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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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최용성
  • 승인 2023.06.02 11: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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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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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0일은 6월 민주항쟁 36주년이다. 그런데 세월이 하 수상하다.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내세우는 명분은 “불법에 엄정 대응”이라거나 “법질서 확립” 또는 “법과 원칙” 등등이다.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거기 담긴 실질적 내용이 문제이다. 권력 비판,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등을 불온시하는 태도 때문이다. 그중 집회·시위의 자유만 이야기해보자. 강경 대응의 출발점은 우선 시위로 인하여 초래되는 불편함을 들어 시위를 (해야만) 하는 시민과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을 대립시킨 다음, 후자의 자유를 법이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급기야는 “야간집회시위 금지”와 같이 명백한 위헌적 주장이나, “최루액 발사”에서 “불법시위를 잘 진압하면 포상” 같은 말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닌다. 공교롭게도 모두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서 애용하던 표현들이다.

표현의 자유에서 출발하는 언론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는 여론을 형성하여 정치적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자유이다. 특히 영향력이 가장 큰 것은 언론의 자유이다. 공영방송을 제외하면, 언론사의 소유주는 언론 족벌이거나 기업, 특히 건설회사가 대부분이다. 이런 언론사는 사주의 의사에 따라 사안이나 의제를 선별하고, 기사의 논조나 방향을 정한다. 그 사주와 함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광고주인 대기업이다. 그렇게 선별되는 사안과 의제, 논조와 방향은 가능한 한 광고주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구성된다. 포털 기업을 통하여 그런 기사들이 선별 노출되고, 우리는 그것을 읽고 영향을 받는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언론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공적 영역에 대한 여론을 왜곡하기도 한다. 대기업이, 노동자의 고충을 살피거나, 환경 규제를 주장하거나, 누진세 강화의 필요를 자주 보도하거나, “국가는…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이라고 한 헌법 제119조 제2항의 정신을 주창하는 언론사에 광고를 줄 리 없기 때문이다.

반면 광고비를 낼 능력이 없는 시민, 노인, 청소년, 학생, 노동자, 주부, 농민, 어민, 공무원, 국가적 재난의 피해자들이나 가족들,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 등등 그 누구도 언론사의 사안 및 의제 선택과 기사 논조에 영향을 미칠 힘이 전혀 없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 아무리 호소하여도 대부분 언론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왜곡도 한다. 건설노동자 양회동 씨의 분신을 다른 노동자가 방조하였다는 조선일보의 허위기사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허위기사가 받아들여지면, 누가 이익을 볼까?

언론이 사회의 공기(公器)임을 망각한 채 자신의 고객인 광고주에게 충성하는 세상에서, 청원이나 소송을 통해서는 풀리지 않는 억울함을 안고 사는 시민은 어떻게 세상에 호소할 수 있을까? 집회·시위의 자유는 언론을 소유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민이나 단체가 세상에 호소하여 여론을 형성할 거의 유일한 실질적 수단이다. 표현의 자유가 세상과 만나는 상시적 통로이자, 특정한 문제를 호소하여 권력과 언론, 다른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여론을 바꾸는 힘이다. 당연히 권력이나 대기업에 불편한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정권은 늘 집회·시위의 자유를 혐오하고 제한했다. 그 부당한 억압에 저항해 ‘불법’ 시위를 감행한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이 현행 대한민국헌법이다. 당연하게도 헌법재판소는 야간집회금지 등의 시간적 제약이나 장소적 제약을 하려거나, 사실상의 허가제처럼 운용하려는 공권력의 시도에 위헌이라고 제동을 걸어왔다. 법원도 시민에 대한 경찰권의 과도한 행사를 금지하거나 경계하는 판례를 축적했다.

집회·시위의 위법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은 합법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합헌적이어야 한다. 최루가스 살포나 몽둥이질, 살수대포 발사 등등 폭력 진압 방식은 과잉금지나 비례원칙 위배이기 쉽고 대형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은 것일까. 대한민국헌법이 계승한 3·1운동도, 4·19도. 5·18도, 6월 민주항쟁도 모두 ‘불법’ 시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자유와 민주를 일궈낸 역사였다. 정작 그 열매 덕분에 집권하여 놓고, 촛불혁명 후 상당히 정착된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를 애써 외면하면서 그 산발적 불법성을 과장해 폭력 진압을 원칙으로 삼으려는 태도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의 중요성을 망각한 것이다. 농성 중인 노동자가 경찰의 방망이에 맞아 피를 흘리고, 경찰관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 한 사람의 목을 누르고 있는 최근 사진을 보노라면 이게 6월 민주항쟁 36주년을 맞는 자유 사회의 모습인가 참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은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고리이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이의 집회·시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을 방관하면 내게 필요한 순간 집회·시위를 통하여 세상에 호소할 길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곳에 진정한 두려움이 있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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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2023-06-02 22:00:29
위선적인 주장과 폭력적 행태로 점철된 오늘날의 시위들을 보고 있노라면 강경하게 대응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욕설 한 마디 포함되지 않은 댓글에 금지어가 있다면서 무엇이 금지어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뒤로가기 보내버리는 법률저널이야 말로 자유에 대한 위협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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