 제도로 할 것인가, 수업 연한과 학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합격률이 저조할 경우 대처방안은 있는가” 등 도입의 전제가 되는 논의가 너무 많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반해 홍선기 교수는 야간 로스쿨 입학 자격은 직장경력 3년 이상으로 하고 주간 로스쿨에 비해 등록금을 낮게 책정하되 6개월 내지 1년 정도 수학기간을 연장하고 강의는 평일 3시수, 토요일 6시수 전일제로 하는 등의 방안을 예시하며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법학교육을 시킴으로서 다양한 실무능력을 갖춘 법률가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 취지에도 부합하는 야간 로스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홍 교수는 예비시험 도입과 다른 사법시험 부활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법시험 부활을 통해 정원이 작아 재정적으로 힘든 로스쿨은 법과대학으로 전환하고 수험생도 비용이 많이 드는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아도 되는 방안이라는 게 홍 교수의 생각이다. 로스쿨의 경우 비법대 졸업생이 진학해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