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312)-사다리가 있어야 개천에서 용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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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312)-사다리가 있어야 개천에서 용이 난다
  • 강신업
  • 승인 2023.05.2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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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계층 사다리는 사회적 하위 계층에서 상위 계층으로 갈 수 있는 통로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과거 사법시험은 어려운 처지에 있던 사람이 사회 상층부로 진입하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였다. 누구든지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기회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계층 상승 사다리가 사라져 버렸다, 시험제도나 학습환경이 기득권에 유리하게 바뀌면서 사교육이나 교과 외 활동 등을 할 기회가 많은 부유층 자녀들이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독점해 버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계층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사다리 간의 높이 차가 더욱 커진 데 기인한다. 상층부와 하층부의 격차는 계속 커지는데 기회가 열리면 상층부가 모든 가용수단을 동원해 이를 먼저 포획해 버리니 하층부는 박탈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고,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난 것 아니냐는 자조가 번지고 있다.

사실 한국의 사교육은 계층을 유산처럼 다음 세대로 내려보내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불평등을 조장하고, 능력과 상관없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계층 세습화를 공고히 한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계층 대물림을 위해 가장 큰 공을 들이는 부분 중 하나가 사교육이다. 심지지 의대 입학을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집착해 과도한 경쟁을 벌인다.

대한민국에서는 교육 사다리뿐 아니라 주거 사다리 역시 사라져버렸다. 빌라는 사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 등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집값이 과도하게 뛰었다가 크게 떨어진 여파로 역전세난이 발생한 데 이어 무자본 갭 투기 전세 사기가 터져 나오자 빌라 매매나 전세가 크게 위축되자 ‘빌라에서 아파트로’ 라는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 시나리오가 고장이 났다. 빌라가 더 이상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젊은이 등 경제적 약자들의 내 집 마련은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

요 몇 세대에 걸쳐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 직업구조 변화와 경제 발전 등에 따른 측면이 크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성과 객관성 지표가 크게 후퇴한 것과도 연관이 깊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기회의 공정’이 양극화나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계층 세습화를 정당화하는 반동적 현상이 나타났다. 형식적 객관성과 공정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은 아예 접근할 수 없는 진입장벽을 쌓음으로써 사실상 엽관제나 음서제와 다름없는 시험제도나 채용제도가 버젓이 통용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기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고 반문했던 ‘능력주의 신화’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가령 로스쿨은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 3년을 더 다녀야 하고, 여기다 변호사시험은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데, 이는 돈과 시간을 감당할 수 있어야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능력주의’가 기득권 부유층에게는 기회의 사다리로 작용하는 반면 하층민들에게는 화중지병(畵中之餠)에 불과한 것이 우리 사회 오늘의 현실이다.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는 사회적 이동성이 낮으므로 계층이 낮으면 낮을수록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따라서 일부 계층의 사람들이 아닌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교량적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린사회를 추구하는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닫힌 상태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길 바라는 사회는 지속할 수 있지 않다. 따라서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실질적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주된 원칙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공화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그것이 허울 좋은 헌법적 구호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의미에서의 기회균등과 능력주의가 구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고장이 난 계층 상승 사다리를 복원하고 튼튼한 사다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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