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27)-재정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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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27)-재정신청
  • 신종범
  • 승인 2023.05.1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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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지난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후보자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직폭력배와 연관되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른바, ‘이재명 조폭 연루설’은 장영하 변호사라는 사람이 최초 제보했고, 이를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공개하면서 보도가 이루어졌다. 김 의원은 조직폭력배 조직원인 박모씨 등이 이 대표 차량에 실었다는 현금다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해당 사진은 박씨가 사업 과시를 위해 본인 SNS에 올린 사진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허위임이 밝혀졌다. 이후에도 장 변호사는 “이 대표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함께 있다”는 식의 주장을 계속했다. 이에 민주당은 장 변호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등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장 변호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영장청구를 하지 않았고, 나아가 장 변호사가 박씨 제보를 믿었다고 진술하고, 그 진술을 배제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했다. 민주당은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로 민의를 왜곡한 장 변호사의 죄질을 볼 때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납득할 수 없다”며 재정신청을 냈고, 재정신청을 접수한 서울고등법원은 극히 이례적으로 일부 인용결정을 내렸다.

재정신청은 검찰이 고소·고발 사건을 불기소한 경우 그 결정이 타당한지 고등법원에 다시 묻는 제도다. 형사소송법은 고소권자로서 고소를 한 자 또는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제124조(불법체포, 불법감금), 제125조(폭행, 가혹행위), 제126조(피의사실공표)의 죄에 대하여 고발을 한 자는 검사로부터 불기소 통지를 받은 때 그 검사 소속의 지방검찰청 소재지를 관할하는 고등법원에 그 당부에 관한 재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재정신청이 이유 없는 때에는 신청을 기각하고, 이유 있는 때에는 사건에 대한 공소제기를 결정한다. 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에 대해서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지만, 공소제기 결정에 대해서는 불복할 수 없다. 공소제기의 결정에 따른 재정결정서를 송부받은 검찰은 지체 없이 담당 검사를 지정하고 지정받은 검사는 공소를 제기하여야 하고, 공소를 제기한 이후에는 이를 취소할 수 없다.

한편, 공직선거법은 허위사실공표죄 등 일부 선거범죄에 대하여 고발을 한 후보자와 정당및 해당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검사 소속의 지방검찰청 소재지를 관할하는 고등법원에 그 당부에 관한 재정을 신청할 수 있고, 이에 대해 형사소송법의 재정신청 관련 규정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 변호사를 허위사실공표죄 등으로 고발한 민주당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일부 인용하면서 공소제기결정을 한 것이다. 이제 검찰은 처음의 불기소처분과 달리 법원의 결정에 따라 장 변호사를 기소하고 공소를 유지하여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되었다.

재정신청 제도는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 등 막강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1972년 유신헌법의 등장과 함께 재정신청 대상 사건이 공무원 범죄 3개로 대폭 축소되면서 사실상 폐기되다시피 했지만,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 대상 사건이 고소사건 전부와 일부 고발사건으로 확대되었고, 이러한 사건의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고등법원(재정법원)이 다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재정신청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재정신청 사건 접수는 해마다 늘어 한 해에 수만 건씩 접수되고 있지만, 재정법원의 공소제기결정 비율은 100건 대에 불과해 인용률이 채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재정법원이 자체적인 추가 조사권한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수사기관에 추가 수사를 요구할 수도 없어 수사기록이 부실할수록 재정신청 인용률이 낮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2007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재정신청을 통해 기소된 사건의 공소유지 주체를 공소유지변호사가 아니라 검사로 변경하는 개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개정이유는 재정신청이 크게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공소유지변호사를 지정해 별도의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고, 수사와 기소에 전문성을 갖춘 검사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검사가 공소유지를 담당한 이후 재정신청 사건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거나 아예 구형을 하지 않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나왔고, 인사청문회에서 모 대법관 후보자는 “재판을 해보면 재정신청 사건에서 검사가 제대로 유죄 입증을 안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별도의 전담 변호사를 둬 공소유지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장 변호사 관련 재정신청 사건도 법원의 공소제기결정으로 검찰은 기소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처음에 불기소처분을 한 검찰이 공소유지를 제대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더욱이 그 어느 때보다 검찰의 권한 행사가 자의적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똑같은 선거사범이 있는데 한쪽은 검거하고 한쪽은 내버려 둔다면, 이것은 공평성 원칙에 위반되고 정치적으로 형사소송법이 이용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만일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할 적에는 이 항고를 다시 종래와 같이 검찰기관 고위층에다가 해보았자 검사동일체 원칙에 의해서 불기소처분을 받기가 쉽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그런 때에는 고등법원에다가 항소를 하게 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모 국회의원이 재정신청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이 말은 70년 가까이 지난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신종범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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