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1-사후 면접점수 조정의 리스크
상태바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1-사후 면접점수 조정의 리스크
  • 손호영
  • 승인 2023.05.25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고등학교 선발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교장이자 전형위원회 위원장이 전형위원회(신입생 입학 사정회의)에서 면접위원들에게 사후적으로 면접점수를 조정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참 선생님들이 말을 안 듣네. 중학교는 이 정도면 교장 선생님한테 권한을 줘서 끝내는데. 왜 그러는 거죠? 이 정도면 ‘교장 선생님께서 결정하십쇼.’ 하고 넘어가거든요. 왜 이곳은 말을 안 듣지? 왜 그래요?”, “어떻게 고등학교는 정말로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아무튼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야.”, “여학생 하나 붙여요. 남학생 다 떨어뜨리고, 거기서 거기라면 또 엄한 소리 뒤에 가서 하느니 여기서 여학생 하나 집어넣고.”라고 말했습니다. 학교 교사인 면접위원들은 처음에는 반발하다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결국 교장의 말을 듣고, 원래 40순위까지 뽑기로 되어 있었는데, 42순위 학생의 면접점수를 올려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도록 했습니다.

피고인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를 했다며 기소되었습니다. 피해자들(면접위원)의 신입생 면접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어떨까요?

사실관계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위 고등학교는 신입생 입학전형요강을 공고하면서 생활기록부 점수 100점, 포트폴리오·면접 점수 100점 등 합계 200점을 만점으로 하고 상위 점수 획득자 순으로 신입생 40명을 선발할 계획을 수립하였고, 학생 면접은 학교 교사 4명이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관련 법령, 교육청의 고등학교 입학전형 기본계획, 고등학교 신입생 입학전형요강 등을 보면, 교장이나 신입생 입학 사정회의에서도 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사후에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면접위원 중 일부는 42순위 학생의 면접 태도가 불량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교장의 발언은 분명한 월권이라고 볼 수 있고 업무방해가 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또 이런 사정도 있습니다.

신입생 입학 사정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면접 당시 면접위원들이 부여한 점수가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사정회의 자체가 면접위원들이 부여한 면접 점수의 편향성을 바로잡고, 지원자의 특이사항을 반영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면접 점수를 조정하기 위한 취지였던 것입니다. 생활기록부 점수 등은 계량적이어서 조정할 수 없지만, 주관적이고, 개인차가 있을 만한 면접점수를, 서로 논의하면서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사정회의는 면접 당시 부여한 점수를 합산해 산출한 최초 총점을 기준으로 논의를 시작했고, 위원들은 순위 41위 이하의 학생 중 합격시킬 사람이 있는지에 관하여 논의를 계속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기숙사 여건 등을 고려해 남학생과 여학생을 각각 20명씩 합격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습니다.

논의는 길어졌고, 서로 의견을 개진하던 중, 교장이자 사정회의 위원장의 위 발언이 나왔습니다. 워딩이 강하지만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3. 3. 30. 선고 2019도7446 판결).

“이 사건 발언에 다소 과도한 표현이 사용되었더라도 그것만으로 그 행위의 내용이나 수단이 사회통념상 허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거나 피해자들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력을 행사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 사건 발언으로 인하여 피해자들의 신입생 면접 업무가 방해될 위험이 발생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 이유는, ① 피해자들이 이 사건 사정회의에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최종 합격자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면접 점수가 조정될 수 있음을 양해한 이상 이 사건 사정회의에 참석한 피고인이 그곳에서 실제 논의되고 있는 최종 합격자 결정 문제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고, ② 논의의 결과로 피해자는 42순위 학생의 합격자 확정에 동의하였고, 다른 피해자들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들이 42순위 학생의 면접 점수를 조정하기로 한 것은 피고인이 이 사건 발언을 통해 어떠한 분위기를 조성한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전형위원회 위원들이 이 사건 사정회의에서 논의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으며, ③ 피고인의 이 사건 발언은 전형위원회 위원들 사이에 최종 합격자 결정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면서 합격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입학전형에 관한 부정한 청탁에 기인한 것이라거나 그 밖의 부정한 목적 또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업무방해의 고의로 이 사건 발언을 하였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언론에서도 꽤나 주목했던 사건입니다. 제목은 “40명 선발에 42등 붙인 교장…‘자유토론했다면 업무방해아냐’” 이 정도입니다. 선발 과정의 공정성과 면접위원의 독립성은 분명 지켜져야 하지만, 논의를 하기로 한 취지를 고려한 판결입니다. ‘말의 내용과 수위’, ‘원인과 결과’만을 볼 것이 아니라 법률가라면 구체적 사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