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7-사람은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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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7-사람은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가
  • 손호영
  • 승인 2023.04.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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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세 가지 명제는 모두 현재 통용되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에 대하여야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나의 잘못에 비례해야 한다.” “그 책임은 결과에도 비례해야 한다.” 세 가지 명제에 모두 수긍하시나요? 첫째, 둘째 명제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정도 우연에 기대는 세 번째 명제도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요?

길거리에 값비싼 외제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외제차가 차선변경을 하거나 할 때 우리는 반농담 반진담으로 이야기합니다. “각별히 조심하자.” 자칫 사고가 날 경우, 일반 차에 비해서 더 큰 배상을 해야 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내가 손해를 일으킨 만큼 배상을 해야 된다는 말은 맞지만, 사실 과실비율이 5:5인데 서로 퉁칠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은 모두 “나의 책임이 잘못과 결과에 비례한다는 것”은 알지만, “우연히 또는 불운히” 결과가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조금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회사원이 있습니다. 이들은 흡연자인데, 공장동 건물 외벽에 설치된 분리수거장 옆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곳에는 당연히 재활용 박스 등이 쌓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날은 하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입니다. 흡연자인 이들은 그래도 일단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리고 꽁초 불씨를 손가락을 튕기고, 꽁초를 근처에 놓인 쓰레기 봉투에 던지거나 분리수거장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리고 분리수거장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여느 날과 다름 없는 일상이었을지 모릅니다. 담배를 하루 이틀 피는 것도 아니고, 굳이 분리수거장 옆을 흡연장소로 삼은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기야 했지만 다른 날은 안 그랬을까요? 꽁초 불씨를 손가락으로 튕기는 것도 습관이었을지 모릅니다. 꽁초를 쓰레기 봉투에 던지거나 분리수거장을 향해 던지는 것도 별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날따라 꽁초 불씨가 심술을 부립니다.

불씨는 분리수거장의 재활용 박스에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이 점점 커지고 번져 공장동을 완전히 태웠습니다. 수리비는 약 6억 원입니다.

갑자기 평화로운 일상의 흡연자였던 이들은 6억 원의 피해를 낸 가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법원은 일단 그렇다고 합니다. 이들이 화재 직전 담뱃불을 튕기고,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고, 그들과 분리수거장 거리가 무척 가깝고(1~3미터), 재활용박스 등 종이류가 분리수거장에 쌓여 있었고, 이들이 떠난 지 3~4분 후 연기가 솟아 이들의 담뱃불이 발화원인인 점 등을 근거로 이들의 행위와 화재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봅니다.

다만 2심에서는 “이 사건 화재가 피고인들 중 누구의 행위에 의한 것인지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는 했지만, 피고인들에게는 각 실화죄 과실범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바람이 많이 불고 종이류가 근처에 적재되어 있는 곳에서 담뱃재를 털거나 꽁초를 함부로 버릴 경우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들은 이 사건 화재 발생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곧, “피고인들 각자의 과실이 경합하여 이 사건 화재를 일으켰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도 대체로 원심을 수긍합니다. 다만 “원심판단 중 이 사건 화재가 피고인들 중 누구의 행위에 의한 것인지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취지의 부분은 결과발생의 원인행위가 판명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기는 하다.”면서, 이는 “‘피고인들 중 누구의 담배꽁초로 인하여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하였는지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선해”하면 된다고 합니다(대법원 2023. 3. 9. 선고 2022도16120 판결). 또한 위와 같은 원심의 표현은 “이는 피고인들의 근무내용, 화재 발생 시간과 장소 및 경위, 법익침해 방지를 위한 행위의 용이성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들이 각자 본인 및 상대방의 담뱃불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어 상호 간에 담배꽁초 불씨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완전히 제거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한 채 분리수거장 부근에서 담배꽁초 불씨를 튕기고 담배꽁초를 던져 버린 후 아무런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고 이러한 피고인들의 각 주의의무 위반과 이 사건 화재의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부가적 판단이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원인행위가 불명이어서 피고인들은 실화죄의 미수로 불가벌에 해당하거나 적어도 피고인들 중 일방은 실화죄가 인정될 수 없다.’는 취지의 피고인들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결론냅니다.

회사원 두 분은 벌금 500만 원을 내야 합니다만 일단 형사적 책임이 그러한 것이므로 민사적 책임은 어떨지 모릅니다. 담배꽁초를 잘못 버린 행위가 6억 원의 피해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실수에 대해 우리 법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책임의 범위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고민이 됩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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