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4)-도쿄에서 살기,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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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4)-도쿄에서 살기, 일하기
  • 박준연
  • 승인 2023.04.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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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요즘에는 많이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중국어와 일본어 중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했고, 일본에 대해 좋은 이미지보다는 나쁜 이미지가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세월이 흘러 이렇게 도쿄에서 일하면서 생활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 졸업 전에 도쿄대학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유학한 것은 졸업 후 진로를 한국을 잠시 떠나 생각해 보고 싶어서였다. 수업도 영어로 진행되고, 큰 금액은 아니지만, 생활비 지원도 받을 수 있어, 평범한 중산층 집안 출신에 대학 입학 후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도 큰 금액이 아니었던 상황에서 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많이 매력적이었다.

실제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놀란 것은, 국립대학에서 문부과학성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의 내용이 반드시 일본 정부의 태도를 옹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세미나에는 일본의 근대화와 식민 지배, 일본의 전후 처리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는 교수님들이 여럿 참여하였다. 별도로 진행되는 일본어 수업에서 사용되는 교재에는 일본 사회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지문이 많았다.

일본인 학생들과 어울렸던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전 세계의 참여 대학에서 온 20여 명의 유학생뿐 아니라, 일본에서 각 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왔거나 앞둔 일본인 재학생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M이다. M과는 내가 한국어 수업 강의실에 잘못 들어갔을 때 우연히 처음 만났다. 내가 서툰 일본어로 여기 중국어 수업 강의실 아니냐고 물었을 때 불쑥 자기를 소개하고 친구 하자고 말을 꺼낸 것이 M이었다.

그 이후 M과 나는 서로 공부를 도와주고, 기숙사와 M의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키치죠지에서 함께 놀기도 했다. 같이 공원을 걸었던 기억, M이 한국인에게 발음이 어려운 탁음이 들어간 단어를 많이 쓴 문장을 카페에서 내 생각이 나서 만들었다며 냅킨에 써서 건네주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뉴욕에서 도쿄로 오게 되면서 그때까지도 가끔 연락하던 M에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은 오류와 함께 되돌아왔다. 도쿄로 와서 일을 시작하면서 M의 이름, 학교와 전공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여 그의 부고를 보게 되었다. 내 마음이 M에 닿을 수 있다면, 고마웠고 또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생활의 측면뿐 아니라 업무의 측면도 있다. 미국 출신이 아닌 미국 자격 변호사가 세계에 오피스가 있는 로펌에서 일하게 되면, 출신 국가 관련 업무를 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 업무 분야는 영어 외의 언어를 읽고 쓸 필요가 있어서 우리나라 관련 업무를 주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 더해 도쿄에 있다 보면, 특히 주니어 변호사 시절에는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한국 업무, 일본 업무를 같이함으로써 업무 경험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전에 일본 주요 일간지 1면에 보도되던 내용과 관련된 안건으로 바쁘다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어서 우리 주요 일간지 경제면에 크게 보도되던 내용과 관련된 안건으로 바빴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힘들긴 했지만, 베테랑 변호사에게도 흔치 않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나도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내가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어를 써야 하는 안건도 통, 번역의 도움을 받아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쿄에 있고 일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면서 모국어가 우리말이라 더 넓은 범위의 업무를 담당할 기회가 있었다.

아무리 자발적인 선택이라도,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일하면서 사는 것은 고된 일이다. 그런데도 이민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 차원의 비용-편익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조국을 떠나오면서 잃은 것들, 또 반대로 얻은 것들을 비교해야 한다. 종종 내가 맞는 판단을 했는지 하는 불안도 있다. 오늘도 그런 불안과 싸우다가,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를 써 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독자분들 중 공감하시는 분이 몇 명이라도 계신다면 기쁠 것 같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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